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피디들이 출근하면 책상 위에 시디(CD)가 쌓여 있다. 새로 나온 앨범을 홍보하려고 매니저들이 올려놓은 음반들이다. 처음 보는 신인 걸그룹의 데뷔 앨범이 눈에 들어온다. 아득하다. 가요계는 이미 걸그룹 포화 상태인데 이들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중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드가 된 걸그룹. 그 이름도 낯설던, 소녀시대(오른쪽 사진)와 원더걸스(왼쪽)가 라이벌전을 펼치던 시절을 회상해본다.
6년쯤 전으로 돌아가보자. 가장 먼저 가요계에 이름을 알린 걸그룹은 원더걸스다. 첫 싱글 ‘아이러니’로 데뷔하고 얼마 안 있어 불운이 이어졌다. 소희의 오토바이 사고와 원년 멤버 현아의 탈퇴, 그리고 원더걸스가 탄 승합차와 추돌한 택시의 기사가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그래서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이어 ‘텔미’가 발표되며 상황이 반전됐다. 그야말로 원더걸스 열풍이었다. ‘소 핫’에 이어 ‘노바디’까지 ‘국민 가요’로 만들어버린 원더걸스에게 2008년은 그들의 해였다.
사실 박진영은 처음부터 걸그룹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에스비에스>(SBS) 예능 프로그램 <초특급 일요일 만세> 중에 ‘박진영의 영재 육성 프로젝트 99%의 도전’이라는 꼭지가 있었다. 2001년 7월에 선발된 ‘꼬마’ 선예를 데뷔시킬 생각이었는데 선예와 색깔이 맞는 김현아, 소희, 선미가 차례로 오디션을 통해 회사에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그룹이 원더걸스다.
원더걸스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그룹이 이수만의 에스엠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든 걸그룹 소녀시대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원더걸스와 달리 소녀시대는 처음부터 걸그룹을 내놓겠다고 작정하고 만든 그룹이다. 원더걸스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지만 초기에는 원더걸스의 발치에도 못 따라가며 고전했다.
소녀시대는 내가 연출한 공개방송 무대에도 여러 번 섰다. 첫 만남은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공개방송을 할 때였다. 무슨 지역 레포츠 활동 증진 어쩌고 하는 식의 행사 야외 무대였다. 하필이면 공개방송을 시작하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두 번째 출연자가 소녀시대였는데 밴에서 내린 소녀들이 진흙탕을 걸어오는 모습이 얼마나 애처로웠는지…. 워낙 작은 무대이기도 했고 비까지 오니 관객이 백 명쯤이나 됐을까? 그 앞에서 참 열심히도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프로그램 작가와 동정 섞인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난다. ‘에휴, 어린 사람들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저렇게 고생하냐. 저러다 못 뜨면 먹고살기도 힘들 텐데.’ 나는 걸그룹 전성시대가 올 줄도 모르고 소녀시대의 진가도 알아보지 못한, 한 치 앞을 못 본 피디였다.
2008년이 원더걸스의 해였다면 2009년은 소녀시대의 해였다. ‘지’와 ‘소원을 말해봐’를 연속 히트시키면서 무대마다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다. 원더걸스보다 두 배나 많은 멤버들 각각의 인기도 대단했다. 소녀시대는 당당하게 원더걸스와 함께 걸그룹 양대 산맥을 형성했다. 마치 에이치오티(H.O.T.)와 젝스키스, 에스이에스(S.E.S.)와 핑클의 대결 구도처럼.
그러나 이 구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박진영의 꿈 때문이었다. 글로벌 스타를 만들겠다는 박진영의 원대한 포부(엉뚱하게도 후에 양현석의 와이지엔터테인먼트 소속인 싸이가 대신 실현한다)에 따라 원더걸스는 미국 활동에 전념하기로 노선을 정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생긴 힘의 공백을 놓치지 않고 들어온 신흥 세력이 카라와 티아라였다.
아, 감회가 새롭다. 불과 몇 년 전 얘기인데도 역사 속 인물을 돌아보는 기분이다.
앞에 놓인 신인 걸그룹 데뷔 앨범을 들어본다. 정글 같은 가요계에서 이들의 운명은 어찌되려나.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이재익 <에스비에스>(SBS) 피디가 쓰는 새 칼럼 ‘걸그룹 열전’이 3주마다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