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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하수도는 언제까지 우리의 찌꺼기를 받아들일까

등록 2016-08-05 19:51수정 2017-04-11 11:25

[토요판] 어쩌면
(3) 하수도를 생각하다
2012년 가을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주변 지하에서 발견된 1900년대 ‘벽돌식 하수관거’ 내부 모습. 1900년을 전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하수관거는 성인 한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지름 1500㎜, 길이 약 300m 규모의 간선 배수로다.  연합뉴스
2012년 가을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주변 지하에서 발견된 1900년대 ‘벽돌식 하수관거’ 내부 모습. 1900년을 전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하수관거는 성인 한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지름 1500㎜, 길이 약 300m 규모의 간선 배수로다. 연합뉴스

▶영국의 사회생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대표작 <털 없는 원숭이>에서 엄청난 오물을 만들어 주변에 산처럼 쌓아 놓고도 제 몸만 깨끗하게 닦는 인간을 조롱한다. 수도권에만 2500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모두들 제 몸을 깨끗하게 꾸미는 것만 신경쓰는데, 이들이 쏟아낸 오물은 다 어디로 갈까? 몸을 씻고 버린 구정물, 공장 폐수, 그리고 분뇨를 모두 품는 한강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다. 만일 하수도가 없다면? 혹은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하수도라는 존재, 이대로 가다간 언젠가 하수도 처리능력이 한계에 이르는 그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한수유정(漢水有情). 서울시장 집무실에는 붓글씨 작품 하나가 걸려 있다. 올해 초 세상을 떠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작품이다. 1994년 예술의전당 쪽으로부터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하는 서예전에 서울을 주제로 한 작품을 출품해달라고 요청받고는 고민 끝에 ‘서울’이라는 두 글자를 북악의 산과 한강의 물로 형상화했다고 한다. 글자 옆에 시 한 구절도 덧붙였다. 북악무심오천년(北岳無心五千年), 한수유정칠백리(漢水有情七百里). 작가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북악은 왕조를 상징하고 한수는 민초를 상징한다. 북악은 5천년 동안 백성들의 고통에 무심하였지만 한수는 민초들의 애환을 싣고 700리를 유정하게 흐르고 있다.”

2500만명이 넘는 수도권 시민들이 뱉어내는 욕망의 찌꺼기들이 흘러들고 있는 공간이 바로 한강 700리다. 발원지인 강원 태백의 검룡소에서 시작해 서해와 만나는 하구에 이르기까지. 주변 땅 위엔 한 치의 빈 공간도 없이 집과 건물과 공장과 도로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쏟아낸 오물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700리 한강 물길이 하나의 거대한 하수관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과연 현재와 같은 하수도 시스템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영원토록 정화해낼 수 있을까?

분류식 하수관거 늘어나는 추세

우선 ‘쓰레기물’(waste water)을 재생시키는 현재의 하수도 시스템부터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쓰고 버린 물은 하수구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거미줄 같은 하수관거를 거쳐 종말처리장에서 최종처리된 후 하천으로 방류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눈앞에 다시 등장한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다시 ‘보이는 것’으로 변하는 재생 과정에서 핵심 구실을 하는 게 하수도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연쇄살인범은 시체를 밭도랑에 내다버리고, 한강의 괴물은 거대한 우수관 속에 숨어 있다. 암흑의 지하세계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따라다니는 하수도지만, 정작 첨단 환경기술은 더러운 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마법을 부리는 셈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비교적 잘 정비된 하수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2014년 기준 하수도 통계를 보면, 서울시의 하수도 설치율은 100%, 전국적으론 72%로,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 하수는 가정과 사업장에서 사용하고 버린 더러운 물(오수)과 화장실에서 나오는 분뇨뿐 아니라, 거리의 빗물(우수)을 모두 포함한다. 오수와 분뇨, 빗물을 하수관거를 통해 함께 종말처리장으로 보내 정화시키는 방식이 합류식이고, 오수·분뇨와 빗물을 구분해 처리하는 게 분류식이다. 분류식의 경우, 빗물은 빗물받이를 통해 하천으로 흐르고 화장실 오수는 바로 처리장으로 보내므로 정화조 설치비용이 들지 않고 냄새가 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현재 신도시를 중심으로 분류식 하수관거가 늘어나고는 있으나, 아직 대부분의 지역에선 합류식이 우세하다. 서울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 시 전역 지하에는 모두 61만개의 정화조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수·분뇨·빗물 흘러드는 하수관거
76년 청계천에 첫 하수종말처리장
서울시 하수도 설치율 이미 100%
땅밑에 묻힌 정화조만 61만개
선진국 수준 현대적 시스템 갖춰

