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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아랍 이어 북한에도 세계 패션잡지를!

등록 2006-07-26 21:15수정 2006-07-26 22:43

강주연 패션 어드벤처
9·11이 터지고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아랍인들을 이유 없이 미워하고 있을 즈음, 나는 난생처음 이슬람 국가라는 모로코에 가게 되었다. 봄 시즌을 맞아 신상품으로 나온 의상들과 액세서리들로 패션 화보 촬영을 해 오기 위해서였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도시, 카사블랑카에 도착했건만 생각보다 휑하고 낡은 도시 풍경은 실망스럽기만 했다. 게다가 촬영팀을 더욱 낙담시켰던 사건은 촬영 중에 발생했다. 함께 간 모델에게 배꼽과 어깨가 살짝 드러나는 얇은 블라우스를 입혀서 카사블랑카의 한 골목에서 촬영을 시도했는데, 웬걸, 촬영을 시작한 지 5분도 채 안되어서 갑자기 트렌치코트를 입은 형사 두 명이 어디에선가 나타나 촬영을 중단시켰다. 이유인즉 그곳에서는 여성들이 신체의 일부를 노출한 채 거리에 나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촬영팀은 현지 대사관에 부랴부랴 공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하고도, 계속되는 형사들의 추적(?) 때문에 숨다시피 해가며 겨우 촬영을 마쳤다. 당시 미국 언론이 거의 악마의 신봉자들처럼 몰아붙였던 이슬람 국가 사람들은 알고 보면 훨씬 소박하고 정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여성에 대한 박한 대우만큼은 듣던 것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다.

그런데 후세인의 몰락으로 학교에 다시 갈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쁘다며 눈물을 흘리던 소녀도, 국제 사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인권운동과 환경운동에 정열을 쏟고 있는 요르단의 라니아 왕비도 반가워할 만한 일이 생겼다. 전 세계 38개국에서 발행되는 패션 잡지 〈엘르〉가 서른아홉번째로 아랍국 여성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엘르 오리엔트’(사진)라는 이름으로 베이루트에서 제작되어 시리아, 요르단,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그리고 현재 총성이 멈추지 않고 있는 레바논에까지 배포되는 회교국 최초의 인터내셔널 패션잡지인 셈이다.

엘르 오리엔트의 편집장인 데지레 샤데크(Desiree Sad다)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은 아랍 여성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며, ‘코란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단 한가지 전제 아래 가능한 모든 주제를 다루겠다. 불행이라는 틀로 회교국 여성들을 다루는 것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밝혔다.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도 한 패션이 사회에 주고받는 영향이란 무궁무진하다. 어쩌면 일개 잡지 한 권이 수세기 동안 아랍계 여성들 앞에 굳게 닫혀 있었던 인권이라는 문을 활짝 열어주는 데에 요긴한 열쇠 같은 구실을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제발 그렇게 돼 주길 바란다. 여전히 총성이 멈추지 않는 긴장의 땅, 그곳 아랍의 여성들이 오늘도 꾸고 있는 꿈과 희망은 그 검은 히잡으로도 감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문득, 다음에는 이런 뉴스도 기다려진다. “잡지 〈엘르〉가 전세계 40번째로 북한 여성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엘르〉 패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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