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단의 논어심득> 표지
변하는 중국, 변하지 않는 중국(21)/
어떤 사람이 원한을 은덕으로 갚는다면 어떠냐고 묻자. 공자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은덕은 무엇으로 갚겠는가. 공정함으로 원한을 갚고, 은덕은 은덕으로 갚아야 한다.(以直報怨 以德報德)” 얼핏 생각하기에 공자라면 원한을 은덕으로 갚는 것을 찬성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중국의 저명한 사상가 리쩌허우는 여기에 중요한 유가사상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든 가까운 나이임에도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그는 유학은 “은덕으로 원한을 갚아라”(노자)거나 “자신의 몸을 호랑이에게 먹이로 주었다”(불경)거나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을 내주라”(성경)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래된 책도 새로운 눈으로 보면 새책인가
대중에게 쏙쏙 넣어주는 ‘논어’ TV강좌 인기
교재 석달만에 250만부 팔려 신기록 행진 난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이상하게 루쉰의 유언이 생각난다. “타인의 이나 눈을 해치면서 보복에 반대하고 관용을 주장하는 그러한 인간은 절대 가까이 하지 마라.” 하나 더. 공자의 제자 중에 재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기발하고 첨예한 문제를 잘 제기하는 제자다. 그가 하루는 공자에게 아주 어려운 문제를 던졌다. “만약 누가 우물 속에 빠졌다고 인(仁)한 사람에게 거짓말 했을 때 인한 사람은 우물에 내려가 구하겠습니까?” 인한 사람은 당연히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을 구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런 마음을 잘 이용하면 인한 사람을 쉽게 속일 수 있지 않을까? 인한 사람이 그런 속임수에 넘어간다면 결과적으로 사람은 좋지만 바보가 아니냐는 질문이다. 공자의 대답이 멋지다. “왜 그렇게 하겠느냐? 군자를 우물이 있는 데까지 가게 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 빠지게 할 수는 없다. 그를 속일 수는 있지만 우롱할 수는 없다.” 공자가 강조하는 인(仁)이라는 것이 그냥 사람 좋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인 속에는 지(智)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중국 대륙에서는 <논어>의 열기로 뜨겁다. <위단의 논어심득>(于丹 論語心得)>이라는 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책은 중국고전에 관한 한 가장 권위 있는 출판사인 중화서국에서 작년 11월에 초판 60만부를 발행했는데 대략 25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2월7일 기준). 해적판을 고려하면 발행량이 400만부가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중국의 인구가 많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국 출판역사의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사건’이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지역을 불문하고 이렇게 빨리 많이 팔린 책은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덩달아 리쩌허우의 <논어금독> 같은 관련 책들도 많이 읽히고 있다. 베이징대 여교수 스타로 이 사건은 작년 10월 초 황금연휴 기간에 중국 <중앙방송국> 과학 교육채널(CCTV-10)의 ‘백가강단(百家講壇)’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일반대중을 상대로 쉽게 강의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위단은 원래 <논어> 전문가는 아니고, 베이징 사범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이 프로그램의 기획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논어>를 방영하기로 기획은 했지만 마땅한 강연자를 찾지 못했다. 전문가는 많지만 강의를 요령 있게 잘 하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우연치 않게 본인이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그 후 그녀는 단지 7일 만에 학술계의 “차오뉘(超女)”(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을 모방해 후난 위성TV가 만든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여성 스타를 일컫는 말)가 되어버렸다. 그 이전에도 이 프로그램 때문에 <류신우가 홍루몽의 비밀을 벗기다>, 리중톈(易中天)의 <삼국을 품평하다(品三國)>와 같은 책이 초베스트셀러가 된 적은 있지만 그녀의 <논어>가 그 기록을 모두 갱신해버렸다. 하도 유명하다기에 나도 그 프로의 한 꼭지를 구해 들어보았는데, 전혀 튀지도 않으면서 쉬운 비유를 들어 중요 내용을 잘 전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내용을 요약한 간단한 애니메이션이 삽입되어 있는 것도 이채로웠다. 책도 구해 읽어보았는데 ‘처세의 도’, ‘군자의 도’, ‘인생의 도’ 등 일곱 개의 주제로 나눠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현대생활과 접목시켜 일반대중의 시각에서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팔린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의외였다. 하긴 내 판단이 맞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아무튼 이 책 때문에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의롭지 못한 부귀는 뜬 구름과 같은 것이다”라는 등의 <논어>의 구절들이 유행어가 되었다고 한다.
