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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골방이나 거리보다 카페가 창조성 높인다

등록 2015-09-25 17:05수정 2015-09-25 17:05

적당하고 은은한 소음에서 아이디어 ‘반짝’
폴 매카트니. 한겨레 자료사진
폴 매카트니. 한겨레 자료사진

“나는 이 노래를 ‘헬터 스켈터’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 노래는 그저 우스운 노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허둥지둥한다는 뜻의) 헬터 스켈터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난 소음을 좋아하니까요”

세계의 많은 음악 평론가들이 헤비 메탈의 효시로 평가하고 있는 비틀즈의 노래 ‘헬터 스켈터’에 대해 폴 매카트니는 ‘소음’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노래를 만들고 제목도 그렇게 지었다고 말했습니다. 시끄럽게 쟁쟁거리는 기타 디스토션 소음(?)과 함께 처음부터 격렬하게 치고 달리는 폴 매카트니의 강렬한 보컬이 지금 들어도 상당히 인상적인 ‘헬터 스켈터’가 세상에 나오자 당시 평론가들은 역사상 가장 시끄럽고 거친 노래라는 평을 내놓았습니다. 그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이 ‘창조적 소음’은 이후 엄청난 음악적 파동으로 번져 쥬다스 프리스트, 메가데쓰, 블랙 사바쓰, 아이언 메이든, 메탈리카 등 수많은 헤비 메탈 밴드들을 낳는 산파가 되었죠.

요즘 한 노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피해의식’, ‘리플렉션’과 같은 팀들이 헤비메탈 음악을 들고 나와 다시금 그 강렬한 ‘소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음악을 비롯한 ‘소음’들은 혹시 창조성과 어떤 비밀스러운 관계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비틀즈의 ‘헬터 스켈터’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QWuXmfgXVxY
비틀즈의 ‘헬터 스켈터’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QWuXmfgXVxY

미국 일리노이 대학 어바나 샴페인 캠퍼스 경영학과 교수 라비 메타 교수 등의 ‘소음은 항상 나쁜가? 은은한 소음이 창조적 인지능력에 끼치는 효과 탐사’ 연구를 보면 소음과 창조성이 가진 비밀스런 관계의 일단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타 교수팀은 소음이 창조성에 끼치는 영향력을 알아보기 위한 5개의 실험 중 첫 번째 실험에서 65명의 실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65명을 16개의 그룹으로 나눠 그룹별로 4명 정도의 실험 참가자들을 반원을 그려 앉게 하고 그 원의 가운데에 스테레오 스피커 두 개를 배치하여 실험 참가자들이 같은 거리에서 소리를 듣도록 했습니다. 그 소리들은 카페에서 여러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 도로변 소음, 조금 떨어진 건설현장의 소리들을 녹음한 뒤 MP3 파일로 만들어 데시벨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메타 교수팀은 실험 참가 그룹들 하나하나로 하여금 무작위로 배정된 0데시벨, 50데시벨, 70데시벨, 85데시벨의 소음들 중 하나를 듣게 했습니다. 무작위로 지정받은 소음을 듣는 동안 실험 참가자들은 컴퓨터 화면 속에 나타난 RAT 문제들을 풀었습니다. 창의력 테스트의 일종인 RAT (Remote Associates Test)는 언뜻 보면 전혀 무관한 듯한 단어 서너 개를 제시하고 그들 사이에 관계를 찾아내게 하는 것으로 창의력을 측정할 때 많이 쓰이는 테스트입니다.

예를 들면 1. 막대기(stick) 친구, 꼬챙이(pal) 공(ball) 2. 사람(man) 바퀴(wheel) 높은(high) 3. 집(house) 마을(village), 골프(golf) 4. 열쇠(key) 담장(wall) 이전(previous) 5. 다리(leg) 팔(arm) 개인(person) 이렇게 5개의 문제들을 내고 각 문제별로 제시된 단어 3개의 공통점을 답으로 적게 하는 것이죠.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핀(pin) 2. 의자(chair) 3. 녹색(green) 4. 돌(stone) 5. 의자( chair)

