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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모처럼 반가운 ‘근대문학 종언’ 논쟁

등록 2006-08-17 17:42수정 2006-08-18 14:24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일본의 문학평론가 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65)의 논문 <근대문학의 종언>처럼 한국 문단에 커다란 파급력을 미친 번역 논문도 많지 않을 것이다. 계간 <문학동네> 2004년 겨울호에 <근대문학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 소개될 때부터 논란은 예고되어 있었다. 이 잡지의 편집진이 이례적으로 논문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군말’을 곁들여 수록한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과연 <비평과 전망>과 <문학수첩> 등 문단 주류에 비판적인 잡지들을 중심으로 가라타니의 논문을 거명하면서 <문학동네>와 현단계 한국문학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줄을 이었다. 물론 ‘근대문학은 끝났다’는 가라타니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지난 4월 문제의 논문을 표제로 삼은 단행본 <근대문학의 종언>이 번역 출간되면서 논쟁은 한층 뜨겁게 달아올랐다. 최근에는 각각 가라타니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당대 한국문학을 비판하는 논문과, 거꾸로 가라타니를 비판하면서 당대 한국문학을 옹호하는 글이 잡지에 발표되어 눈길을 끈다. <문학동네> 동인인 황종연 동국대 교수는 <현대문학> 8월호에 실은 <문학의 묵시록 이후 -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읽고>라는 글에서 가라타니가 헤겔적 목적론의 견지에서 문학사를 바라보았다고 비판했다. 젊은 평론가 고봉준(경희대 강사)씨는 반년간 비평지 <작가와 비평> 2006년 상반기호에 실린 <근대문학의 종언, 그리고 ‘소설’이라고 불리는 대략난감한 글쓰기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가라타니의 주장을 이어받아 현단계 한국문학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했다.

먼저 고씨의 주장부터 살펴 보자. 그는 “최근의 소설들에선 좀체 세계에 대한 ‘질문’을 발견하기가 어렵다”면서 “90년대 이후 소설이 보여준 트리비얼리즘(=쇄말주의)적인 경향”을 지적한다. 최근 소설들은 ‘독단적 경험주의’와 ‘독아주의’에 빠져 있으며, 젊은 작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가벼움과 유희 전략이란 “자본주의라는 지배 질서의 그물에 포획되어 문학이 ‘상품’으로 옷을 갈아입는 과정에서 생기는 현상은 아닌가” 하는 것이 그의 의문이다.

반면 황 교수는 “근대문학의 종언 이후 문학은 하찮다는 그(=가라타니)의 주장은(…)개인적·국지적 경험의 무리한 일반화가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 “바람직한 것은 근대문학의 어떤 이상을 고집하며 문학집단들의 무능과 타락을 고발하거나 아니면 근대문학의 어떤 자질이 한국문학에 살아 있다는 증거를 찾아내려고 부심하는 일이 아니라 근대문학 이후에도 문학이 존재할 이유를 생각하는 일이다.” 요컨대 가라타니의 문학관은 낡은 헤겔주의적의 유산이며, 헤겔이 말하는 “예술의 종언이란 예술의 자기해방이기도 하다”는 것이 황 교수의 주장이다.

이즈음 각광 받는 젊은 작가들과 같은 또래인 고씨가 가라타니적 근대문학관에서 이탈하려는 작가들에 대해 비판적인 반면, 그보다 10년 정도 연상인 황 교수가 오히려 ‘탈’근대적 문학관을 지지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황 교수는 “동시대의 문학을 마치 대파국을 앞둔 퇴폐의 준동처럼 여기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면서 “가라타니의 저작이(…)속류 이데올로기 비판을 유발한 책임”이 있다는 쪽이다. 반대로, 문학이 공동체의 운명과 무관한 작가들의 자기위안이자 오락에 지나지 않는다면, 문학과 문인들에 대한 사회 전체의 배려와 특권화는 없어져야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고씨는 반문한다.

가라타니가 문제의 논문에서 주장한 문학의 사회적 책임(=전쟁, 환경문제,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적 현안에 대한 관심과 참여)에 동의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웃 나라 석학이 제출한 논점은 문학의 본질과 기능, 사회적 역할의 유무와 성격 등에 관해 한국 문단이 모처럼 활발한 논쟁을 펼칠 근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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