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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 일으키는 벽초의 분신들

등록 2009-11-05 19:18수정 2011-12-13 16:29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
벽초의 고택을 어디서 찾으리오. 괴암나무, 대나무, 은행나무 우거진 충북 괴산 인사리. 홍범식 고택만 있소. 벽초 연구가(강영주)의 고증에 따르면 거기가 벽초 부자가 나고 자란 집이라 하오. 선비의 나라 지배층 가계다운 규모로 복원되어 있었소. 선비를 존중한 그 나라가 망하자, 이 조정에 벼슬한 바도 없으나 그 혜택을 입은 선비로서 자결로 보답한 선비 황매천도 있었고 보면 금산 군수였던 이 집 당주의 자결은 좀더 직접적이라 할 만하오. 이런 논의란 역사의 몫에 해당하는 것. 문학의 몫이란 따로 있소. 이 고택이 벽초를 낳아 길렀음이 그것. 북조선 초대 내각 부수상을 낳고 기른 고택이기에 앞서 <임꺽정>의 작가라는 사실이 그것이오.

대체 <임꺽정>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이 고택에서 좀 떨어진 제암대로 발걸음을 돌리게 하오. 거기 벽초 문학비가 서 있었소. 기둥 다섯으로 둘러싸인 화강석 비석(안규철, 1998). 이 비석 앞에 서 본 이라면 모종의 긴장감에 휩싸이게 마련이오. 벽초의 존재감이 오직 문학에 국한되었음에서 오는 초조함 말이외다.

이 초조감을 달래는 방법은 많고, 그만큼 난감하지만 지름길 하나는 청주시 예술의전당으로 열려 있었소. 거기 제14회 홍명희 문학제(작가회의 충북지회, 10·24)가 열려 있었으니까. 그 속에는 학술발표도 포함되어 있지 않겠소.

첫 번째 발표자는 노학자 K씨의 <말 세계와 문자 세계 사이의 거리 재기>. 딱하게도 ‘얘기’와 ‘소설’이란 원리적으로 다르다는 것, 대하역사소설 <임꺽정>은 이 두 세계에 걸려 있다는 것, 등등 하나마나한 논의를 되풀이하고 있었소. 꺽정이란 한갓 좀도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조정에서도 그 정도는 용인했다는 것, 그런데 결정적인 실수를 꺽정이가 저질렀다는 것, 선비 8명 중 5명을 학살한 사건이 그것, 이는 역린(逆鱗)을 거스른 것, 상(上)의 명으로 현직 재상을 황해감사로 파견, 토벌에 나섰다는 것, 좀도둑 꺽정이 일당은 여지없이 패해 자모성으로 줄행랑쳤다는 것, 벽초도 도리 없이 ‘이만 줄임’ 하고 붓을 놓고 말았다는 것 등등.

장내는 썰렁했소. 재미가 조금도 없었던 증거. 그런데 보시라. 젊은 평론가(고미숙)의 순발력을. <임꺽정-길 위에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제목만 보아도 얼마나 멋지고 날랜 솜씨인가. 꺽정과 그 일당들이란 무엇이뇨. 의적일까, 민중 편일까. 리얼리즘 문학일까, 민중문학일까. 천만에! 그럼 뭔가? 그야말로 마이너리그, 우리말로 백수건달이 아니겠소. 직장도 없고(아예 구할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까) 집도 절도 없고(그런 것이 무용하니까) 다만 길바닥에서 놀고 즐기는 것. 그러니까 창 하나 달랑 들고 사막을 헤매는 부시맨. 진짜 자유인의 초상이 거기 있지 않겠는가. 오늘의 길 잃은 이 땅의 젊은이의 초상이 거기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 이 얼마나 신바람 나는 독법인가. 장내는 어느새 밝고도 맑은 표정으로 충만해갔소.

이어서 여류 작가(이경자)의 낭독. 배돌석이가 최영 장군에 바쳐진 처녀와 벌이는 대화. 이 얼마나 신바람 나는 장면이리오. 신바람은 이에 멈추지 않았소. 임꺽정 드라마 감독(김한영)과 임꺽정 역을 맡은 우람한 체격의 배우(정홍채), 곽오주 역의 배우(문용민)의 등장. 이들은 이 작품의 인물 성격 중 가장 압권을 육성 그대로 낭독했소. 아기 울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곽오주의 비극과 첩을 셋이나 거느린 꺽정의 희극. 장내는 웃음바다. 대체 이 신바람은 어디서 오는가.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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