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방송중
“6월22일. 목요일. 창간의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부디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 주시기 바랍니다.”
장소는 잘나가는 패션 피플들이나 갈 법한 강남의 어느 레스토랑. 시간은 저녁 7시~밤 10시. 초대장 역시 세련되기 그지없는 디자인이었다. 순간, 거울을 보았다. 왼손에 봉투를, 오른손엔 초대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 캐리 브래드쇼(〈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까지는 아니어도 뭐 비슷한 인사가 된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삼십 평생 살면서 내가 받아본 초대장이란 청첩장이 유일무이했고, 그나마도 ‘이번엔 또 얼마를 내야 하나’라는 부담 때문에 날이 갈수록 반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서울에서, 나에게 생애 최초의 초대장을 보낸 이는 누구란 말인가. 나는 다시 꼼꼼히 초대장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드라마 전문 비평 매거진 ○○○’이란 문구를 발견했다.
그렇다. 드디어 대한민국에도 티브이 피플이 탄생한 것이다! 사실 영화잡지를 열심히 읽고 있을 때마다 ‘왜 드라마 잡지는 안 나오는 거지’라며 내심 분개하고 있던 터였다. 같은 대중문화인데도 영화는 상업적인 동시에 예술적인 텍스트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어쩐지 드라마 쪽은 연예기사에 묶여 대충 처리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지면기사라는 것이 작가가 쓴 드라마 기획안을 그대로 베끼거나, 남이 베낀 것을 다시 베끼는 어이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독창적인 시각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전문적이고 독창적인 시각은 누리꾼들에게서 나왔다. 그들은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다시보기로 돌려보고, 매회를 분석하고, 매 장면(신)을 쪼개서 감정을 분할하고 해석한다. 캐릭터를 분석하고 카메라의 미장센을 찾아내고, 현장인이 아니면 모르는 방송계의 생리를 파악하고, 작가와 피디의 자질까지 논한다. (나도 수없이 당했다.) 그것도 완전 무료로.
이제 시청자는 단순히 폐인이 되어 무조건적으로 드라마를 옹호하며 보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비평세력이 되었다. 거기엔 이런 이유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 적당한 매체가 출현하지 못하고 있으니 자발적으로 일어선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대중문화가 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드라마 전문 매거진들의 창간이 기대된다. 드라마를 하나의 가치 있는 텍스트로 인정하고 해석하고 재발견해 줄 시각이 기대된다. 또한 30%를 넘으면 좋은 드라마, 10% 미만이면 나쁜 드라마라는 말도 안 되는 공식을 깨 주었으면 한다.
텍스트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때 풍부해진다고 믿는다. 혹평이든 호평이든 정확한 비평은 작가를, 피디를, 방송사를, 제작사를, 배우를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단지 시청률밖에 기댈 것 없었던 이 무식하고 절대적인 잣대를 벗어나고 싶다. 티브이 피플들이여. 마음대로 씹고, 삼키고, 핥고, 물어뜯으소서.
강은정/드라마 〈파리의 연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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