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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색무취 소녀들, 에이핑크

등록 2014-04-03 19:37수정 2014-11-28 14:11

가수 에이핑크.
가수 에이핑크.
이재익의 걸그룹 열전
큐브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격인 에이큐브엔터테인먼트 소속의 걸그룹 ‘에이핑크’(사진)는 2011년 4월19일 데뷔했다. 박초롱, 윤보미, 정은지, 손나은, 김남주, 오하영 등 여섯 명으로 시작해 멤버 교체 한 번 없이 활동해오고 있다. 데뷔곡 ‘몰라요’에 이어 ‘잇 걸’ ‘마이 마이’ ‘허쉬’ ‘부비부’ 등 꾸준히 신곡을 내놓으면서 인기를 쌓아오다가 지난해 여름 ‘노노노’로 지상파 1위를 차지하며 인기 걸그룹 반열에 올라섰다.

에이핑크에게는 두 번의 도약이 있었다. 정은지가 출연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7>(티브이엔)이 대박이 난 일, 그리고 ‘노노노’의 히트가 그것이다. 그전까지 에이핑크는 대중들에게 각인되지 못한, 수많은 신인 걸그룹 가운데 하나였다. 인터넷에 떠도는 소위 걸그룹 서열표만 봐도 그랬다. 그러나 두 번의 도약 이후 에이핑크는 같은 소속사 선배인 포미닛과 대등한 위치까지 올라섰다고 본다. 내공으로 보면 아직 부족하나 인기로만 보면.

지난해 여름부터 이 칼럼을 써오면서 수많은 걸그룹을 다루었지만 이번만큼 쓰기 어려운 걸그룹은 없었다. 왜냐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뭔가 걸리는 게 없어서다. 말하자면 무색무취의 걸그룹이 바로 에이핑크다. 굳이 에이핑크의 색깔을 정의하자면 순수하고 귀여운?

하하. 순수하고 귀여운…. 그런데 이건 걸그룹의 색깔이 아니다. 기본이다. 모든 사람에게 머리와 심장이 있는 것처럼. 여기에 거칠거나(투애니원), 섹시하거나(씨스타), 만화스럽거나(오렌지 캬라멜), 사이버틱한(에프엑스) 등등의 개성을 더해 팀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에이핑크는 그런 개성이 없다. 심지어 타이틀곡이 바뀌어도 콘셉트는 별다를 게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마케팅 전략의 실패인가? 기획자가 너무 게으른가?

노노노. 에이핑크의 아버지가 누군가. 홍승성 대표다. 말단 매니저부터 시작해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현장 출신 기획자의 상징적 존재랄까. 사석에서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한마디로 일벌레다. 부지런하기로는 어떤 기획자도 그를 따라갈 수 없다. 그러니 눈 감고 생각해볼밖에. 에이핑크는 변함없음이 전략인 걸그룹인가 보다. 솔직히 에이핑크가 어느 정도 올라오기 전에는 뭐 이런 개성 없이 예쁘기만 한 걸그룹이 있나 싶었다. 모든 것이 치밀한 전략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잘되니까.

이 글을 막 쓰고 있는 와중에 에이큐브 쪽 매니저들이 와서 새 앨범을 주고 갔다. 이런 기막힌 우연이. 에이핑크라는 글자 옆에 커서가 깜박이는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니 그들도 웃었다. 그들이 건네준 따끈따끈한 새 앨범을 열어본다.

사실 걸그룹의 앨범을 받아들 때면 사무실에서 앨범 부클릿을 열어보기 망설여진다. 하도 페이지마다 살색에 망사가 많다 보니. 하지만 믿고 보는 에이핑크의 앨범. 역시 어느 페이지를 봐도 노출은 없다. 50쪽이 넘는 걸그룹 화보에 가슴골 하나가 없다! 근성 있다. 여전히 에이핑크는 순수하고 귀여운 소녀들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변함없이.

좋은데, 다 좋은데 노래마저 엇비슷하다는 점은 문제다. 그간 에이핑크가 발표한 노래들은 그들이 구축한 순수하고 귀여운 이미지에서 반경 100m를 안 벗어났다. 이번 신곡 ‘미스터 추’도 그렇다. 같은 방식으로 말하자면 시스타의 노래는 반경 10㎞를 마음껏 활보한다고 할까? 왕따설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지만 새로운 콘셉트에 도전하기로는 티아라가 최고였다. ‘보핍보핍’과 ‘롤리폴리’, ‘러비더비’가 걸치는 반경은 100㎞쯤 되지 않겠는가?

일관성 있다는 것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영리하고 감각 있는 기획사 큐브엔터테인먼트가 에이핑크의 미래를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 신곡 ‘미스터 추’도 흥하길. 더불어, 홍승성 대표의 쾌유를 빈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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