지난 해 중국의 실리콘밸리라는 베이징 중관춘의 한 서점 판촉행사에서 위단은 9시간 동안 1만2600권에 사인을 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하고, 한 80대의 노인이 저자의 손을 잡고 “중국인에게 공자를 다시 찾아내주어 고맙다”고 감격스런 어조로 말했다는 등 이 책을 둘러싼 화제가 만발하고 있다. 예전에 우리가 그랬듯이 당연히 이 책에 대한 평가에서 지지자와 반대파 간에 논란이 치열하다. 한편에서 전통문화의 전파자로서의 공을 높이 평가하는 데 반해 다른 한편에서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공자가 말하는 ‘인’은 그냥 사람좋은 게 아니다
‘지’가 함축돼 있다
논어의 매력은 평범함 속에 밴 고명함
음미할수록 좋은 녹차와 같다 그러나 가치 평가를 내리기 이전에 이 ‘사건’은 차분히 분석해봐야 할 하나의 현상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방송에서 강의했다고 해도 관련 책이 모두 잘 팔리는 것은 아니고 또 그녀가 다른 사람보다 강의를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푸단대학 인문학원 원장인 장이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거대한 전환기에 처해 있는 중국에 기본적인 윤리도덕, 혹은 새로운 사상체계가 필요하다, 위단이 공자의 어록 속에서 그것을 적절하게 끄집어 내고 있다, 중국인은 본래 공자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데 이를 적절히 이용해 공자를 많은 대중의 대변인으로 잘 변신시키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방송이나 신문, 그리고 출판사에서 그 속에 있는 상업성을 잘 추동시킨 결과라는 것이다. 리쩌허우 식으로 말하면 공자사상은 중국인의 문화심리구조를 형성하는데 커다란 작용을 했고 다시 그런 집단적 심리구조가 거대한 전환기에서 위단을 계기로 다시 작동하여 공자열, 논어열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권의 논어로 천하를 다스린다” <논어>를 둘러싼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반 권의 논어로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말. 송나라의 재상이었던 조보가 태종(太宗)의 면전에서 했다는 말이다. 원래는 “신에게 한 권의 논어가 있는데 반 권으로 태조가 천하를 잡는 것을 도왔고, 반 권으로 폐하가 태평성대를 이루는 것을 보필하겠다”고 한 말인데 일부분만 단장취의되어 전해진 것이다. 조보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아주 정독했다고 한다. “논어를 읽고 나서 전혀 아무런 일이 없는 자도 있으며, 읽은 뒤에 그 중 한 두 구절을 얻어 기뻐하는 자도 있으며, 읽은 후에 자신도 모르게 손발을 들썩이며 춤을 추는 자도 있다.” 정자(程子)가 <논어>에 바친 오마주! 아마도 이런 멋진 경배를 받은 책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우연히 주워들은 일본 속담도 재미있다. “<논어>를 읽은 자가 <논어>를 모른다.” 사실 <논어>에 관해 아는 것은 좀 있지만 정작 실제 삶 속에서 <논어>의 가르침과 어긋난 행동을 하거나 제대로 응용할 줄 모르는 고지식한 사람이 많다. 나를 포함해서. 항상 반성하고 있다. 반면에 <논어>를 읽은 적은 없지만 올바르게 살아간 사람은 많다. 개인적인 체험을 말하자면 나는 <논어>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의 글에서 <논어>를 보는 새로운 안목을 발견한 경우가 많다. “오래된 책도 새로운 눈으로 보면 새 책이고, 새 책도 헌 눈으로 보면 헌 책이다.” 일찍이 대 철학자 헤겔은 <논어>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상식적인 도덕이며 그러한 도덕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공자는 단지 실제적 세간의 지자(智者)일 뿐이다, 공자에게 사변적 철학은 없으며 단지 선량하고 도덕적인 교훈이 있을 따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서구 중심적으로 말하면 전혀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논어>의 매력은 바로 평범함 속에 배어있는 고명함에 있는 것은 아닐까. 커피에 익숙한 맛으로 보면 대단할 것도 없지만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그윽한 맛이 우러나는 좋은 녹차와 같은 책, 그것이 <논어>가 아닌가 한다. 나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살 일도 없지만,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살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공자나 <논어>를 지나치게 과대포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새롭게 <논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위단이라는 지기(知己)를 만나 <논어>가 중국에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대중에게 쏙쏙 넣어주는 ‘논어’ TV강좌 인기
