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의 문학풍경
진보 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는 매년 2월 회원 총회를 연다. 집행부의 임기가 2년인데, 이시영 이사장과 공광규 사무총장 등이 작년 총회를 통해 취임했기 때문에 올해는 특별한 안건이 없는 셈이었다. 16일 오후 서울 마포에서 열린 총회는 지방에서 올라온 회원 등 2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순탄하게 이어졌다. 서너 시간씩 걸리곤 하던 회의가 지루하다는 여론이 있었던 터라 올해는 안건 심의를 대부분 문서로 대체하면서 매우 속도감 있게 나아갔다. 사업 결과 보고와 결산, 사업 계획과 예산안 채택 등 핵심 안건을 처리하고 총회가 마무리되려던 순간, 한 회원이 발언을 신청했다.
“우리 회원 중에 회원의 소양을 갖추지 못한 분을 어떻게 할지, 총회에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굳이 거명을 하지 않더라도 누굴 말하는지 다들 아실 겁니다. 우리가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앞으로 제2, 제3의 사례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 회원이 거명을 삼간 이가 누구인지를 총회장에 모인 문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지지와 안철수·문재인 비판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김지하 시인이 그였다. 이 회원은 “정관을 위배하거나 품위를 현저하게 손상시킨 회원”을 이사회 결의로써 자격정지 및 제명할 수 있다는 작가회의 정관을 근거로 조직 차원의 적극적인 조처를 촉구했다. 또 다른 회원 역시 “김지하 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려고 총회에 왔다”는 말로 이 회원의 발언에 힘을 보탰다.
김지하 시인을 제명해야 할지에 대한 회원들의 찬반 견해 표명이 한동안 이어진 다음 이시영 이사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사실 지난 대선 직전 작가회의 차원에서 김지하 시인의 발언을 반박하는 성명까지 준비했지만, 오히려 선거 결과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발표를 보류한 바 있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알다시피 1991년 <조선일보>에 실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글과 관련해 작가회의에서 한 차례 제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 뒤 제명 결정은 흐지부지되었고, 지금은 우리 작가회의 고문으로 있습니다. 1991년 당시에도 김지하 시인은 ‘작가회의에 가입 원서를 낸 적도 없다’는 말을 했고, 이번에 다시 제명을 하더라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오늘 총회장에서 나온 발언들을 참조하고 여론도 청취해서 다음 이사회에서 적절한 수준의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이시영 이사장의 표현대로 김지하 시인 문제는 작가회의의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다. 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1974년 창립된 것은 당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옥에 갇혀 있던 김지하 시인의 구명운동을 위해서였다. 그런 그가 과거의 자신과 작가회의를 부정하는 듯한 언행을 하는 것이 작가회의 동료 문인들로서는 당혹스러운 것이다.
‘김지하 문제’는 총회가 끝나고 이어진 뒤풀이에서도 열띤 토론 주제가 되었다. 젊은 문인들이 제명에 적극적인 반면, 중진 및 원로 문인들은 대체로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지하 시인의 존재 자체가 작가회의의 탄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다, 두 번째 제명 결정으로 자칫 조직 자체가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염려도 나왔다. ‘제명’이라는 극약처방이 표현의 자유를 핵심으로 삼는 문인 단체에 어울리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작가회의 다음 이사회는 4월로 예정되어 있다. 그 회의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이 내려질지 지켜볼 일이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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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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