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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예술가들에게 강제 한국어 교습이라니

등록 2006-06-22 20:39수정 2006-06-23 16:25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다. ‘작가 상주 프로그램’이라고 풀어 볼 수 있을 텐데, 예술가에게 일정 기간 안정적인 작업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창작을 지원하는 제도를 가리킨다.

문학 쪽에서는 미국 아이오와대학이 1967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국제 창작 프로그램’(International Writing Program, IWP)이 유명하다. 초창기의 황동규 시인을 필두로 최승자, 권지예, 유재현씨 등 한국 문인들이 꾸준히 참여해 오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이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으로 선정된 지난해에는 독일 외무부 초청으로 소설가 김연수·전경린·천운영씨가 독일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조금 다른 경로이기는 하지만 올해도 소설가 조경란씨가 ‘베를린 문학의 집’에 한 달 간 머물 참이다. 대산문화재단도 미국 버클리대와 손잡고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마련해 올 가을 첫 참가자를 파견할 예정이다.

이처럼 그동안 ‘레지던스 프로그램’ 하면 한국의 예술가가 미국이나 유럽 등의 작업 공간에 입주하는 방식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해외 예술가들을 국내에 초청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활기를 띠고 있다. 경제력을 필두로 한 국력의 확대, 그리고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한류 바람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10개년 계획으로 시행에 들어간 ‘아시아 문화 동반자 사업(Asia Culture Partnership Initiative, ACPI)’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시범사업에 이어 올해부터 본격 사업이 시작되었는데, 아시아권 20여개 나라 144명의 예술가, 문화행정가 및 체육인을 초청해서 6개월 정도씩 머물며 한국의 문화를 익히도록 하고 있다. 문화관광부의 소관 범위가 워낙 방대한 만큼 중앙박물관, 현대미술관, 대한체육회 등 산하 및 유관기관 27곳에 프로그램 진행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위탁받은 기관들 역시 인력과 예산 부족 때문에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전적으로 챙기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프로그램의 태반이 각 대학 부속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위탁된 인도네시아, 필리핀, 타이 문인 여섯 사람의 경우 고려대 한국어문화교육센터에 다니고 있는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네 시간씩 착실하게 강의를 듣고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재수강을 해야 하는 ‘강행군’으로 전해진다. 사정은 다른 기관에 위탁된 참가자들에게도 대동소이한 것으로 파악된다.

문화관광부의 담당자는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익히는 것이 기본이며 참가자들 역시 한국어 연수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적어도 일부 참가자들은 강제적인 한국어 교육에 부담감과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6개월간의 한국어 공부가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도 의문이다. 국가 이미지 개선과 친한(親韓) 문화인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프로그램 취지와는 반대로 오히려 한국에 대한 악감정만 키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가난한 나라 예술가들에 대한 폭력이라는 지적도 있다. 앞서 예로 든 아이오와대나 독일쪽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영어나 독일어 연수가 강제사항으로 포함돼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참가자들에게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는 최대한 주되 의무나 강제는 최소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강제적인 한국어 교습은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 희망자에 한해 한국어를 공부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다른 방식의 한국문화 체험 기회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 여력이 없다면, 거처와 체재비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쪽이 예술가에게 어울리는 방법이겠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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