세계인구 40%만 하수도 혜택 누려
가뭄 때 한강에도 녹조 대량 발생
상류서 흘러드는 물 줄었기 때문
첨단 처리기술 개발 활발하지만
‘만능 해결사’ 못돼, 욕망 제어해야

물론 우리가 지금과 같은 현대식 하수도 시스템을 갖춘 게 아주 오래전 일은 아니다. 서울 청계천에 최초의 현대식 하수종말처리장이 설치된 건 1976년. 하루 처리 용량은 15만톤에 불과했다. 구한말 조선을 찾은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서울 거리는 똥 천지고 하천은 시궁창이었다. 고종의 주치의였던 독일인 의사 리하르트 뷘슈는 당시 조선인들의 낮은 위생의식을 이렇게 적었다. “서울의 길거리 청소는 견공들에게 맡겨놓은 상태다. 곳곳에 널린 대변을 개들이 먹어치우니 길의 청결 여부는 견공의 식욕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대부분의 유럽과 미국 도시에도 19세기 중반에 이르도록 공중위생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으니 그들이 우리 사정을 마냥 비웃을 건 못 됐다. 외려 분뇨를 퇴비로 재활용한 우리 선조들이 서양인들보다 훨씬 더 친환경적인 분뇨처리시스템을 갖췄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조선 후기 들어 한양의 인구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18세기에는 20만명 이상이 한양 도성 안의 비좁은 공간에 몰려 살면서 인분과 각종 오물을 길거리와 인근 하천에 내다버렸다.1904년 위생청결법이 만들어진 뒤에야 서울에 최초의 공중변소가 세워졌다.

이제는 우리 일상에서 너무나 익숙한 존재가 되었지만, 현대적 의미의 공영 하수처리시스템은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등장했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여파로 19세기 유럽의 하천은 극심하게 오염됐고, 오염된 물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콜레라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템스강 오염으로 골치를 앓던 영국에선 두 가지 방법이 도입됐다. 우리네 조상들이 예전부터 해왔듯이, 하수와 분뇨를 농경지에 살포하거나 침전지를 만들어 고형물을 가라앉힌 뒤 묽어진 오수를 하천이나 바다로 방류했다. 영국의학학회지(BMJ)에 따르면, 위생혁명은 백신의 발견을 제치고 1840년대 이후 의학적 발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하로 숨은 첨단 처리시설

사정이 이럴진대, 만일 우리 삶에서 하수도가 사라진다면? 하수도가 제대로 갖춰진 나라 사람들로선 좀체 상상하기 힘든 장면일 테지만, 아직도 지구상에는 현대적 하수도 시스템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간접적으로나마 그날의 시나리오를 엿볼 수 있다. 세계 167개국의 하수도 통계를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하수종말처리장까지 갖춘 제대로 된 하수도 기반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은 세계 인구의 40%에 불과하다. 하수처리장이 없는 경우, 하수관거를 거친 오수와 분뇨가 그대로 하천으로 유입된다. 하천이 거대한 하수관으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캄보디아 프놈펜이 좋은 예다. 프놈펜은 인구 200만명을 웃도는 대도시임에도, 한데 모아진 오수를 자연적으로 정화하는 시 외곽의 습지를 제외한다면 현대적 하수처리장 시설을 찾아볼 수 없다. 도심의 오수와 분뇨는 방류구를 통해 도시를 관통하는 톤레삽강으로 흘러든다. 앙코르 문명의 발상지인 성스러운 산 프놈쿨렌에서 발원해 250㎞를 흘러온 톤레삽강은 프놈펜에서 앙코르의 후예들이 쓰고 버린 폐수에 몸을 더럽힌 후 메콩강과 만난다. 2014년 7월 개발도상국 교육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프놈펜왕립대학교 환경학과 학생들과 프놈펜의 여러 하천에서 환경 실습을 진행한 적이 있다. 프놈펜 도심에서 흘러든 오수의 수질을 측정하던 우리들은 경악했다. 오염 지표가 되는 몇가지 측정항목의 수치가 기기가 나타낼 수 있는 최대치를 보인 것이다. 방류수는 악취를 풍겼고 톤레삽강에 섞인 뒤에도 기다란 흑색의 자취를 남겼다. 그런데 하류의 메콩강 수질을 분석해봤더니 인간이 쏟아낸 오수의 흔적이 의외로 미미했다. 강의 어머니란 뜻을 지닌 메콩강이 결국엔 자비롭게도 오염된 물을 자연정화시켰기 때문이다.