교재 석달만에 250만부 팔려 신기록 행진 난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이상하게 루쉰의 유언이 생각난다. “타인의 이나 눈을 해치면서 보복에 반대하고 관용을 주장하는 그러한 인간은 절대 가까이 하지 마라.” 하나 더. 공자의 제자 중에 재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기발하고 첨예한 문제를 잘 제기하는 제자다. 그가 하루는 공자에게 아주 어려운 문제를 던졌다. “만약 누가 우물 속에 빠졌다고 인(仁)한 사람에게 거짓말 했을 때 인한 사람은 우물에 내려가 구하겠습니까?” 인한 사람은 당연히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을 구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런 마음을 잘 이용하면 인한 사람을 쉽게 속일 수 있지 않을까? 인한 사람이 그런 속임수에 넘어간다면 결과적으로 사람은 좋지만 바보가 아니냐는 질문이다. 공자의 대답이 멋지다. “왜 그렇게 하겠느냐? 군자를 우물이 있는 데까지 가게 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 빠지게 할 수는 없다. 그를 속일 수는 있지만 우롱할 수는 없다.” 공자가 강조하는 인(仁)이라는 것이 그냥 사람 좋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인 속에는 지(智)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중국 대륙에서는 <논어>의 열기로 뜨겁다. <위단의 논어심득>(于丹 論語心得)>이라는 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책은 중국고전에 관한 한 가장 권위 있는 출판사인 중화서국에서 작년 11월에 초판 60만부를 발행했는데 대략 25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2월7일 기준). 해적판을 고려하면 발행량이 400만부가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중국의 인구가 많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국 출판역사의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사건’이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지역을 불문하고 이렇게 빨리 많이 팔린 책은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덩달아 리쩌허우의 <논어금독> 같은 관련 책들도 많이 읽히고 있다. 베이징대 여교수 스타로 이 사건은 작년 10월 초 황금연휴 기간에 중국 <중앙방송국> 과학 교육채널(CCTV-10)의 ‘백가강단(百家講壇)’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일반대중을 상대로 쉽게 강의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위단은 원래 <논어> 전문가는 아니고, 베이징 사범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이 프로그램의 기획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논어>를 방영하기로 기획은 했지만 마땅한 강연자를 찾지 못했다. 전문가는 많지만 강의를 요령 있게 잘 하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우연치 않게 본인이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그 후 그녀는 단지 7일 만에 학술계의 “차오뉘(超女)”(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을 모방해 후난 위성TV가 만든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여성 스타를 일컫는 말)가 되어버렸다. 그 이전에도 이 프로그램 때문에 <류신우가 홍루몽의 비밀을 벗기다>, 리중톈(易中天)의 <삼국을 품평하다(品三國)>와 같은 책이 초베스트셀러가 된 적은 있지만 그녀의 <논어>가 그 기록을 모두 갱신해버렸다. 하도 유명하다기에 나도 그 프로의 한 꼭지를 구해 들어보았는데, 전혀 튀지도 않으면서 쉬운 비유를 들어 중요 내용을 잘 전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내용을 요약한 간단한 애니메이션이 삽입되어 있는 것도 이채로웠다. 책도 구해 읽어보았는데 ‘처세의 도’, ‘군자의 도’, ‘인생의 도’ 등 일곱 개의 주제로 나눠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현대생활과 접목시켜 일반대중의 시각에서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팔린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의외였다. 하긴 내 판단이 맞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아무튼 이 책 때문에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의롭지 못한 부귀는 뜬 구름과 같은 것이다”라는 등의 <논어>의 구절들이 유행어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 대륙이 <논어> 열기로 뜨겁다. 베이징 사범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위단이 지은 <위단의 논어심득>(于丹 論語心得)>이라는 책이 단기간에 수백만부 팔리며 중국 출판역사의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사진은 산둥성 취푸에 있는 공자묘의 대성전.