이러한 실험을 해 본 결과 70데시벨의 소음을 듣고 RAT 문제를 푼 그룹들의 성적이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메타 교수팀의 소음이 창조성에 끼치는 영향력을 알아보기 위한 5개의 실험 중 4번째 실험에서는 실험 참가자들로 하여금 ‘구두 광내기 문제’를 풀도록 하였습니다. “당신은 새로운 고용주가 주최하는 연회에서 연단에 나가 회사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검은색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가려는 데 구두가 눈에 띄게 흠집이 나있는 걸 집에서 나가기 직전 발견했습니다. 구두약은 떨어졌고 검은색 정장에 맞는 구두는 이것밖에 없고 다른 정장을 입으려니 다른 정장도 없고 연회에 시간 맞춰 가려면 2분 안에 출발해야 하는 데 근처 가게들은 다 문을 닫고 오로지 차로 5마일 남짓 가야 하는 곳에 있는 쇼핑몰만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답하라는 테스트였습니다. 가능한 많은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한 이 테스트에서도 적당한 소음 수준인 70데시벨의 소리를 들은 실험 참가자 그룹의 성적이 더 좋았다고 합니다.

68명의 실험 참가자들이 내놓은 188개의 아이디어를 68명의 평가자들이 판단하여 61개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선정하는 등 점수를 매겨 본 결과 적당한 소음 수준인 70데시벨의 소리를 들은 실험 참가자 그룹에서 더 독특하고 독창적이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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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보다 조금 더 큰 소음 즉, 교통량이 많은 시내 주요도로 길가에서 발생하는 소음인 85데시벨의 소음을 들으면 정보처리 능력이 감소되어 창조성을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반대로 아예 소음이 없거나 너무 적어도 창조적 인지능력이 잘 발현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소음 수준과 창조성 사이에는 거꾸로 된 U자 형태의 함수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소위 머리를 식힌다고 할 때의 머리가 식은 상태, 다시 말해 집중력이 일정한 정도로만 산만해진 상태에서 사람은 틀 바깥의 생각, 추상적인 사고와 뇌의 추상적 처리작업을 하게 되는 데 이것이 바로 창조성 증가의 전형적인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큰 소음은 너무 많은 산만함을 유도하여 추상적 사고 처리과정의 양을 감소시키고 결과적으로 창조성을 발휘하는 데 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조용한 방에 틀어박혀 계속해서 안 풀리는 문제를 풀려고 줄곧 끙끙거리거나 지나친 소음 속에서 스트레스 받으며 있기보다는 바깥에 나가 산책하다 적당한 소음이 발생하는 카페 같은 곳에 앉아 있으면 추상적 사고 능력이나 창조적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레스토랑에서 듣는 대화나 배경음악 소리들은 주로 60~70데시벨 안팎이라고 하니 메타 교수의 연구가 맞아 떨어지는 셈이죠.

미국 퍼듀 대학교 화학과 자료를 보면 라디오, 텔레비전 소리, 거실에서 듣는 음악소리가 70데시벨 정도라고 하는군요. 전화벨 소리는 80데시벨 정도로 좀 높습니다. 오래 들으면 약간의 불쾌감이 드는 이유가 있습니다. 차 안에서 듣는 시내 교통소음은 85데시벨입니다. 또 보통 피아노 연습하는 소리는 60~70데시벨, 1m 거리에서 사람이 크게 부르는 노래 소리는 70데시벨, 크게 치는 피아노 소리는 92~95 데시벨이고 첼로도 의외로 소리가 커서 82~92 데시벨입니다. 바이올린은 84~103 데시벨, 오보에는90~94데시벨, 플루트는 85~111데시벨, 2m 좀 안되는 거리에서 듣는 록음악 연주는 120데시벨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는 법이니 이러한 데시벨 기준들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만 생각이 탁 막혔을 때 위의 자료들을 활용해보면 도움이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죠.

(사진)데시벨 앱 진짜.jpg

배경 소음을 좀 더 정확히 측정해서 창조적 생각을 꼭 해보겠다 싶으신 분들은 스마트 폰 앱에서 데시벨을 측정해주는 위의 ‘사운드 미터’와 같은 앱(위 이미지)을 활용하셔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속 104킬로미터로 달리는 승용차 소리, 또 철길 위를 달리는 열차 객차 안에서도 적당한 크기의 피아노 연주곡을 들을 때처럼 창조적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는 70데시벨 정도의 소음이 발생한다고 하니, 만약 길만 막히지 않는다면 추석 귀성길에서 꽉 막혀있던 일의 해결책이 짠~하고 머리 속에서 드라마틱하게 떠오를지도 모를 일입니다.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239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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