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이름 중에 공감각적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유일한 그룹이 달샤벳(사진)이다. 이름처럼 샤벳의 상큼한 느낌이 물씬한 멤버들 여섯 명 세리, 아영, 지율, 가은, 수빈, 비키로 데뷔한 달샤벳은 2012년 5월에 비키가 탈퇴하고 새 멤버 우희로 바뀐 뒤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열에 아홉은 달샤벳이라는 그룹명을 들으면 하늘에 뜬 달과 먹는 샤벳의 조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소속사 해피페이스 엔터테인먼트가 작명한 뜻은 ‘달콤한 샤베트’의 준말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참 달다. 데뷔곡인 ‘수파 두파 디바’를 비롯해 이어 발표한 ‘블링블링’도 달달한 댄스팝 그 자체였다.
달샤벳은 개인적으로 근처에서 지켜본 적이 많은 그룹이다. 데뷔 당시 연출했던 <컬투쇼>에도 출연한 적이 있고, 내가 시나리오를 썼던 영화 <원더풀 라디오>에 카메오로도 출연했으니 다른 걸그룹보다는 인연이 많다고 하겠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이름부터 노래까지 이렇게 달달한 그룹이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위상의 변화가 없다. 운동선수로 치면 만년 기대주랄까? 신기한 것은 꾸준히 내놓은 노래들의 챠트 성적도 비슷하게 유지한다는 점이다. 3할대로는 못 올라오지만 2할대는 항상 유지하는 타자처럼.
달샤벳의 그룹 역사에 가장 큰 변곡점이라고 할 만한 사건은 2012년 5월 24일, 당시 리더였던 멤버 비키가 솔로 전향을 위해 팀을 탈퇴한 일이다. 새로운 멤버 우희가 가입함과 동시에 첫 번째 정규앨범 <뱅뱅>을 발표했다. 그때 나는 ‘이제 터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동명의 타이틀 곡 역시 전에 발표한 노래들과 비슷한 성적을 거두며 활동을 마감했다. 그 해 연말에 발표한 ‘있기없기’의 반응이 기대했던 것만큼 나오지 않아서였을까? 달샤벳은 다음 노래를 발표하면서 승부수를 띄웠다. 누군가는 무리수라고도 말할 만큼의 콘셉트 변화였다. 노래 제목부터가 ‘내 다리를 봐’. 안무와 의상의 선정성 논란은 예견된 것이었다. 나름 그간 발표한 노래들 중에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는 점은 보상될 수도 있었겠다.
바로 전편에 소개한 그룹 ‘에이핑크’와 비교를 해볼까. 두 그룹은 데뷔 시기도 비슷하다.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버린 걸그룹 시장에 2011년 초에 뛰어든 두 그룹의 인기와 인지도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비슷했다. 포털 사이트에 ‘걸그룹 서열’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네티즌들이 자기 나름으로 만든 걸그룹 순위가 수도 없이 뜬다. 재미있는 점은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를진데 서열표의 순위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달샤벳과 에이핑크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인기 마지노선에 걸쳐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에이핑크는 신곡을 발표하자마자 지상파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하는 대세 걸그룹이 되었고 달샤벳은 여전히 가능성을 품은 기대주로 남아있다.
물론 에이핑크는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요정 같은 걸그룹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달샤벳은 매력이 없나? 순백, 무색무취의 콘셉트를 근성 있게 지켜낸 에이핑크 전략의 승리일까? 달샤벳은 마케팅 전략이 별로였나? 모르겠다. 영화나 노래의 흥행은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하는데 참 그 말이 맞다. 십 수년째 방송국에 일하고 있는 나는 달샤벳이 금방 뜰 것만 같았으니.
뒤집어 말하면 아직 가능성은 남아있다. ‘이름이 뭐에요’를 발표하기 직전의 포미닛처럼, ‘빠빠빠’를 발표하기 전의 크레용 팝처럼, 달샤벳은 터지기 직전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내년쯤 네티즌들이 올리는 걸그룹 서열표에서는 인기 마지노선이 아닌 ‘전국구’의 레벨에 떡하니 이름을 올려놨으면 좋겠다. 건투를 빈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