‘지’가 함축돼 있다
논어의 매력은 평범함 속에 밴 고명함
음미할수록 좋은 녹차와 같다 그러나 가치 평가를 내리기 이전에 이 ‘사건’은 차분히 분석해봐야 할 하나의 현상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방송에서 강의했다고 해도 관련 책이 모두 잘 팔리는 것은 아니고 또 그녀가 다른 사람보다 강의를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푸단대학 인문학원 원장인 장이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거대한 전환기에 처해 있는 중국에 기본적인 윤리도덕, 혹은 새로운 사상체계가 필요하다, 위단이 공자의 어록 속에서 그것을 적절하게 끄집어 내고 있다, 중국인은 본래 공자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데 이를 적절히 이용해 공자를 많은 대중의 대변인으로 잘 변신시키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방송이나 신문, 그리고 출판사에서 그 속에 있는 상업성을 잘 추동시킨 결과라는 것이다. 리쩌허우 식으로 말하면 공자사상은 중국인의 문화심리구조를 형성하는데 커다란 작용을 했고 다시 그런 집단적 심리구조가 거대한 전환기에서 위단을 계기로 다시 작동하여 공자열, 논어열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권의 논어로 천하를 다스린다” <논어>를 둘러싼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반 권의 논어로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말. 송나라의 재상이었던 조보가 태종(太宗)의 면전에서 했다는 말이다. 원래는 “신에게 한 권의 논어가 있는데 반 권으로 태조가 천하를 잡는 것을 도왔고, 반 권으로 폐하가 태평성대를 이루는 것을 보필하겠다”고 한 말인데 일부분만 단장취의되어 전해진 것이다. 조보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아주 정독했다고 한다. “논어를 읽고 나서 전혀 아무런 일이 없는 자도 있으며, 읽은 뒤에 그 중 한 두 구절을 얻어 기뻐하는 자도 있으며, 읽은 후에 자신도 모르게 손발을 들썩이며 춤을 추는 자도 있다.” 정자(程子)가 <논어>에 바친 오마주! 아마도 이런 멋진 경배를 받은 책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우연히 주워들은 일본 속담도 재미있다. “<논어>를 읽은 자가 <논어>를 모른다.” 사실 <논어>에 관해 아는 것은 좀 있지만 정작 실제 삶 속에서 <논어>의 가르침과 어긋난 행동을 하거나 제대로 응용할 줄 모르는 고지식한 사람이 많다. 나를 포함해서. 항상 반성하고 있다. 반면에 <논어>를 읽은 적은 없지만 올바르게 살아간 사람은 많다. 개인적인 체험을 말하자면 나는 <논어>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의 글에서 <논어>를 보는 새로운 안목을 발견한 경우가 많다. “오래된 책도 새로운 눈으로 보면 새 책이고, 새 책도 헌 눈으로 보면 헌 책이다.” 일찍이 대 철학자 헤겔은 <논어>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상식적인 도덕이며 그러한 도덕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공자는 단지 실제적 세간의 지자(智者)일 뿐이다, 공자에게 사변적 철학은 없으며 단지 선량하고 도덕적인 교훈이 있을 따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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