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게 없는 사람들이 있다. 훌륭한 외모에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부자인데 인간성 좋고 유머 지수까지 최고인 그럼 사람들 말이다. 그렇게 타고난 게 많은 사람이 성실하기까지 하면 성공하지 못하기도 어렵다. 그런 사람이 운까지 좋다면!
씨스타(사진) 얘기다. 먼저 하드웨어 점검. 효린이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를 보유한데다 외모도 여느 걸그룹에 빠지지 않는다. 멤버들 각각의 개성과 역할도 뚜렷하다. 전체적인 균형이 좋다는 말이다. 멤버들 전원이 1990년대생으로 한참 더 걸그룹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연령이다. 게다가 멤버도 고작 4명! 8명인 걸그룹의 절반 비용으로 운용이 가능하니 소속사는 얼마나 좋을까.
지금까지 소개한 걸그룹들이 모두 2009년에 데뷔했는데, 씨스타를 필두로 2010년산 걸그룹들을 소개하겠다. 이런 칼럼은 원래 ‘까야 제맛’인데 씨스타는 깔 게 별로 없으니 데뷔 시절 기억나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다.
씨스타가 싱글 ‘푸쉬 푸쉬’를 발매하며 데뷔한 시점은 남아공월드컵의 열기가 고조되던 6월 초였다. 매일같이 신생 아이돌 팀이 쏟아져나오던 때라 신인은 출연 무대 잡기가 가뜩이나 힘든데 월드컵까지 겹쳤으니 최악의 데뷔 타이밍이었던 셈이다. 당시 <컬투쇼>를 연출하던 나는 월드컵 첫 경기인 그리스전이 열리는 날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공개방송을 진행했다. 쟁쟁한 출연 가수들 틈에 끼워넣은 몇 팀의 신인들 중 하나가 씨스타였다. 공연 콘셉트는 ‘이만백’. 이만백명의 시민 응원단을 모으자는 취지에서 붙인, 지극히 컬투스러운 아이디어로 지어진 이름이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관객 이만백명 올 일만 남았다.
갑자기 전날 밤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장대비를 맞으며 무대 점검을 하던 나는 울고 싶을 정도였다. 비 때문에 백여명만 우비를 뒤집어쓰고 무대 앞에 모여 있었다. 이만명은 어디에? 수십번 공개방송을 연출했는데 아직도 그날의 최소 관객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날이 씨스타의 데뷔 무대였을 거다. 비 오는 날 결혼하면 잘산다는 속설이 있지 않나? 비에 젖은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씨스타의 그 후 행보는 너무나도 성공 일색이어서 말하기가 지루하다.
아니 어떻게 걸그룹이 스캔들 한 번 안 나지? 어떻게 망하는 노래가 한 곡도 없나? 심지어 유닛에 솔로 활동까지 성공해? 데뷔곡 ‘푸쉬푸쉬’부터 ‘가식걸’, ‘마 보이’, ‘니까짓게’, ‘쏘쿨’, ‘나 혼자’, ‘러빙유’, ‘있다 없으니까’, ‘기브 잇 투 미’…. 히트곡만 모아도 앨범 하나 낼 기세다.
씨스타와 관련한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소속사(스타쉽엔터테인먼트)에서 들으면 싫어할지도 모르겠으나, 씨스타는 섭외가 쉽다. 섭외 전화를 해서 거절당한 기억이 없다. ‘이렇게 작은 무대에는 안 나오겠지?’ ‘이렇게 먼 곳에서 하는 공개방송에는 안 오겠지?’ 혹시나 싶어 전화를 해보면 항상 오케이다. 아니, 무슨 걸그룹이 신비주의 전략 따위는 안중에도 없나. 팬들을 대신해 씨스타에게 감사패라도 주고 싶다. 다른 걸그룹들이 비싼 척하느라, 외국 나가서 돈 버느라 얼굴 보기 힘들 때 씨스타는 팬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어쩌면 씨스타의 진짜 성공 비밀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설마 내 프로그램에만 특별히 자주 나와 준 거라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효린, 보라, 소유, 다솜. 당신들이 이렇게 잘된 건 비 쫄딱 맞아가면서 역대 최소 관객 앞에서 치른 데뷔 무대 덕분이야. 알지? 다시 한 번 미안하고, 고맙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