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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기타가 피아노보다 나은 몇가지

등록 2014-12-05 09:32수정 2014-12-05 09:33

탁월한 리듬 창조 능력으로 ‘음악 치유’
자기 마음 먹은대로 변칙적 조율 가능
조니 미첼의 ‘더 서클 게임’.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h8pfjNOfBoA
조니 미첼의 ‘더 서클 게임’.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h8pfjNOfBoA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하여 탄소섬유 소재의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여러 매체의 뉴스를 통해 보았습니다. 윤기나는 까만색 몸체를 가진 탄소 기타의 도드라진 하얀색 6개 줄을 코드에 맞춰 잡고 손가락으로 자연스레 튕기던 박대통령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박대통령은 자신의 연주 실력을 보여주려 기타를 친 것은 아니고, 탄소 기타를 만든 과학기술의 경제적 효과를 강조해서 자신의 정책방향을 보여주려 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탄소 기타의 소재인 탄소섬유는 철과 비교해 볼 때 무게는 4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강도는 10배, 탄성은 7배에 달하며 잘 녹슬지 않고 열에도 강해 철을 대신할 수 있는 꿈의 소재라고 합니다. 그래서 항공기, 미사일, 자동차, 새시, 건축용 빔, 교량, 선박, 골프채, 테니스 라켓 소재로도 쓰이며 최근에는 인공장기 소재로도 활용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고 하죠. 박대통령은 여러 가지 탄소 소재 제품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악기인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더욱 더 효과적으로 자신의 창조경제 정책을 홍보한 셈인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악기가 국가적 차원에서 활용된 건 역사적으로 꽤 오래된 유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의 인류의 문명과 뿌리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죠. 인간 삶의 원형이라고 불리우는 신화를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와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9명의 뮤즈 여신들인 칼리오페, 에우테르페, 테르프시코레, 에라토, 메르포메네, 타레이아, 폴림니아, 우라니아는 리라, 플루트 등의 악기를 연주하고 춤과 노래를 부르면서 책과 글, 천문, 시, 희극, 비극 등을 담당합니다.

인도 힌두신화에서는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언어를 창조한 말과 학문과 예술의 여신 아내 사라스와띠를 보며 음악을 만들었다고 하죠. 사라스와띠 여신은 네 개의 팔로 현악기인 비나(Vina)를 연주합니다.

중국 고대 전설 속의 제왕 또는 신으로 3황 5제 중 최고의 제왕으로 꼽히는 복희씨는 비파(琴)를 만들어 사냥이나 먹을 것을 채취할 때 이 비파를 타며 노래를 부르도록 하게 했다고 하죠.

우리나라 단군신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삼국유사에서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천제 환인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내려왔다는 3개의 천부인은 동북아시아 샤머니즘과의 관련성, 현재의 무속도구나 고고학적 유물과 비교해 볼 때 청동검, 청동거울, 청동방울 3가지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청동방울은 당연히 악기 역할을 한 것이죠.

신화라고 하는 것이 인류 초기에 있어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여 의식주의 생산 방법 등을 전승하고 나름의 윤리와 도덕과 법률의 역할을 수행하며 집단을 꾸리고 유지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때, 거기에 빠짐없이 악기가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악기가 인류에게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연의 소리와는 구별되게 조화스러운면서도 신비한 소리를 내고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감을 느끼게 하여 제의와 통치 행위에 두루 쓰인, 한마디로 당시의 악기가 가진 지위는 지금의 과학기술이 가진 지위에 비견될 만 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죠.

박근혜 대통령이 첨단 과학기술의 산물인 탄소 기타를 직접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통치 행위를 한 것은 위와 같은 음악과 악기의 역사를 놓고 볼 때 어쩌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현재에도 음악은 국가와 군가, 각종 국가행사의 행사곡, 그리고 여러 선거의 캠페인송 등으로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그 특유의 군중 동원능력을 통해 국가적 차원의 역할을 곳곳에서 행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음악과 악기는 그러한 국가적·정치적 역할 말고도 다른 중요한 기능을 당연히 가지고 있습니다. 치유의 기능이 바로 그것이죠.

음악은 뇌의 줄무늬체(기저핵에서 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영역)에서 마약 성분인 메타 암페타민을 방불케 하는 호르몬인 도파민을 분비시켜 고통을 완화시키며 높은 수준의 면역항체인 이뮤노글로빈A의 생성을 촉진시킵니다. 트로트면 트로트, 발라드면 발라드, 댄스곡이면 댄스곡,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 등의 치유 효과를 보는 것이죠.

