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는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처럼 수많은 걸그룹이 쏟아져 나온 2009년 말에 막차를 타듯 데뷔했다. 이미 카라를 최고의 걸그룹으로 올려놓은 디에스피(DSP) 미디어의 후속작 격이었다. 멤버들이 7명이라는 점에서 팀명을 착안했음은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기획사 쪽에서는 4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레인보우를 출격시켰다며 야심을 감추지 않았다. 데뷔곡 ‘가십걸’에 이어서 ‘에이’, ‘마하’가 빵빵 터질 때까지만 해도 제2의 카라가 되리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다. 나도 그 중 하나였고. 이미 카라를 통해 일본에서 기반을 확실히 다져놓은 디에스피였기에 일본 진출에도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웬걸. 그 뒤로 몇 년째 레인보우는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멋지게 출발한 스프린터가 초반부터 터벅터벅 트랙을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그 속도로 지금까지 5년을 왔다. 이 칼럼에서 다룬 걸그룹 모두 한때는 ‘대세’였던 적이 있다. 그러나 레인보우는 한 번도 ‘대세 걸그룹’이었던 적이 없다.
멤버들의 면면도 나쁘지 않은데. 비주얼도 가창력도 춤도 여느 걸그룹에 비해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획사가 부실한가? 앞의 카라 편에서 설명한 적 있지만 디에스피는 아이돌의 명문가다. 그런데 왜 레인보우는 못 떴을까?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카라와 차별성이 약했다는 정도? 소녀시대의 동생 그룹이 될 뻔했던 에프엑스가 그들만의 색깔로 차별화에 성공한 것과 비교한다면 레인보우는 카라와 별다를 게 없어 보였다. 원조집이 떡 하니 있는데 굳이 옆에 새로 생긴, 메뉴도 비슷한 식당에 가는 손님은 없으니까.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의 캠페인 슬로건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문제는 노래다. 그나마 ‘에이’와 ‘마하’는 카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프로듀싱 팀 스윗튠의 감각이 살아 있다. 말하자면, 카라하고 비슷하기라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나온 노래들은 카라와 비슷하지도 않았다.
영화계에서 흔히 쓰는 말도 떠올려 볼 법하다. 좋은 시나리오로 영화를 잘 못 찍을 수는 있지만 나쁜 시나리오로는 절대로 좋은 영화를 찍을 수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다. 좋은 노래로도 팀이 못 뜰 수는 있지만 별로인 노래로는 절대 뜰 수 없다.
다행히도 아직 레인보우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팬들이 많아 보인다. 네이버에 ‘레인보우 못 뜨는 이유’라고 쳐보면 팬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글이 주루룩 올라온다. 공히 지적하는 지점이 바로 노래다. ‘악플’보다 더 무서운 게 ‘무(無)플’이라고 했다. 애정이 없다면 그런 글을 쓰지도 않았겠지. 요즘 레인보우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섹시함을 강조한 유닛 ‘레인보우 블랙’이 출격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좋다. 아직 뚜껑을 열기 전이지만 신년 들어 새롭게 도전하는 모습만으로도 흐뭇하다. 다만 명심했으면 좋겠다. 유닛도 좋고 콘셉트 변화도 좋은데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그렇죠. 노래입니다. 현아가 있는 걸그룹 정도로만 인식되던 포미닛이나 존재감 없던 신인 걸그룹 크레용팝이 노래 한 곡으로 거둔 성공을 생각해보라.
레인보우가 데뷔한 지도 벌써 5년이다. 올해도 더 어리고 더 예쁜 신인들이 등장하겠지. 그 틈에서도 일곱 색깔 무지개가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레인보우 못 뜨는 이유’ 대신 ‘대세 걸그룹 레인보우’라는 글을 여기저기서 보고 싶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사진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