2015년 여름 가뭄으로 한강 상류로부터 흘러드는 물의 양이 줄어들자 한강 하류 일대엔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녹색 페인트를 풀어놓은 듯한 서울 마포대교 아래 한강에서 흰뺨검둥오리가 헤엄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15년 여름 가뭄으로 한강 상류로부터 흘러드는 물의 양이 줄어들자 한강 하류 일대엔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녹색 페인트를 풀어놓은 듯한 서울 마포대교 아래 한강에서 흰뺨검둥오리가 헤엄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 대목에서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현대적 하수도 시스템을 갖췄다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하천이 더럽혀지는 경우를 종종 보아서다. 지난해 여름, 한강 하류는 전례없이 심한 녹조로 뒤덮였다. 물고기가 집단 폐사해 생계에 위협을 느낀 어민들이 참다못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한 인터뷰에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한강 녹조의 주범으로 서울시 하수처리장을 지목한 바 있다. “잠실 수중보에서 신곡 수중보 사이 4개 하수처리장에서 매일 450만톤 가까운 하수가 들어오는데, 가뭄으로 인해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적다 보니 하수가 한강물의 50%를 차지한다.” 가뭄으로 한강 하류까지 흘러온 물의 양이 예년의 40%에 불과한데, 서울시의 하수처리장 방류수는 환경기준을 초과할 정도로 다량의 인을 포함하고 있어 녹조를 발생시켰다는 얘기다. 한강물의 절반 이상이 하수도를 거쳐서 재생된 물이었던 셈이다.

이 말을 되새겨보면 제아무리 성능 좋은 현대적 하수도 시스템을 갖췄을지라도 하수처리 기술과 용량의 한계뿐 아니라 환경 요인에 따라선 얼마든지 우리 눈앞에 재앙이 나타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할 수 있다. 하수처리 기술이 날로 발전하는 건 분명하다. 생태 보전, 자원순환 및 재생, 주민 친화적인 방향으로 끊임없이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노후화한 하수관거를 정비하고 악취를 풍기는 혐오시설인 하수처리장을 운동장 같은 주민편의시설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예컨대 핀란드 헬싱키의 경우, 기존의 하수처리장을 모두 없애고 거대한 암반 아래 최첨단 처리시설을 만들었다. 다단계 악취제거장치를 가동해 냄새로 인한 민원이 말끔하게 사라지도록 했을뿐더러 지상에 설치된 각종 편의시설은 주민들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받고 있다.

최상의 발명품 아닐지도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친환경 하수처리장을 새로 짓거나 계획 중이다. 20년 넘도록 악취를 뿜어내던 안양 박달하수처리장 지하화 사업을 대표적으로 꼽을 만하다. 1992년 가동을 시작한 이곳은 안양 전역과 인근의 군포·의왕·과천·광명 등 일부에서 배출된 하수를 하루 평균 30만톤씩 처리해왔다. 내년 초 지하화 사업이 예정대로 마무리되면 지상엔 푸른 잔디광장과 골프연습장 등 주민휴식공간이 들어서게 된다. 지하에 마련된 시설에서 하수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로는 5000여가구가 쓸 수 있는 전기가 생산된다.

그럼에도 ‘에코 테크노피아’가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주리라 과연 단정할 수 있을까? 제아무리 친환경 처리 기술이 날로 발전한다 하더라도 하수처리 용량을 무한정 늘리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일 수 있다. 도시는 쉬지 않고 팽창하는데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수도를 ‘만능 해결사’쯤으로 여기며 날마다 엄청난 오수를 쏟아내고 있다. 하물며 여기에 갈수록 잦아지고 있는 기상이변마저 가세한다면, 우리가 철석같이 신뢰하고 있는 현대적 하수도 시스템이 우리를 ‘배신’하지 말란 법이 있을까?

우리의 익숙한 믿음과는 달리, 현대적 하수도 시스템이 우리 곁에 찾아온 건 기나긴 인류 역사에서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나마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해소하기엔 완전하지도 않을뿐더러 최상의 발명품이 아닐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기술개발의 노력은 당연히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그 노력만큼이나 우리의 욕망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의 외진 곳에서 우리들이 배출한 찌꺼기를 묵묵히 걸러내고 새 생명으로 재생시키는 하수도를 돕자. 하수도가 짊어진 짐이라도 덜어주자.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 그들은 한순간에 붕괴, 아니 ‘반란’한다. 욕망의 디스토피아!

박지형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

※<어쩌면>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통념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는 꼭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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