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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서양 제국 ‘타산지석’ 삼은 자신감

등록 2006-12-07 22:37수정 2007-03-02 16:58

최근 ‘강대국의 흥성’(원제 ‘대국굴기’)이라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가 중국사회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켰다. 서세동점 이래 세계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준 대국들의 흥망성쇠를 다룬 이 다큐 제작은 다음 대국으로 떠오를 중국의 자신감을 은연중 드러내면서 그때를 위해 국민들을 교육시키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상하이 푸둥지구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최근 ‘강대국의 흥성’(원제 ‘대국굴기’)이라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가 중국사회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켰다. 서세동점 이래 세계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준 대국들의 흥망성쇠를 다룬 이 다큐 제작은 다음 대국으로 떠오를 중국의 자신감을 은연중 드러내면서 그때를 위해 국민들을 교육시키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상하이 푸둥지구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변하는 중국, 변하지 않는 중국(16)

중국 후끈 달군 ‘강대국의 흥성’ TV다큐 미래 사회에 대한 그들 자부심 엿보이네
강력한 중앙권력·타협 정신·전쟁 반대 이런 ‘열쇳말’로 그들 문제 풀 수 있을까

냉정한 다큐 하나가 중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어디선가 당시, 송사, 원곡, 명청소설 그리고 당대 중국은 다큐멘터리(紀錄片)라는 말을 본 적이 있었는데 과연 명불허전이라고 ‘강대국의 흥성’(원제는 대국굴기)이라는 TV 다큐멘터리가 중국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원 제목에서 등장하는 대국이니 굴기(堀起)니 하는 단어는 상당히 민감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닌가. 중국위협론, 화평굴기론(和平堀起), 화평발전론 등 일련의 ‘원소’들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리 저리 수소문해서 완전히 ‘독파’하지는 못했지만 거의 다 보았다. 한 줄 평을 말하자면 중국판 영상 세계사라고 할 수 있다.

가만히 컴퓨터에 앉아서 인류의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영상으로 보는 한편 카메라 렌즈 저편에 있는 중국의 시각을 생각해보는 동안은 사립문 밖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알았다는 선인들의 심정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하!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이렇게 해서 형성된 것이었구나! 서양을 알아야 중국을 알 수 있고, 또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자각을 하고 있던 차에 개인적으로 이 다큐는 정말 유익한 공부가 되었다.

‘강대국의 흥성’은 <중국중앙텔레비전>의 경제채널(CCTV 2)에서 지난 달 13일부터 24일까지 12회에 걸쳐 방영된 다큐멘터리다. 놀라운 것은 황금시간대라고 할 수 있는 저녁 9시30분부터 매일 방영되었다는 사실이다. 한 회의 분량은 50분. 현재 반응이 좋아 다시 재방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도 좋은 다큐멘터리를 TV에서 많이 방영하지만 대개 많은 사람들이 보기 쉽지 않은 심야에 드문드문 편성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렇게 좋은 시간대에 매일 12일 동안 방영했으니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15세기 이래 지리 대발견 이후 전지구적인 영향을 미쳤던 아홉 개의 강대국, 즉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미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합쳐서 한 회, 영국 러시아 미국은 각각 비중있게 두 회씩, 나머지 국가는 한 회의 분량으로 처리하였다. 마지막은 전체를 총괄하는 결론편. 대부분 과거에 ‘식민주의자’ 혹은 ‘제국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였던 나라들이다.

‘조화사회 건립’ 당위성 역설

나는 이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회를 보고 <맹자>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났다. 맹자가 요임금으로부터 공자까지 대략 500년마다 출현했던 성인의 계보를 하나하나 열거하다가 불쑥 “공자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가 백여년이니 성인이 살았던 때와 시간적 거리가 멀지 않고 성인이 살았던 곳과 이토록 가까운 곳에 살고 있건만 (성인이) 없다면 또한 없을 것이로다!”라는 유명한 말을 꺼낸다. ‘내가 바로 성인의 도통을 잇는 오늘날의 성인’이라는 자부심을 에둘러 이렇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포르투갈로부터 미국까지 시대순으로 다룬 다음 마지막 총괄편에서는 이런 나레이션으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었다.

“아마도 모든 사람이 진부한 사유방식과 세계가 대치하던 시대의 갖가지 편견을 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미래의 오백년 내지 더 긴 시간동안 세계가 발전하려면 여전히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21세기의 변화가 강대국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점은 분명하다. 영구평화, 공동번영의 조화사회를 건립하는 것이 인류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하는 방향이라는 것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조화사회를 역설하고 있는 중국이 미래 세계의 역사에서 차지할 역할에 대한 은근한 자부심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강대국의 역사를 훑으면서 일본은 있는데 중국은 없을까라고 생각했는데 화면 저편에서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차분히 바라보고 있는 중국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서구 열강의 흥망사에서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지만 그렇다고 서구를 중심에 놓고 자신의 전통을 단순하게 비판하지도 않는다.

