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서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걸그룹 시대를 열었던 이야기를 했다. 최고수였던 원더걸스가 본격적인 미국 활동을 선언하고 한국을 비우자 후속 싱글들의 히트에 힘입어 소녀시대가 강호를 평정했다.
소녀시대에게 도전하는 신성 걸그룹들이 쏟아진 해가 2009년이었다. 와이지엔터테인먼트에서는 ‘여자 빅뱅’을 표방하며 투애니원(2NE1)을 내놨고, 가요계의 미다스 손이라 불리는 김광수 사단(코어콘텐츠미디어)에서는 티아라를 데뷔시켰다. 원더걸스 원년 멤버 현아가 주축이 된 포미닛, 후에 유닛 활동 오렌지캬라멜로 더 인기를 얻은 애프터스쿨이 다 2009년에 나온 걸그룹이다.
이 중에서 먼저 카라를 주목해본다. 카라의 소속사는 디에스피미디어다. 소방차가 소속됐던 대성기획이 그 전신인데 1990년대 후반 젝스키스와 핑클을 히트시키면서 이름을 바꾼다. 이후 클릭비, 더블에스오공일(SS501) 등 당대 최고 아이돌 그룹을 속속 키워냈다. 댄스그룹의 계보로 보자면 제이와이피엔터테인먼트나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와이지엔터테인먼트보다 한참 더 전통 있는 가문인 셈이다.
사실 카라는 소녀시대보다도 먼저 데뷔한 그룹이었다. 2년 넘게 내공을 키워오던 카라는 ‘프리티 걸’과 ‘하니’로 이름을 알린 뒤에 대박 싱글 ‘미스터’를 발표했다. 엉덩이를 강조한 안무와 귀에 꽂히는 후렴구를 가진 그 노래는 원더걸스의 ‘노바디’나 소녀시대의 ‘지’처럼 전국에 울려퍼졌다. 이후 ‘루팡’과 ‘점핑’ 등의 후속 싱글도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카라는 소녀시대를 위협하는 2인자로 급부상했다.
카라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이 일본에서의 활동이다. 2010년 5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음반 발매 이벤트 겸 기자회견장에서 데뷔곡으로 ‘미스터’를 발표하면서 본격화된 일본 활동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발표하는 노래들은 줄줄이 오리콘 차트를 석권했고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였다. 공연은 항상 매진이었다.
2012년 1월 <니혼티브이> ‘스타 드래프트’에서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100명의 스타’에 한국 아이돌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고, 그즈음 발간된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의 <한류총서>를 보면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한국 가수가 카라였다. 심지어 <후지티브이>의 ‘헤이헤이헤이 뮤직챔프’에서 조사한 ‘1990년대 이후 노래방 애창곡’ 1위가 ‘미스터’였으니 말 다 한 거 아닌가.
소속사와의 불화 때문에 활동을 중지하는 악재를 겪는 와중에도 일본에서의 인기는 여전했다. 활동을 재개한 뒤인 2012년 12월 도쿄돔 단독 공연 티켓은 5분 만에 4만5000여석이 매진됐다. 한국 걸그룹의 도쿄돔 단독 공연은 카라가 최초다.
나는 카라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 한창 인기가 좋을 때도 당시 내가 맡은 <컬투쇼> 공개방송에 3번이나 출연해줬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점핑’ 이후 발표한 노래들은 함량이 떨어진다. ‘루팡’과 ‘점핑’으로 이어지는 카라스러운 곡의 패턴이 계속되고 있긴 한데 더는 신선하지도 섹시하지도 않다. 카라의 노래들은 대부분 스윗튠(한재호·김승수)의 작품이다. 지금의 카라를 있게 한, 내가 무척 좋아하는 프로듀싱 팀인데, 카라를 위해서는 곡의 스타일을 바꾸든지 다른 작곡가의 곡을 받든지 변화가 시급하다.
피디들이 쓰는 음악 검색 엔진 ‘뮤직뱅크’에 등록된 카라의 음원은 2012년 이후 업데이트가 안 되고 있다. 개인 활동과 연기 활동도 좋지만 얼른 가요계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할라할라’ 춤을 추며 가요프로그램 1위를 휩쓸던 모습이 다시 보고 싶다. ‘루팡’의 가사처럼 더 높이 올라가라. 세상을 다 가져 봐라. 돌아오라 카라.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