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혈기왕성 초기습작 추가된 ‘신동엽 전집’

등록 2013-04-14 20:16

최재봉 문화부 기자
최재봉 문화부 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갈아엎는 달./ 그 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갈아엎는 달.”(<사월은 갈아엎는 달> 마지막 연)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첫 연과 마지막 연)

사월은 갈아엎는 달이라며 껍데기와 쇠붙이는 가라고 외쳤던 민족시인 신동엽(1930~1969).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는 상황에서 그의 외침이 새삼 그리워지는 이즈음, 그의 시를 한데 모은 <신동엽전집>(강형철·김윤태 엮음, 창비 펴냄)이 새로 나왔다. 기왕에 확인되지 않았던 미발표작 열한 편을 포함해 모두 165편이 묶였다. 이 가운데 서사시 <금강>(1967)은 전집 기준으로 무려 239쪽에 이르는 대작이다.

새롭게 추가된 미발표작들은 1948년에서 1950년대 초까지의 초기 습작들이 대부분이다. 그의 대표작들에 비해 대체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가운데 “자유 그것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아우성친/ 피와 낫으로 아로새긴 인민 항쟁의 날(<이 땅의 이날>), “저 구름 아래 모래밭에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굳건한 동무”(<추상>)처럼 해방공간의 이념적 모색과 행동을 기리는 것들이 여럿이어서 발표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가령 1953년 작인 <첫눈>은 유려한 리듬감으로 첫눈과 추억을 노래한 수작으로 읽힌다.

“돌아오누나/ 노랑 저고리 검정 치마/ 어델 가서 앨 태우다 이제서야 돌아오는가// 님만 두곤 아니 오실라 걱정했더니/ 어델 가서 여적 해차릴 하다/ 혼자서야 돌아오는가”(<첫눈> 1·2연)

<신동엽전집>은 1975년에 처음 간행되었으나 두 달도 못 되어 긴급조치 9호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판매금지되었다. 긴급조치가 풀린 1980년 봄에 증보판이 나왔지만, 신군부의 폭압 아래 다시 판금되었다. 1987년에야 전집이 자유롭게 시판되기에 이르렀으며, 전집에 실리지 못한 작품이 새롭게 발굴되어 미발표 유고시집 <꽃같이 그대 쓰러진>(1988)으로 묶여 나왔다.

이런 수난의 역사는 1989년에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산에 언덕에>가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어느 정도 보상을 받았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산에 언덕에> 1·2연)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붙도록./ 뼈섬은 썩어/꽃죽 널리도록.//(…)// 잔디밭엔 담뱃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진달래 산천> 부분)

<산에 언덕에>는 신동엽의 또 다른 대표작 <진달래 산천>을 떠오르게 한다. 산과 꽃과 그리움이라는 세 요소가 결합되어, 해방공간에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이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산문시 1>)라거나 “꽃 피는 반도는/ 남에서 북쪽 끝까지/ 완충지대,/ 그 모오든 쇠붙이는 말끔히 씻겨가고/ 사랑 뜨는 반도,/ 황금이삭 타작하는 순이네 마을 돌이네 마을마다/ 높이높이 중립의 분수는/ 나부끼데.”(<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와 같은 대목에서 보듯 그 꿈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꿈이다. 새달 3일 충남 부여 시인의 생가 뒤에는 그의 삶과 문학세계를 볼 수 있는 문학관이 들어선다.

최재봉 문화부 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4할 타자’ 류현진에 매팅리 “진정한 메이저리거” 극찬
아! 김응용…한화 13연패 ‘굴욕’
낸시랭, 박정희 대통령 볼에 뽀뽀 ~ 앙
진중권, 민주당 원색비난…“문재인 빼면 쓰레기더미”
공중부양 싸이 ‘싼티나게 쭈욱~’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