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이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신인 걸그룹 한 팀이 벼락같이 연예계를 강타했다. 분명히 걸그룹인데 트레이닝복에 헬멧을 쓰고 희한한 노래에 희한한 춤을 추며 사람들을 홀렸다. 다들 수군거렸다. 얘들 뭐야?
크레용 팝(사진)의 등장. 변방의 무명 걸그룹이 가요계 한복판에 뛰어든 사건이었다.
크레용 팝을 이야기하려면 소속사인 크롬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걸그룹이 예외 없이 기존의 가요제작자들이 길러낸 데 반해 크레용 팝은 한 번도 ‘이 바닥’ 일을 해본 적 없는 젊은 대표가 충동적으로 만든 걸그룹이기 때문이다.
크롬 엔터테인먼트의 황현창 대표는 원래 아이돌 음악에는 관심도 없던 광고 사진 스튜디오 운영자였다. 티아라의 ‘롤리폴리’를 듣고 갑자기 걸그룹 문화에 빠져든 그는 직원들에게 엔터테인먼트를 하자고 했단다. 당연히 다들 타당한 이유를 대며 반대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대표는 뭔가에 홀린 듯이 일주일 만에 혼자 사업자등록을 하고 걸 그룹 모집 공고를 냈다.
크레용 팝은 그렇게 탄생했다. 데뷔한 지 1년 만에 싱글 ‘빠빠빠’가 터졌고 2013년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적어도 작년에는 소녀시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던 수십 년 전 연예계도 아니고, 거대 기획사들이 장악한 요즘 연예계에서 이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내가 알아본 바는 그랬더라. 믿어지지 않는 성공신화다.
크레용 팝의 ‘빠빠빠’가 성공한 과정은 기존의 걸그룹들이 신곡을 발표하는 방식과는 몹시 달랐다. 방송이나 지면 매체의 힘을 전혀 기대하지 않고 오직 독특한 콘셉트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전개했다. 콘셉트와 노래와 안무가 딱 맞았다.
뮤직비디오도 한몫했다. 저예산으로 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10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그랬듯이 직렬 5기통 춤, 장풍 춤, 개다리춤 등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안무와 연습할 필요도 없는 노래로 유행을 일으킨 것이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성공의 달콤함을 즐기기도 전에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지점은 그들의 노래만큼이나 엉뚱했다. 무려 일베. 사회악으로 지탄받고 있는 ‘일간베스트’와 연관성이 대두된 것이다. 크레용 팝 멤버가 일베 회원이라는 주장부터 소속사 황현창 대표가 일베 용어를 썼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게다가 일본 걸그룹의 콘셉트를 훔쳐왔다거나 노래가 표절이라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내가 <그것이 알고 싶다> 피디라면 모를까, 이런 스캔들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릴 깜냥은 없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의 근거도, 의혹을 부인하는 소속사 쪽의 근거도 그럴 듯하니.
다만 커리어에 너무나도 많은 의혹이 불거졌다는 점은 분명히 문제다. 오해도 계속 반복되면 오해라고 믿어주기 힘들다. 차라리 신생 기획사의 시행착오였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잡음 없이 활동하는 크레용 팝을 기대한다.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앙팡 테리블 황현찬 대표는 크롬 엔터테인먼트를 한국 최초 걸그룹 전문 기획사로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최근 크레용 팝의 뒤를 이어 두 번째 걸그룹 단발머리를 공개했다. 안타깝게도 그 전에 발표한 크레용 팝의 신곡 ‘어이’는 ‘빠빠빠’에 비교하면 어이없을 정도로 반응이 미미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주목해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당찬 연예 기획자의 행보를. 크레용 팝을 보면서 내내 궁금했던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다. 크레용 팝 ‘빠빠빠’의 성공은 치밀한 기획이었을까, 아니면 운이었을까?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