헨델의 ‘수상 음악’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Kuw8YjSbKd4)
헨델의 ‘수상 음악’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Kuw8YjSbKd4)

몸이나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 또한 음악을 통해 심신의 건강이 개선되기도 합니다.

광장공포증을 가진 대학생이 리듬, 템포, 선율, 가사를 즉흥적으로 만들고 지어내는 과정을 통해 광장공포증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인식하여 자신의 증상을 극복해내기도 하고, 전쟁터에 다녀온 뒤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군인이 어렵사리 마음을 먹고 밴드 활동을 하게 되면서 “음악이 없었다면 난 말 그대로 죽었거나 노숙생활을 면치 못했을 거야”라며 “음악이 내 인생을 구했다”고 말하게 되기도 합니다. 백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파헬벨의 ‘라장조 캐논’과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G선상의 아리아’ 헨델의 ‘수상 음악(Water Music)‘ 드뷔시의 ’바다‘ ’월광‘을 듣거나 연주하며 고통을 줄이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도 합니다. 언어를 익히지 못하고 비명 이외에는 소리를 내지 못하며 밤이나 낮이나 편히 잠자지 못하고 벽으로 걸어가거나 손을 사용해 문고리를 잡지도 못하는 등 전반적 발달장애와 운동계획 장애를 지닌 자폐증 아이의 증세를 호전시켜 악기를 연주하게 만들기도 하죠.

특히 박대통령이 즐겨 연주했다고 하는 기타는 ‘국민 악기’ 피아노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위와 같은 음악 치유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선 기타는 피아노처럼 멜로디와 화성 연주 능력을 갖춘 것은 물론, 뛰어난 리듬 생성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록, 포크, 컨트리, 펑크의 리듬에서 기타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이죠. 특히 스페인 음악이나 보사노바의 리듬에서 기타를 빼놓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피아노보다 더 뛰어난 탁월한 리듬 창조 능력으로 기타는 음악 치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다양한 리듬 생성능력을 통해 음악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뇌에 다양한 자극을 받아 여러 면에서의 건강이 호전됩니다. 게다가 음악치료를 받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은 자기와 비슷한 크기의 기타 사이즈에서 친밀감과 신뢰감을 느껴 더 좋은 치료효과를 보기도 한답니다. 언제나 눈높이에서 자기를 바라봐 주고 언제 어디든 동행할 수 있으며 어두운 밤 친한 친구처럼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잠들 수도 있기 때문이죠.

조니 미첼의 ‘어지 포 고잉’.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Z3EofN3Flag)
조니 미첼의 ‘어지 포 고잉’.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Z3EofN3Flag)

또 조율사의 전문적인 조율을 필요로 하는 피아노와 달리 기타는 자기가 마음 먹은 대로 변칙적 조율을 할 수가 있습니다. 보통 6번 줄은 미, 5번 줄은 라, 4번 줄은 레, 3번 줄은 솔, 2번 줄은 시, 1번 줄은 미, 이렇게 조율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프렛을 짚지 않고 그냥 줄만 튕겨 맑고 깨끗한 소리를 내는 개방현의 장점을 살리려 자기가 좋아하는 음들을 더 많이 개방현으로 튕길 수 있도록 자기만의 방법으로 조율을 해서 기타 연주와 작곡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지 포 고잉(Urge for going)’ ‘더 서클게임(The Circle Game)’ 등의 노래로 잘 알려진 캐나다 출신의 포크 록 가수 조니 미첼이 바로 그런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위 사진 참조) 특유의 기타 조율법을 기반으로 독특한 멜로디와 코드를 진행해, 곡을 만든 자기 자신은 물론 듣는 사람들 역시 그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치유의 경험을 얻게 됩니다. 노래와 소리 자체가 주는 진동에 공명하여 커다란 미적 쾌감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음악, 그 중에서도 기타를 통한 음악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만약 자신이 들고 연주했던 탄소 기타로 다시 연주를 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노래를 할까요? 과학기술이나 창조경제에 관련된 노래를 하는 것도 좋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대통령이 부르는 치유의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세 모녀와 세월호의 아픔, 양극화와 고용, 노후, 안전, 공정성, 정의, 소통, 평화에 대한 불안감으로 상처받는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노래, 또 그 약속들의 실현을 다시금 확인해주는 그런 노래들을 말이죠. 1960년대 말 고교시절 야외에서 기타를 치던, 그래서 “기타를 치는 것이 행복했다”고 회고하기도 한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행복송’을 한번 희망해 봅니다.

김형찬 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2026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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