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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얘기 이상의 무엇’ 소설가의 로망

등록 2007-11-02 16:59수정 2011-12-13 16:50

김윤식의 문학산책
김윤식의 문학산책
김윤식의 문학산책 /
소설이란 무엇인가, 제게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소. 그야 소설가에게 물어야 되는 것. 그럼에도 굳이 제게 묻는 이유도 짐작 못할 바는 아니오. ‘소설 쓰고 있네’를 당사자인 소설가에게 차마 발설하기가 뭣했기 때문. 남의 소설 읽기를 일삼아 왔지만 저 역시 무슨 그럴싸한 답변을 갖고 있을 턱이 없소. 그렇긴 하나 서당개 삼년이란 말이 있듯 소설가들의 한숨 소리를 엿들은 바는 더러 있소.

고명한 소설 <인도로 가는 길>(1924)의 작가 포스터도 주변의 이런 질문을 귀따갑게 당한 듯 세 가지 해답을 소개했소. 첫 번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하오. 왈, ‘잘 모르겠으나 소설은 그저 소설이죠’라고. 농부거나 버스 운전수가 그들. 두 번째 사람은 이렇게 말했소. ‘나는 얘기를 좋아하지. 소설이란 얘기 아닌가. 예술 따윈 아무래도 좋으니 내겐, 아주 나쁜 취미지만, 얘기면 족하오. 얘기는 얘기다워야 하니까. 마누라도 똑같아요’라고. 아주 적극적이고 활달한, 골프장에나 다니는 사람의 말. 세 번째 사람은 침울한 어조로 왈, ‘그렇지요. 암 그렇지요. 소설은 얘기를 해주죠’라고.

이들에 대한 포스터의 논평은 이렇소. 첫 번째 부류를 존경한다고. 뿐만 아니라 찬사를 보낸다고. 두 번째 부류는 싫을 뿐 아니라 두렵다라고. 그리고 세 번째 부류는 자기 자신이라고.

분명해지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얘기가 소설의 등뼈라는 것이 그 하나. 얘기가 없으면 소설이 근본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니까. 다른 하나는, 얘기가 소설의 최고의 요소라는 사실 앞에 소설가 치고는 침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어째서? 소설이 얘기 아닌 그 무엇이었으면 하고 내심 바라고 있으니까. 이 옹색하고 케케묵은 소설 형식이 아니라 멜로디라든가 진리의 인식 같은 것이었으면 하고 믿고 있으니까.

대체 소설가를 이토록 침울하게 하는 그 잘난 얘기란 무엇인가. 단순명쾌하오. 한 사람이 태어나 살고 사랑하고 죽었다는 것. 사람 사는 곳 어디서나 지천으로 굴러다니는 것. 문제는 그런 것을 어떻게 묶는가에 있을 수밖에. 물론 묘사는 수려하게, 판단은 너그럽게, 삽화는 솔직하게, 비유는 특출하게, 인물묘사는 활기 있게 할 것. 그러나 이런 자질들이란 한갓 장식일 뿐, 이런 것 따위로는 총명한 왕비 세헤라자데의 목숨을 구하지 못하니까. 폭군인 남편으로부터 그녀의 목숨을 구한 것은 따로 있었던 것. ‘마음 졸이게 함’이 그 정답. 권리의 정지를 뜻하는 서양말 서스펜스가 그것.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은? …의 연속성이 그것. 탁 터놓고 말해보시라. 우리는 모두 저 무지한 폭군 세헤라자데의 남편이 아니었던가.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은?에 미치고 환장한 파리떼들.

얘기란 새삼 무엇이뇨. 시간의 연속대로 정돈해놓은 사건의 진술인 것. 여기엔 단 하나의 단점과 장점이 있는바, 청중으로 하여금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까를 알고 싶어하도록 만들기와 무엇이 다음에 일어날까를 알고 싶지 않도록 만들기가 그것. 이것만이 얘기에 내릴 수 있는 진정한 비평이오.

문화조직 중 가장 저급하고 단순한 것인 얘기. 바로 여기에 소설가들의 고민이 있소. 얘기에 바탕을 두기는 하나, 소설이란 아주 별난 것, 고상한 것, 그래서 문화조직 중 최고는 아닐지라도 썩 그럴싸한 것이라는 믿음이 그것. 우리가 갈 수 있고 가야만 할 길의 지도 몫을 하는 그 무엇이라는 것. 이것이 소설에 대한 진정한 비평이오. 김윤식 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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