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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간선거 예측서 내가 0점 받은 이유

등록 2006-11-16 18:02

공화당 12년 의회지배 시대를 끝낸 지난 7일 미국 중간선거 투표일에 위스컨신주 호버트의 주민들이 투표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공화당 패배의 최대 요인은 앞날이 보이지 않는 이라크 개입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과 반발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묘한 구석이 미국선거에는 적지 않다. 호버트/AP 연합
공화당 12년 의회지배 시대를 끝낸 지난 7일 미국 중간선거 투표일에 위스컨신주 호버트의 주민들이 투표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공화당 패배의 최대 요인은 앞날이 보이지 않는 이라크 개입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과 반발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묘한 구석이 미국선거에는 적지 않다. 호버트/AP 연합
공화 후보 물리친 ‘사회주의자’ 상원의원 이라크전 반대하고 민주당 택한 유대인들
백만달러 지급 ‘유권자 보상법안’ 부결…수수께끼 같은 미국인들의 투표성향
안과 밖

석 달 전 내가 미국에 왔을 때 이 나라는 이미 한창 선거운동 중이었다. 미국과 세계의 운명을 가를 중대한 정치일정이라는 소리가 많았다. 그런데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민주당 우세를 점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나는 약간 김이 빠졌다. 알다시피 미국에서는 연방선거를 할 때 다른 선거를 몰아서 같이 한다. 연방 상원·하원의원 선거는 기본이고 각 주별로 주지사, 주상원의원, 주하원의원, 주검찰총장, 지방자치단체 의원을 뽑는다. 그뿐만 아니다. 주헌법 개정안, 주민발안 법안, 주민여론투표, 주민결의안 등도 선거에 부친다. 경우에 따라서는 유권자 한 명이 수십 건의 투표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전자투표가 도입되기 전에는 투표용지가 신문지만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전국적으로 다섯 사례를 뽑아 나 자신의 미국정치 이해도를 측정해 보기로 했다. 다섯 건을 모두 맞히면 A, 네 개를 맞히면 B,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음은 자가 테스트 결과 보고서다.

(1) 나는 우선 현재 살고 있는 매사추세츠 주의 연방 상원의원 선거를 점찍었다. 존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으로 현직 의원인 에드워드 케네디가 수성에 성공할 것인가? 6년 임기의 상원의원직 8선에 도전하는 자리였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부터 의원을 했다니 참 오래하기도 했다. 그런데 매사추세츠가 민주당의 아성이어선지, 아니면 케네디가의 후광이 워낙 막강해서인지 사람들은 결과에 큰 관심이 없었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 따르면 케네디가 키우는 애견 이름이 스플래시와 써니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아도 공화당의 도전자 케네스 체이스에 대해선 응답자의 77%가 ‘금시초문’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케네디가 이기는 것은 기정사실이로되 과연 얼마 차이로 승리할지를 점쳐 보기로 했다.

예측: 나는 체이스가 기를 쓰고 운동을 하고 다니면 부동표를 조금은 움직일 거라고 보고 케네디가 70% 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 케네디가 쉽게 이기긴 했어도 득표율은 69.5%에 머물렀다.

해석: 체이스가 정말 열심히 악수를 하고 다닌 것이 분명했다. 케네디는 임기가 끝나는 2012년이 되면 우리 나이로 81살이 된다. 그때 가면 은퇴하겠느냐는 기자 질문에, 왈 “정치가 뭔지 제대로 알 때까지 은퇴하지 않겠다.”


(2) 다음으로 내가 관심을 쏟은 곳은 버몬트주의 연방 상원의원 선거였다. 전임자가 은퇴하면서 생긴 공석을 놓고 공화당 후보와 현직 무소속 하원의원이 붙은 곳이다. 민주당은 공천을 아예 포기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 무소속 후보가 누구인가? 버나드 샌더스 의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체를 알아보았다. 올해 65살인 그는 스스로를 ‘민주 사회주의자’로 규정하고 있었다. 요즘 미국에서는 리버럴만 돼도 좌파로 칠 정도인데 사회주의자가 상원의원에 출마한다? 이런 사람이 애초 하원에는 어떻게 진출했을까?

샌더스는 베트남 반전운동가로 시작해 주하원의원과 주지사에 출마했다가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초기에는 득표율 2% 미만의 별 볼일 없는 무명 후보였다. 그러다 버몬트 주의 벌링턴시 시장으로 당선되는 이변을 낳았고 (당연히 무소속으로) 서민 공영주택사업, 케이블 TV시청료 환불운동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 후 연방하원에 진출해서 전국민 의료보장, 고삐 풀린 자유무역 반대, 노동자 권익보호, 걸프전 반대, 아프간·이라크 침공반대 등을 내세웠다. 미국전국노총 (AFL-CIO)이 의원별로 매긴 점수표에서 100점을 받았다고 한다.

예측: 사람은 좋아 보이지만 사회주의자의 상원진출이 어디 쉬울까? 게다가 공화당 후보는 자기 돈 7백만달러를 쓰면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지 않은가. 불가능할 것 같다.

결과: 샌더스 후보 65.5% 득표로 쾌승. 미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상원의원 탄생.

해석: 아메리카에서도 ★은 이루어진다.

