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
‘난중일기’ 위대한 분노의 기록
‘난중일기’ 위대한 분노의 기록
이촌동 한강변엔 세 가지 길이 있소. 한강 둔치 속의 길이 그 하나. 홍수가 휩쓸고 지난 자리, 잡초 속 흙길이오. 봄이면 쪽빛 제비꽃, 황금조각의 민들레, 백설처럼 흰 찔레꽃 무더기, 여름이면 잡초 속에서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원추리, 달맞이꽃에 개망초, 가을이면 들국화와 자귀나무의 열매, 그리고 키를 넘는 은빛 억새풀의 펼쳐진 비단길. 이렇게 멋대로 묘사한 것은 이유가 있소. 내 길, 나만의 길인 까닭이오. 아무도 훼방놓지 않기에 내 길이오. 유년기 왕복 20리 길 걸어 소학교에 다니던 소년의 길인 까닭이오. 방금 쓰다가 두고온 원고를 머릿속으로 수정하는 것도, 장차 내가 가야 할 곳은 상념하는 것도 이 길 위에서이오.
국립묘원을 굽어보는 남서쪽의 하늘길이 그 두 번째이오. 막힘 없는 이 길은 거대한 스크린이오. 황혼이면 어김없이 김포를 향해 낮게, 크고 느리게 몸체를 드러내며 나는 항공기를 연출시키고 있소. 관악산 상공을 넘어오는 저 비행기엔 일찍이 내가 타고 있었소. 그렇다고 이 거대한 스크린을 두고 나만의 것이라 우길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내것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스크린의 공동 주인공이라 하면 안 될까.
또 하나의 길, 그것은 한강의 물길이오. 이 길만은 내 길, 또는 우리의 길이라 우길 수 없소. 그럼 누구의 길일까요. 한리버랜드 소속 정기선의 길일까. 요란한 소리와 속도로 치닫는 순찰선의 길일까. 수상스키, 윈드서핑의 길일까. 그렇기는 하나,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없소. 이곳에 오면 대번에 그 까닭을 알 수 있소. 거북선이 거대하게 버티고 있기에 그러하오.
거북선은 과연 무엇이며 누구의 것일까. 이 물음만큼 싱겁고도 분명한 해답이 따로 있으랴. 전함이며 충무공의 것이며 역사의 것이니까. 누가 그 앞을 범연히 지나가랴. 그 누가 그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으랴. 이 큰 거북선이 자체의 중력으로 이촌동 앞에서 동작대교까지 유유히 순항하는 장면을 나는 여러 번 보았소. 자체의 동력으로 말이외다. 태극기를 달고서 말이외다.
이 거북선이 한강의 물길을 따라 아주 긴 항해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셨는가. 2005년 11월 9일, 그 큰 거북선이 이촌동을 떠나는 그 장엄한 장면이란 내 붓으로 그리기 어렵소. 강물에까지 막혀 있는 철조망을 거북선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도 뚫기에 불가능했으리라. 55년 만의 휴전선 물길을 가르고 황해를 지나 충렬사가 계신 통영에 닻을 내린 것은 11월 16일이었소.
그 큰 거북선이 사라진 나루터. 빈 바지선만이 아직도 허수아비 모양 그대로 남아 있소. 그렇다고 해서 거북선이 사라졌다 할 수 있을까. 한강 둔치의 흙길이 그러하듯, 거대한 스크린의 하늘길이 또 그러하듯, ‘물의 길’은 당초 충무공의 것이었으니까.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특히 그러하오.
<난중일기>란 무엇인가. 충무공이 쓴 임진란 7년간의 일기체 기록. 비범한 문장, 곡진한 기사, 민중과 더불어 함께 숨쉰 보배로운 기록임을 누가 모르랴. 이 기록을 일거에 독파한 자라면 매우 기이한 대목에 부딪게 마련이오. 정유년 일기가 두 책이라는 것, 그 중에 일부가 중복되어 있음이 그것. 제1책은 4월 1일에서 10월 8일까지로 끝나 있고 제2책은 다시 8월 5일에서 12월 30일까지 끝나 있소. 그러니까 8월 5일에서 10월 8일까지는 두 책이 중복되어 있지 않겠소. 왜 공은 두 번 썼을까. 제2책이 조금 자세하긴 하지만 그것이 이유일 수 있을까.
이 의문이 거북선 나루터를 지날 적마다 나를 괴롭혔소. 거북선이 사라진 지금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오. 한때, 나는 <난중일기>를 ‘위대한 분노의 서’라고 읽었소. 전쟁이 끝나기 전에 자기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던 한 사내의 기록이기에 감동적이었던 것. 위대한 분노라 했거니와 그러기에 공은 같은 기록을 두 번 썼던 것이 아니었을까.
공이 옥문을 나선 것은 정유년 4월 1일이었소. 이른바 백의종군의 길. 조정에서 복권이 하달된 것은 8월 19일이었소. 이 날 공은 주변 수장들에게 조서에 숙배하기를 요구했소. 이를 거절하는 인물이 딱 한 사람 있었소. 바로 수사(경상군 절도사) 배설(裵楔). 적과의 싸움을 피해다닌 자. ‘그 건방진 태도는 말할 수 없다’(其侮慢之態不可言)고 제1책에 적었소. 제2책에는 ‘참으로 놀라운 일’(其情極愕)이라 적었소. 이외에도 배설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소. 자존심을 무시한 사내에 대한 공의 분노! 이 분노가 두 번씩의 기록을 가능케 했던 것이 아닐까. 그 큰 거북선은 충렬사가 계신 통영으로 갔고, 이촌동 거북선 나루터엔 빈 바지선만 남아 있소. 흙길도, 하늘의 길도 그대로 있소. 위대한 분노의 기록과 함께 거북선 없는 물길도 물길이 아닌 듯 그대로 있소.
공이 옥문을 나선 것은 정유년 4월 1일이었소. 이른바 백의종군의 길. 조정에서 복권이 하달된 것은 8월 19일이었소. 이 날 공은 주변 수장들에게 조서에 숙배하기를 요구했소. 이를 거절하는 인물이 딱 한 사람 있었소. 바로 수사(경상군 절도사) 배설(裵楔). 적과의 싸움을 피해다닌 자. ‘그 건방진 태도는 말할 수 없다’(其侮慢之態不可言)고 제1책에 적었소. 제2책에는 ‘참으로 놀라운 일’(其情極愕)이라 적었소. 이외에도 배설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소. 자존심을 무시한 사내에 대한 공의 분노! 이 분노가 두 번씩의 기록을 가능케 했던 것이 아닐까. 그 큰 거북선은 충렬사가 계신 통영으로 갔고, 이촌동 거북선 나루터엔 빈 바지선만 남아 있소. 흙길도, 하늘의 길도 그대로 있소. 위대한 분노의 기록과 함께 거북선 없는 물길도 물길이 아닌 듯 그대로 있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