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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자유시장경제에서 책은 ‘상품’일까

등록 2016-10-08 09:47수정 2017-04-11 11:25

[토요판] 어쩌면
책의 가격을 묻다
기초적인 경제학 법칙에 따르면, 이상적인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 위치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책의 가격을 정하는 문제는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불가피하게 연결돼 있다. 한 서점 내부를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장면.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기초적인 경제학 법칙에 따르면, 이상적인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 위치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책의 가격을 정하는 문제는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불가피하게 연결돼 있다. 한 서점 내부를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장면.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2014년 도입된 개정 도서정가제를 통해 서점들엔 출판사가 정한 정가에서 10% 할인과 5% 보너스 적립만 허용된다. 그 이상의 할인 등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된다. 세상에는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다. 과연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중요한 건 가장 기본적인 물음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있는지다. 당신에게 책은 상품인가?

내가 일하는 문학과지성사에서는 일 년에 책을 100권쯤 만든다. 어떤 책이든, 만들면 가격을 정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책의 가격을 정하기 위해서 고민을 하는 셈이다. 가격을 정할 땐 책의 분량, 저술이나 번역에 들어간 비용, 책의 제작에 들어간 비용, 그리고 기대되는 판매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그리고 그 가격의 60~70%쯤을 받고 서점에 제공한다. 서점에 제공한 가격에는 저자 인쇄, 출판사 이윤, 편집, 제작 그리고 홍보비용이 포함된다.

서점에 공급하는 가격은 출판사와 서점 사이의 계약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서점 쪽은 이 가격을 낮추려고 노력하고 출판사 쪽은 이 가격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서점의 이윤이 너무 박하면 열심히 팔려고 노력하지 않을 터이니, 출판사가 무작정 높은 가격만 고집할 수는 없다. 적당한 타협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서점이 다른 상품의 유통업보다 마진이 박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책이 팔리지 않으면 반품을 할 수 있는 우리나라 도서 유통의 특성 때문에 투자에 비해서 위험이 작은 장점도 있다. 출판사와 서점 사이의 타협에 법적인 제약은 없으나, 소비자에게 공급될 때는 출판사가 정한 정가에서 10% 할인과 5% 보너스 적립까지 허용된다. 더 이상의 할인은 2014년에 발효된 개정 도서정가제에 따라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정해진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팔 수는 없을 터이니, 서점들은 정가와 거기서 10% 할인한 가격 사이에서 소비자에게 공급할 가격을 정하고 5% 안에서 사은품을 안겨 줄 수도 있다.

영국, 1995년 도서정가제 폐지

기초적인, 혹은 고전적인 경제학 법칙에 따르면, 이상적인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 위치하는 것이 옳다. 혹은 정해진 가격에 따라 수요와 공급의 곡선이 위치를 바꿀 것이다. 책을 파는 일도 장사인지라 서점에서 책을 많이 팔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출판사나 서점의 입장에서 책이 세상에 나왔는데도 수요가 따라주지 않으면 값을 내려서라도 팔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법은 소비자가 사는 책의 가격이 움직일 수 있는 폭을 제한하고 있다. 공급자가 독점적 지위에 이르지 않도록 경쟁을 장려하고 경쟁을 통해 가격이 결정되는 것에 높은 가치를 주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유독 책의 가격에만 제한을 둔다. 가격 담합만 해도 처벌을 받는데, 어디서든 똑같은 가격으로, 더 정확하게는 비슷한 가격으로 책을 사도록 제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조치는 정말로 필요한 것일까? 조금 더 나아가 정가제가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지난달, 런던에서 만난 사이먼 리틀우드는 대형 출판사 랜덤하우스에서 수십 년간 일했던 베테랑 출판인이다. 지금은 독립해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1995년에 영국에서 도서정가제가 폐지되었던 때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책의 가격을 책을 파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되면서 최신의 마케팅 기법들을 동원해서 신나게 팔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서점만이 아니라 대형 마트까지 판매망을 넓히고 진짜 ‘상품’처럼 폼나게 책을 팔아보겠다는 패기가 넘쳤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대형 마트에서 책을 팔게 되었지만, 책은 손님들의 관심을 끄는 미끼 상품에 불과했다. 마트는 대폭 할인된 베스트셀러를 들러리 세워 다른 물건을 팔려고 했다. 그리고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사람들의 눈에 띌 기회를 잃었다. 다양한 제품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는 책에 가격에 기댄 마케팅 기법을 적용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고 했다.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 도입으로
정가 10% 이상 할인 법으로 금지
수요-공급 균형점에 결정되는
기초적 경제학 법칙과는 다른 면

