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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근대에 왜 집착했느뇨, 하면?

등록 2005-12-29 19:39수정 2011-12-13 18:04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60년대 근대화와 우리 근대문학 연구

지난해 모 대학 대학원에 강의할 기회가 주어졌소. 소금기둥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뒤돌아보아서는 안 되었을 터인데 첫 시간부터 이 터부에 부딪히고 말았소. 밑천이라고는 내가 그동안 해온 공부의 성격을 말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던 탓이오. 비트겐슈타인의 어법으로 하면 체험(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이니까. 60년대에 들어서 인문학에 입문한 우리 세대의 성격은 어떠했던가. 이 물음에는 다음과 같이 말해질 수 있소. ‘독립운동하기다!’라고. ‘독립운동이란 만주벌판에서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아해하는 세대 앞에서 이 사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적절할까. 그 방도를 알지 못하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겠으나, 만일 ‘국내에서도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두 가지 점을 말해볼 수 있겠소.

식민지사관 극복이 그 하나. 조선후기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자체의 힘으로 극복할 힘이 없었기에 식민지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 식민지사관은 과연 과학(학문)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 만일 있다면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단연 극복되어야 하겠지요. 극복방식이란 어떠해야 할까. 일목요연한 해답이 주어지오. 학문적으로 증명되어야 함이 그것.

학문이라 했거니와, 조선후기 사회를 문제삼을진댄 근대 곧 자본주의화의 근거를 밝힘이 아닐 수 없지요. 이 점에서 제일 유력한 쪽이 당시로서는 이른바 과학 중의 과학이라 말해지는 사회경제사 분야였지요. 북한에서는 광산 조직과 그 운용 방식에서 자본주의적 맹아를 찾아냈다면, 남한에서의 그것은 양안(量案, 토지대장)의 분석에서 얻어낸 김용섭 교수의 ‘경영형 부농’ 개념(1970)이었습니다. 근대화의 맹아가 18세기 후반에까지 이끌어올려진다는 이러한 학문적 성과만큼 60년대 인문 사회학의 거대담론이 없었다고 해도 큰 망발은 아닐 터. 고 김현 씨와 밤을 새며 토론하고 함께 18세기 후반을 기점으로 <한국문학사>(1973)를 쓴 것이 그 한 증거.

다른 하나는, 이 점이 중요하거니와, 근대화란 냉전(양극) 체제의 산물이었다는 점. 근대화라는 용어가 19세기에 등장했다고는 하나, 이 용어가 적극적 의미를 갖고 사용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봉건제에서 자본제로, 그리하여 사회주의로 인류사가 나아간다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역사적 필연론’에 대해 그 반론으로 제시된 것이 산업화 근대화론이지요. 러시아 혁명에서 이룬 러시아사의 과정을 산업화 근대화론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는 이 논리를 ‘이데올로기의 끝장’이 잘 말해놓았소. 혁명 없이도 사회의 점진적 개혁이 가능하다는 역사인식이 그것. 이러한 새 역사 인식의 학문적 사례의 하나가 로스토의 <경제성장의 제 단계>(1960)입니다. 선진, 후진국을 막론하고 ‘이륙’(테이크 오프)을 겪어 산업사회로 이행한다는 이 이론이 제3세계의 근대화를 내세운 미국의 대외정책이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그 ‘근대화’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자본제 국민국가로 요약될 성질의 것이지요. 구체적으로는 (1)사회구성원의 이동의 활성화, (2)신분에서 계약으로 나아가기, (3)세속화로 말해지는 경제적 합리성 등등.

사람들은 내게 자주 묻더군요. 어째서 그토록 ‘근대’에 집착했는가, 입만 벌리면 근대문학, 또 한국근대문학이라 떠드는가, 라고. 그럴 적마다 번번이 샛별처럼 눈을 뜰 수밖에요. 어째서? 내 경험의 세대적 한계인 까닭. 혁명 없이도 근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이것만큼 주어진 여건 내의 가슴 벅찬 확실한 일이 당시로서는 없었으니까. 혁명으로라야 인류사가 바람직하게 나아간다는 생각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사회 속에서 내가 살았기 때문이오. 러시아어 사전 갖는 것도 안 되는, 국시(國是)가 반공으로 된 그런 사회였으니까. 헤겔 투로 하면 ‘여기가 로도스(장미)다, 여기서 춤춰라’였소. 그러기에 내 시야엔 일제하에서 악전고투하는 우리의 ‘근대화’만이 크게 보이고 나머지는 아주 사소하게 보일 수밖에요. 근대문학이란 무엇이뇨. 국민국가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국어(국가어)로써 하는 문학인 것. 한국의 근대문학이란 새삼 무엇이뇨. 임시정부 및 그 대행기관인 조선어학회가 관장한 조선의 언어여야 하는 문학. 일제가 한국 근대문학을 식민화한 것이 조선어학회 사건(1942. 10)에서 광복까지라 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말 탄 자여, 지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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