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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노래하는 조그만 가시내들 ‘바버렛츠’

등록 2014-06-19 18:59수정 2014-11-28 14:13

가수 ‘바버렛츠’
가수 ‘바버렛츠’
이재익의 걸그룹 열전
미리 말하자면 이 글이 ‘걸그룹 열전’이라는 제목 아래 나가는 마지막 칼럼이다. 왜냐고? 웬만한 걸그룹은 다 다루었으니까. 지난해 6월에 이 칼럼을 쓰기 시작했으니 1년을 꼬박 주구장창 걸그룹 이야기를 한 셈이다. ‘그 마지막 주자로 누구를 쓸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이미 이 그룹을 처음 안 순간 칼럼의 마지막 순서로 찜해놓았으니.

‘대한민국 최초의 인디 걸그룹’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단 바버렛츠(사진)가 ‘걸그룹 열전’의 마지막 주인공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홍보 포인트 중 하나로 삼은 대한민국 최초의 인디 걸그룹이라는 수식어구는 틀렸다. 얼마 전에 다룬 크레용팝도 인디 걸그룹이라고 할 만하고 대중들이 채 알기도 전에 사라진 수많은 독립제작사 출신 걸그룹들이 있었으니. 그러나 대한민국 최초의 ‘클럽 출신’ 걸그룹이라는 수식어는 진짜다. 바버렛츠의 멤버들은 기획사의 오디션을 통해 뽑힌 소녀들이 아니다. 무대를 통해 검증된 가수들이라는 말씀.

가요와 인디, 재즈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싱어송라이터 안신애, 재즈 무대에서 떠오르고 있던 보컬리스트 김은혜, 중저음이 매력적인 박소희 세명이 우연한 계기로 함께 노래하기 시작한 일이 바버렛츠의 결성 계기다. 멤버들의 출신에서 알 수 있겠지만 이들은 기존의 걸그룹과는 다르다.

외모로 어필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이질적이다. 멤버들이 안 이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마케팅에서 섹스어필한 지점이 빠져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은 오직 음악과 목소리로 승부한다. 바버렛츠의 노래만큼은 어떤 걸그룹의 노래보다 더 나긋나긋하고 여성적이며 야릇하다.

음악 면에서도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기본으로 힙합과 록을 적절히 섞은, 다른 전형적인 걸그룹의 음악하고는 전혀 다른 질감의 음악을 선보인다. 팀 이름처럼 수십년 전 동네 이발소의 낡은 라디오에서 들리던 철 지난 보컬 팝 음악을 노골적으로 표방한다. 이들의 음악을 얘기할 때 김 시스터즈, 미국의 앤드루스 시스터즈 등 1950~60년대 하모니 사운드 그룹들을 평론가들이 들먹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버렛츠는 수십년 전의 음악을 따라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아날로그적 방식을 고집한다. 공연을 할 때 한 대의 마이크에 대고 세명이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디지털 콘솔을 통한 믹싱이 아니라 말 그대로 호흡을 통한 입맞춤으로 팀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앨범을 녹음할 때도 더 따뜻하고 풍성한 느낌을 담으려고 디지털로 녹음된 소스를 아날로그 테이프로 일일이 재생해 다시 녹음했다고 하니, 이 정도면 제대로 된 ‘레트로 보컬 그룹’이라고 인정해 줄 수밖에.

바버렛츠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쯤으로 돌아가 옛날 이발소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이 마흔인 필자는 아주 어린 시절 이발소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다. 가슴이 불룩하고 입술을 빨갛게 칠한 이발소 누나가 무심하게 껌을 씹으며 머리를 감겨줄 때 들리던 나른한 음악 소리, 그것이 바로 바버렛츠의 노래다.

이런 팀이 걸그룹이냐고? 사실 필자 스스로 정의하는 걸그룹의 범주에서 비켜나 있지만 바버렛츠 멤버들도 걸그룹이라는 호칭은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깔깔 웃으며 “저희 걸그룹 맞아요” 이럴 것 같다. 아직 바버렛츠의 노래를 못 들어본 이들에게는 이들의 ‘시그니처 송’이라 할 수 있는 ‘가시내들’을 추천하고 싶다. 조그만 가시내들이 모여서 노랠 부르면 온 동네 청년들이 마음 설레어 한단다. 가시내들 노래 들으러 온단다. <끝>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이재익의 걸그룹 열전’은 ‘바버렛츠’를 마지막으로 떠납니다. 다음주부터는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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