프랑스에선 책은 일반 상품 아니고
정가제가 독서문화 지탱한다고 믿어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는 않아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좌우될 뿐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런던에는 다양한 서점들이 있다. 문구, 잡화와 책을 함께 취급하는 곳부터 대형 서점, 그리고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작은 서점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책들은 다양한 할인 딱지를 붙이고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다. 베스트셀러들의 경우 책값의 30% 정도를 깎아주는 것은 예사이다. 하나를 더 사면 나머지 하나는 반값을 받는 행사도 즐비하다. 가격 할인에 기대 고객들의 눈을 끌어보겠다는 시도들이다. 물론 런던에는 한 권도, 단 일원도 할인을 하지 않는 서점들도 있다. 말리번가에 있는 돈트북스에 들렀을 때, 점장은 자신의 서점을 찾는 고객들은 모두 기꺼이 제값을 내고 책을 산다고 했다. 이 서점에는 큰길을 향한 큰 창이 두 개 있는데, 창 하나마다 한 종류의 책만 전시되어 있다. 서점의 운영자들이 직접 읽어보고 선정해서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이다. 할인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읽은 책을 독자들에게 권하는 방식으로 장사를 해 온 이 서점은 1990년 설립 이후 계속 성장해서 이젠 런던 안에 6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형 서점에서 시민들이 책을 둘러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서울 시내 한 대형 서점에서 시민들이 책을 둘러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할인은 상품의 판매를 촉진하려는 수단인데, 병법으로 치면 상책은 아니다. 할인 판매는 다른 어떤 마케팅 기법보다 편하고 강력하다. 고객의 마음을 세심하게 어루만져 설득을 하려면 어지간한 노력이 드는 일이 아닌데 가격을 내리기만 해도 상품이 팔린다면 어찌 매력적이지 않겠는가? 물론, 할인 시기나 정도를 정하고 실행하는 일에 복잡한 프로토콜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다른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판매를 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손쉬운 방법이다. 고생 덜하고 맛보는 꿀맛은 잊을 수 없다. 중독 증상이 일어나기 쉽고, 가끔은 이윤을 생각하지 않고 할인을 하다가 손해를 보는 일도 허다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장사의 핵심은 상품을 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비싸게 파는 것이 아니었던가? 사실, 할인 판매는 대기업에만 유리한 방식이다. 대기업은 일정 기간의 할인에서 오는 손해를 감수할 만한 여력이 있고 그 이후에 손해를 이익으로 반전시킬 수단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작은 업체들은 도산하기 십상이다.

프랑스 독서문화의 근간은?

오랫동안 도서정가제를 지켜왔고 지금도 엄격한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있는 파리에서는 봄마다 국제도서전이 열린다. 이 도서전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아동도서에 특화된 볼로냐 도서전, 저작권 거래에 특화된 런던 도서전 등에 비해서 한국 사람들이 덜 주목하는 편이다. 하지만 올해는 파리 도서전의 주빈국이 한국이라 제법 많은 한국의 출판인들과 기자들이 그곳에 갔다. 마침 한-불 수교 130주년이라 문화적인 교류에 의미를 두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았다.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도서전에 대한 프랑스 독자들의 열기에 깜짝 놀랐다. 개막을 하자마자 몰려드는 인파는 세계적인 스타의 공연장을 방불케 했고 크고 작은 작가와의 만남이 도서전 기간 동안 수도 없이 많이 열렸다. 전시장을 방문한 대통령은 여러 시간을 머물렀고 문화부 장관은 매일 방문했다. 도서정가제에 따라 도서전에서는 할인하는 책도 없었다. 무엇이 이렇게 많은 독자를 한자리에 모았을까?

