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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최하층’ 조선인 종군위안부
- 리샹란과 하루미

등록 2013-04-28 19:55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두루 아는바 우리 쪽에서는 정신대, 저쪽에서는 종군위안부라 하오.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이 이 점을 상기시키고 있소. 그게 그거라고 말하기 쉽지만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외다. 정신대라 할 때는 강제 동원에 주안점이 놓인다면, 종군위안부라 할 땐 형식상 강제 동원을 포함하고 또 자진하여 나선 경우를 두루 가리킴이라 하겠소. 대체 자진하여 나선다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기타 이유를 들 수 있을 법하오. 이런 경우는 일본인의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 싶소. 이 문제를 둘러싼 소설 두 편을 잠시 음미해 보면 어떠할까.

5년간 병사로 종군했던 작가 다무라 다이지로(田村泰次郞)의 <메뚜기>(1946)와 <춘부전>(1947). ‘메뚜기’란 현지에선 ‘황’(蝗)이라 부르는 것. 일본군을 황군(皇軍)이라 함에 발음까지 대응되는 것. <춘부전>(春婦傳)은 일본 군인들이 한 위안부를 두고 일으키는 갈등을 다룬 것. 이 두 작품에서 위안부들은 그 나름의 서열이 형성되어 있는데 상층이 일본 여인, 그다음 중국 여인, 최하층이 조선 여인이라는 것. 사상자가 속출하는 오지에서 주인공은 두 가지 임무를 띠고 있었소. 하나는 전사병을 위한 관을 가져가는 것. 다른 하나는 여인 5명을 데려가는 것. 이 최하층 위안부가 조선 여인이었소. 이름은 모두 일본식. 하루미, 사치코 등등.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오오. 어째서 하루미들이 종군위안부가 되었을까. 돈벌기 또는 좀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는 것. 이는 인간으로서의 본능이라 할 만한 것. 그렇지만 전쟁은 이런 기회를 앗아갔고, 마침내 이른 곳이 최하층 종군위안부. 작가는 매우 신중하게도 하루미들이 매운 고추와 마늘을 먹는다는 것, 그것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 또 유년기 동네 굿판에 부모를 따라갔다는 것 등만을 지나가는 말투로 언급했을 따름이오. 굳이 조선인이라는 의식이 없는 증좌라고 할 수도 있을 법하오. 이 <춘부전>을 영화화한 것이 <새벽의 탈출>. 미군 군정 총사령부(GHQ)의 일곱 번의 수정 명령을 거쳐 가까스로 승인된 것.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도 참여할 만큼 가까스로 얻어낸 것.

작가는 종전 후 전쟁 체험을 염치도 없이 팔아먹는 인간들을 속으로 뜨겁게 경멸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 증거로 작가는, 아시아를 뒤흔든 ‘소주야곡’(蘇州夜曲), ‘중국의 밤’ 등을 부른 가수이자 미모의 영화배우인 리샹란(李香蘭)을 전선에서 만났음을 상기하고 있소. 실상 이 <춘부전>의 창작 동기도 안면 있는 리샹란과의 극적 만남에 있지 않았을까 싶소.

중국인이라 선전된 리샹란이란 누구인가. 본명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 리샹란이 종군위안부 문제에 심혈을 쏟고, 그 모임의 부이사장직에 오른 곡절이 실로 단순해 보이오. 어느 날 쑤저우(蘇州)에서, 한때 그녀의 영화 촬영을 잠시 지켜본 조선인 위안부를 만났다는 것. 목사의 딸인 그녀가 강제로 잡혀 위안부 노릇을 할 때 잠시 리샹란을 보았다는 것. 이런저런 곡절이 있기야 했겠지만, 이 사건으로 리샹란이 조선인 위안부 모임의 부이사장을 맡았다는 것. 이는 어쩌면 특등석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니었을까. <춘부전>의 최하층 위안부 하루미와 견줄 때 그런 느낌을 떨쳐내기 어렵소.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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