(3) 유대인이 어느 정당을 지지할 것인지도 관심사였다. 선거가 끝나면 인종, 성별, 연령, 교육, 종교, 수입, 지역별로 상세한 조사결과가 나오므로 한번 점쳐볼 만한 주제였다. 왜 유대인을 골랐나? 내가 우리나라 신문을 열심히 읽었기 때문이다. 거기 시나리오에 따르면 유대인은 정·관·재·언·학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미국 대외정책이 이스라엘만 줄기차게 지지하도록 만들며, 네오콘과 결부되어 이라크 침공과 중동의 제패를 노리는 집단이라고 했다. 유대인은 숫적으로는 적지만 지적·경제적 자산과 영향력, 단결력은 세계 최강이라고 내 머리 속에 입력되어 있었다.

예측: 나는 유대인의 공화당 지지율이 전국 평균치와 비슷하거나 더 높을 거라고 예상했다.

결과: 유대인은 압도적으로 반전과 민주당을 선택했다. 민주당 지지율 1위 집단인 흑인 (89%)과 거의 같은 수준 (88%)이었다. 그 다음으로 동성애자 (75%), 라틴계 (70%), 저소득층 (69%)이 뒤를 이었다. 참고로 공화당 지지율은 백인 개신교복음파 (71%), 백인 개신교 일반 (62%), 남부 주민 (54%) 순이었다.

해석: 내 판단이 피상적이었다. 일부 보수 유대인의 로비력과 전체 유대인의 견해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 어떤 집단을 도매금으로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4) 모든 정치는 로컬정치라는 말이 있다. 이번에는 내 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는 이슈를 골랐다. 일반 슈퍼에서 술을 못 팔게 되어 있는 매사추세츠의 법을 고치자는 주민투표건. 주말에 장을 보러 동네 슈퍼에 갔더니 전단을 나눠 줬다. ‘슈퍼 체인에서도 주류를 팔도록 허용하자.’ 맥주라도 한 병 사려면 따로 주류판매점에 가야 하니 상당히 불편한 게 사실이다. 집 근처의 브래들리 주류점에 갔더니 거기서도 전단을 나눠 줬다. ‘슈퍼의 주류판매는 망국의 지름길.’ 완전히 찌그러진 자동차 사진도 나눠 줬다. ‘슈퍼에서 주류판매를 허용한 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의 처참한 모습’이란다. 슈퍼체인 연합회에서 690만달러, 주류판매 연합회에서 460만달러를 쓰면서 맹렬하게 찬반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예측: 슈퍼연합회가 이길 것으로 내다봤다. 한번 걸음에 장보기를 모두 마칠 수 있으면 얼마나 편리한가. 그리고 독과점 금지원칙에도 어긋나지 않는가?

결과: 부결. 유권자의 56%가 현행대로 가기를 원했다.

해석: 이번 투표 자체가 주민의사라기보다 상인들의 비즈니스 동기에서 나온 이슈였다. 주경찰 당국이 강력히 반대한 것도 한 몫을 했다.

(5) 마지막 이슈는 애리조나 주의 주민투표였다. 시민들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선거 참여자를 추첨해서 1등상으로 백만달러를 지급하자는 ‘유권자 보상법안’이 주요 쟁점이었다. 상금은 주복권 기금으로 충당한다고 했다. 이 제안은 전국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여기서 통과되면 다른 주에서도 따라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것 말고도 애리조나주는 이상한 제안들을 주민투표에 많이 내놓았다. 영어를 공용어로 선포하자는 안건도 있었다. (언제는 아니었나?)

예측: 나는 복권 안건이 분명히 통과될 것으로 확신했다. 돈 좋아하는 미국인들이 공짜 복권에 반대할 리가 없었다.

결과: 유권자 66%의 반대로 부결.

해석: 해석하기 어려웠다. 상금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주민투표 안건이 너무 많아서 ‘유권자 피로증세’ (voter fatigue) 때문에 부결되었다고 보는 선거전문가도 있었다. 아리조나 주정부 사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과연 이번 선거에 올라온 주민법안이 자그마치 40건이나 되었다. 투표를 하다하다 지친 유권자들이 막판에 복권 법안이 나오자 ‘이거 누구 약 올리나’하고 좍좍 그었을 가능성도 있다.

조효제/하버드대 로스쿨 인권펠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조효제/하버드대 로스쿨 인권펠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결론적으로 나는 이번 선거예측에서 승률 제로, F학점을 받았다. 미국정치에 관한 나의 내공이 낙제선상에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솔직히 말해 미국인은 예측 불가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기야 19세기 초에 <미국의 민주주의>를 저술한 알렉시스 드 토크빌, 천하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 미국전문가에게도 미국인은 수수께끼였던 모양이다. 그는 이런 관찰을 남겼다. “미국인은 이상한 사람들이다. 도대체 대화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들은 둘이서 말할 때도 대화가 아니라 연설을 한다. 그러다 신이 나면 상대방을 ‘신사숙녀 여러분’이라고 부른다.” 자기중심적이고 독백에 익숙한 미국인을 꼬집은 것이다. 이번 민주당의 승리로 미국의 대외정책이 독백에서 대화로 바뀔 수만 있다면 상처받은 내 자존심 따위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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