이유를 찾아보겠다고 다시 파리를 찾았다. 프랑스 국제출판협회 사무국장인 장기 부앵은 원동력을 도서정가제에서 찾았다. 파리의 가장 큰 서점인 지베르 조제프 대표인 올리비에 푸니지베르, 프랑스출판협회 회장인 피에르 뒤티욀, 프랑스 문화부의 출판독서국장인 니콜라 조르주를 차례로 만나면서 출판사, 서점, 정부의 이야기를 차례로 들어보았는데,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는 비슷했다. 책은 다른 상품과 다르고 책의 가격은 출판사가 정하고 그것을 언제 어디서나 같은 가격에 소비자들은 살 수 있는 시스템이 프랑스의 출판과 독서 문화의 근간이 된다는 이야기. 도서정가제 때문에 작은 서점들도 인터넷 서점이나 큰 서점의 저가 공세에 시달리지 않고 장사를 할 수 있고, 그런 서점들을 통해서 유지되는 독자들의 네트워크가 프랑스 출판과 독서문화의 근간이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 서점에서 더 싸게 책을 살 수 있지만 프랑스는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 책을 사면 오히려 배송료를 더 물어야 한다.

물론 2000년부터 15년간 프랑스에서 300여개의 서점이 없어진 것을 생각하면 도서정가제가 서점들을 모두 지켜주지는 못한 것 같다. 책이 아닌 새로운 미디어를 접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서점의 수가 감소하는 것은 숙명일까? 니콜라 조르주에 따르면 프랑스와 도서정가제를 지키고 있는 또 다른 나라, 독일은 유럽연합 안에서 가끔 자유시장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출판 관계자들과 정책 담당자들은 도서정가제를 통해서 다양한 유통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 문화적 풍요를 위해서, 그리고 지적 자본을 독립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다양한 유통 경로가 유지되는 것이 풍부한 콘텐츠를 생산해 낼 수 있는 토대가 되고 그 콘텐츠들이 소비되면서 문화의 수준은 유지되고 성장한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세계에서 제일 큰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에서 영국 시장을 책임지고 있는 조애나 프라이어는 도서정가제가 있던 시절이 기억은 나지만 영국은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영국은 언어적으로 미국 시장, 그리고 영어를 쓰는 다른 시장들과 바로 연결이 되어 있다. 따라서 영국이 혼자서 도서정가제를 시행해보았자, 독자들이 싼값으로 파는 미국에서 직구를 해버리면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도서정가제가 없는 영국의 상황이 형편없는 것은 아니다. 마트, 대형 서점, 그리고 작은 서점이 모두 스스로의 길을 찾고 있다. 분명한 것은 책을 다른 상품과 같이 놓고 팔려고 했지만 책이 다른 상품과 다르다는 것이다. 런던의 대형 서점 ‘워터스톤스’는 2011년, 모회사인 음반유통회사 에이치엠브이(HMV)가 부도가 나면서 러시아 재벌에게 인수되었다. 그 전에는 책을 진열하는 곳에 책을 놓는 값을 출판사한테 받아 광고판처럼 운영했는데 주인이 바뀐 이후에는 직접 서점 직원들이 읽고 추천을 달아 책을 진열하기 시작했다. 서점의 구매담당 이사 케이트 스키퍼에 따르면 그 이후 매출이 늘고 작년에는 흑자로 전환을 했다고 한다. 가격을 내리고 매대를 파는 방식보다 추천을 하고 관계를 만드는 방식이 책의 판매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상에는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다.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로는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이 있고, 없는 나라로는 영국, 미국 등이 대표적이다.

과연 어느 쪽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를 통해서 18개월 이상이 된 책까지 정가제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본 사람도 있고 손해를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도 우리나라에는 도서정가제가 있었지만 오래된 책들은 할인 판매가 가능했고 정가제 대상인 도서들의 할인 폭도 조금 더 넓었다. 그것이 2014년에 강화되었고 3년이 지나면 수정·보완하는 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 엄격한 도서정가제를 통해서 서점들의 상황은 호전된 것으로 보인다. 대형 서점들은 부지런히 지점을 넓히고 있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와 크기의 서점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할인 판매를 많이 했던 출판사나 주로 할인 판매 도서들로 고안한 사업을 진행했던 서점들은 매출이 줄고 사업에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나 믿음으로 구성된 입장이 생기면 어떤 사실이 제시되더라도 자신의 입장에 유리한 사실은 입장을 강화하는 데 사용하지만 반대의 경우엔 무시해버리기 일쑤다. 긍정적인 정보와 부정적인 정보를 꾸준히 같이 접할 때, 어떤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는 기존의 입장에 달린 셈이다. 따라서 도서정가제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방향을 설정하고 둘러싼 논쟁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연구보다도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에게 책은 상품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

※<어쩌면>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통념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는 꼭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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