최재봉 문화부 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갈아엎는 달./ 그 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갈아엎는 달.”(<사월은 갈아엎는 달> 마지막 연)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첫 연과 마지막 연)
사월은 갈아엎는 달이라며 껍데기와 쇠붙이는 가라고 외쳤던 민족시인 신동엽(1930~1969).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는 상황에서 그의 외침이 새삼 그리워지는 이즈음, 그의 시를 한데 모은 <신동엽전집>(강형철·김윤태 엮음, 창비 펴냄)이 새로 나왔다. 기왕에 확인되지 않았던 미발표작 열한 편을 포함해 모두 165편이 묶였다. 이 가운데 서사시 <금강>(1967)은 전집 기준으로 무려 239쪽에 이르는 대작이다.
새롭게 추가된 미발표작들은 1948년에서 1950년대 초까지의 초기 습작들이 대부분이다. 그의 대표작들에 비해 대체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가운데 “자유 그것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아우성친/ 피와 낫으로 아로새긴 인민 항쟁의 날(<이 땅의 이날>), “저 구름 아래 모래밭에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굳건한 동무”(<추상>)처럼 해방공간의 이념적 모색과 행동을 기리는 것들이 여럿이어서 발표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가령 1953년 작인 <첫눈>은 유려한 리듬감으로 첫눈과 추억을 노래한 수작으로 읽힌다.
“돌아오누나/ 노랑 저고리 검정 치마/ 어델 가서 앨 태우다 이제서야 돌아오는가// 님만 두곤 아니 오실라 걱정했더니/ 어델 가서 여적 해차릴 하다/ 혼자서야 돌아오는가”(<첫눈> 1·2연)
<신동엽전집>은 1975년에 처음 간행되었으나 두 달도 못 되어 긴급조치 9호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판매금지되었다. 긴급조치가 풀린 1980년 봄에 증보판이 나왔지만, 신군부의 폭압 아래 다시 판금되었다. 1987년에야 전집이 자유롭게 시판되기에 이르렀으며, 전집에 실리지 못한 작품이 새롭게 발굴되어 미발표 유고시집 <꽃같이 그대 쓰러진>(1988)으로 묶여 나왔다.
이런 수난의 역사는 1989년에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산에 언덕에>가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어느 정도 보상을 받았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산에 언덕에> 1·2연)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붙도록./ 뼈섬은 썩어/꽃죽 널리도록.//(…)// 잔디밭엔 담뱃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진달래 산천> 부분)
<산에 언덕에>는 신동엽의 또 다른 대표작 <진달래 산천>을 떠오르게 한다. 산과 꽃과 그리움이라는 세 요소가 결합되어, 해방공간에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이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산문시 1>)라거나 “꽃 피는 반도는/ 남에서 북쪽 끝까지/ 완충지대,/ 그 모오든 쇠붙이는 말끔히 씻겨가고/ 사랑 뜨는 반도,/ 황금이삭 타작하는 순이네 마을 돌이네 마을마다/ 높이높이 중립의 분수는/ 나부끼데.”(<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와 같은 대목에서 보듯 그 꿈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꿈이다. 새달 3일 충남 부여 시인의 생가 뒤에는 그의 삶과 문학세계를 볼 수 있는 문학관이 들어선다.
최재봉 문화부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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