이 점은 1988년 방영되어 커다란 풍파를 불러일으켰던 <황허의 요절>(원제는 <하상>인데 대본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1989년에 번역 출판되었다)과 대비된다. 이 다큐에서는 대외무역과 자유주의 전통으로 대표되는 개방적인 해양의 남색문명과 중국 내륙의 황허유역으로 대표되는 전제적이고 폐쇄적인 황색문명을 단순하고도 선명하게 대비시키면서 서양을 이상화하고 있었다. 당시 수많은 지식인들의 서양에 대한 관념도 이런 측면이 농후하였다. 그런데 이 작품은 기실 당시 자오쯔양 당 총서기의 정책방향을 찬양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자오쯔양은 실각하고 이 작품은 민족허무주의를 조장하는 반전통적인 작품으로 비판받았다.

이에 비하면 ‘강대국의 흥성’은 3년에 걸쳐 직접 9개의 나라를 방문하여 중요 문서나 유적 등을 현지 촬영하기도 하고 관련 전문가의 인터뷰를 집어넣는 등 이데올로기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역사를 상당히 사실적이고도 객관적으로 다루고자 노력했다. 특히 이 작품에 커다란 영감을 제공했던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 폴 케네디를 비롯하여 세계체제론의 이매뉴얼 월러스틴 등 학자, 전문가, 정치인 등의 인터뷰를 중간 중간에 배치해서 역사적 사실을 차분히 정리해주고 있다.

제국 지위 누렸던 9개 나라 3년에 걸쳐 현지 촬영한 대작
당 최고결정기구 중앙정치국의 주요국 발전사 학습소식 듣고
엘리트가 만들었다고 하니 지도부와 엘리트가 ‘통하네’

서구 미화하지 않고 객관화

관방 매체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어떤 정치적 신호를 감지하는 전통이 있는 중국 문화 속에서 이 다큐의 방영 뒤에 어떤 정치적 배경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다큐의 총감독인 런쉐안은 단호한 어조로 부정하고 있다. 그가 이 다큐를 만들게 된 것은 2003년 11월 말에 출근하면서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하나의 소식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15세기 이래의 세계 주요 국가의 발전역사에 대해 중국공산당의 실질적인 최고 결정기구라고 할 수 있는 중앙정치국에서 집단학습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아주주간>에 따르면 이 집단학습활동은 2002년 10월26일부터 시작하여 평균 45일 만에 한 차례씩 지속적으로 열리는데 가장 최근에는 10월23일에 열렸다고 한다.

이 다큐를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9차 회의(2003년 11월24일)에서 주제발표를 했으며 이 다큐의 학술적 자문을 담당했던 첸청단 베이징대학 역사학과 교수는 이 다큐가 세계사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세계적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도 이 다큐를 보고 복잡다단한 근현대 세계사의 중요 맥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런 소식을 종합해볼 때 이 다큐는 중앙정부의 어떤 의도가 직접적으로 개입되어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영서일점통(靈犀一點通)이라고 중국의 주요 엘리트들과 중국지도부가 은연중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다큐는 결국 서구 열강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아주주간>에서는 제도의 건설과 창안, 국민의 문화소질, 그리고 이른바 소프트파워라고 개괄하고 있다. 모두 일리 있는 말들이다. 그러나 나는 이 다큐를 보는 동안 제일 먼저 국가의 중요성이랄까 강력한 중앙권력이랄까 하는 것을 설파하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왜냐하면 지방 분산적인 봉건체제에서 먼저 강력한 중앙권력을 가진 민족국가를 이룩한 나라가 세계사의 무대에서 크게 활약했던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그리고 있다고 생각된 것이 타협의 정신이다. 아무리 강력한 민족국가를 형성해서 세계를 주름잡는다고 하더라도 타협의 정신으로 자기 사회의 모순을 적절히 완화시킬 수 없는 국가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거나 쇠락의 길을 걸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론하고 싶은 것이 전쟁 반대의 정신이다. 1차대전 때는 33개국에 파급되어 1000만명 이상이 죽었고 2차대전 때는 61개국에 파급되어 5000만명 이상이 죽었다고 하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를 거꾸로 뒤집어 보면 현재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권력을 이양받은 지방권력은 점차 비대해지면서 부패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이면에서 이른바 삼대모순이 중국사회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북핵문제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한 베네데토 크로체의 말은 참으로 옳도다!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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