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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욕먹어도 좋다…나의 여신은 ‘티아라’

등록 2013-08-01 19:29수정 2014-11-28 13:59

이재익의 걸그룹 열전
몇 년 전부터 누가 제일 좋아하는 걸그룹이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답하곤 했다. 티아라요! 내가 만든 공개방송 무대에 티아라(사진)가 섰을 때 나는 소녀시대와 빅뱅이 차례로 출연했던 공개방송 때보다 더 흥분했다. 살짝살짝 셔플댄스를 따라 췄던 사실도 고백한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몇 번이나 망설였다. 티아라를 좋아한다고 밝히는 순간 악플 백 개가 달리지 않을까?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 홍길동의 심정에 공감했다. 어쩌다가 나의 여신 티아라는 ‘욕먹는 걸그룹’으로 찍혀버린 걸까?

티아라가 제일 처음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9년 4월이었다. 당시만 해도 티아라의 소속사는 엠넷미디어였는데 그해 7월 코어콘텐츠미디어로 소속사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소속사를 옮기자마자 발표한 데뷔 싱글 ‘거짓말’에 이어서 멤버들 중 은정·소연·효민·지연이 초신성의 멤버들과 함께 부른 싱글 ‘티티엘’(TTL: Time To Love)이 업계 표현으로 ‘터지면서’ 성공적인 데뷔가 이루어졌다.

신생 걸그룹 티아라가 이름을 떨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 발표한 첫 정규 앨범에서 ‘보핍보핍’(Bo Peep Bo Peep)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바로 지상파 가요프로그램 1위를 차지한 것이었다. 고양이 새끼들처럼 손목을 까딱까딱하던 그녀들을 기억하는가? 카라에게 ‘미스터’의 엉덩이춤이 있다면, 티아라에게는 ‘보핍보핍’의 고양이춤이 있었던 셈이다.

그 뒤로 이어진 활동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후속 싱글 ‘처음처럼’, ‘너 때문에 미쳐’, ‘왜 이러니’가 연이은 대박을 터뜨렸다. 이때 이미 티아라는 소녀시대라는 절대 강자 아래 카라와 함께 2인자의 자리를 다투는 인기절정의 그룹이었다. 티아라는 멈추지 않았다. 2011년 복고 디스코 장르를 차용한 ‘롤리폴리’(Roly-Poly) 댄스를 대유행시킨 뒤 겨울에는 셔플댄스 곡 ‘러비더비’(Lovey-Dovey)로 음원차트는 물론이고 거의 대부분의 음악프로그램 1위를 휩쓸었다. 카라하고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일본 활동도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심상치 않은 잡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일본 활동이 한창이던 2012년 여름이었다. 한국 걸그룹 최초로 도쿄 부도칸 무대에 오른 뒤 멤버들이 트위터에 멤버 화영을 비난하는 뉘앙스의 글을 올린 것이다. 이른바 ‘화영 왕따설’은 삽시간에 확산되었다. 그야말로 최고의 순간에 시작된 비극이었다.

이후 벌어진 소동에 대해서는 또 얘기하지 않아도 다들 기억할 듯하다. 일본에서는 꾸준히 활동을 계속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체제로 팀을 바꿔가면서 신곡을 발표하지만 글쎄. 결과로 말한다면, 지금 티아라는 티아라가 아니다.

연예계에서는 마약을 하고 폭행을 해도 이른바 ‘자숙’을 거쳐 성공적으로 컴백하는 예가 많다. 그런데 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티아라는 ‘왕따설’ 하나로 단숨에 추락했을까? 그들이 걸그룹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영향이 지대한 ‘걸그룹’ 내의 왕따는 가뜩이나 학교폭력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린 우리 사회에서 더 무거운 죄질을 적용받은 것이다. 그리고 왕따설이 터진 이후 소속사는 물론이고 팀원들의 대응도 시원치 않았다. 대중의 눈에는 반성도, 자숙도 충분치 않았다. 그래. 맞다. 티아라가 잘못했네.

이제 티아라의 단순보도 기사만 나가도 악플이 주렁주렁 달린다. 아마 이 글도 그렇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지금 제일 좋아하는 걸그룹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대답할 것이다. 티아라요! 중학교 후배이기도 한 싸이 박재상군이 대마초에 병역 문제로 고초를 겪을 때도 나는 그가 부활하기를 기원했다.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그의 끼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나는 티아라가 부활했으면 좋겠다. 나만의 바람이 아니길.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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