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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세상 열심히 사는 남자, 국가대표 노잼 캐릭터 김영철

등록 2017-04-06 10:52수정 2017-04-06 21:51

박상혁의 예능in, 예능人
개그맨 김영철. <제이티비씨> 제공
개그맨 김영철. <제이티비씨> 제공
개그맨 김영철은 요즘 일주일에 3번씩 피겨스케이팅을 배우고 있다. 벌써 5개월째인데 초급시험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그가 뜬금없이 피겨스케이팅을 배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 다가오고 있으니 혹시나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프로그램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좀 황당하긴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는 언제나 ‘혹시 모르는 기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거다.

사실 김영철은 특이한 예능인이다. 딱히 똑똑한 것도 아니고 재치가 넘치는 것도 아니다. 구강구조를 제외하면 몸개그에도 적당하지 않다. 영어도 잘하고 상식도 많지만 ‘노잼’이라고 구박받는다. 그런데도 없으면 허전하고 이상하게 보고 싶은 캐릭터다.

그의 유일한, 그러나 강력한 장점은 성실성이다. 그는 아나운서나 전문 디제이들만이 하는 아침 라디오를 7년째 진행하고 있다. 단 한 번도 늦거나 펑크를 낸 적이 없다. 매일 영어공부를 하고 여러 신문을 읽는다. 본인이 입는 옷은 직접 코디한다. 밤 9시 이후에는 거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열심히 바쁘게 살다 보니 골아 떨어져 자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연예인이 불면증 한번 없었단다. 아무리 봐도 연예인이기보다는 직장인에 가까운 삶이다.

김영철이 영어 공부를 시작한 이유 또한 단순하다.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을 때인 2003년. 아무리 생각해도 이경규, 강호동, 유재석 같은 예능진행자들처럼 웃길 자신이 없으니 남들이 안 해본 세계무대 도전해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휴가를 내고 자비를 들여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몬트리올 코미디 페스티벌’을 그냥 구경 갔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영어 학원을 등록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5년째 쉬지 않고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알다시피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행에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뭐 다들 마찬가지이지만 연예인들의 삶도 참 불안하다. 지금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어도 사랑이 식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러니 중간에 다들 부업을 고민하고 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김영철은 그렇지 않았다. 오직 그냥 방송하는 사람으로서 혹시 올지 모르는 다음 기회를 위해 뭐든지 준비 해왔다.

나는 김영철과는 <강심장>(에스비에스)에서 함께 했다. 4년 동안 20명 넘는 연예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그의 자리는 진행자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이었다. 진행자들은 다른 출연자들이 심각한 이야기를 하거나 눈물을 흘려서 스튜디오가 숙연해지면 재미를 위해 고정출연자였던 김영철에게 토크를 시켰다. 당연히 웃길 수 없었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준비해온 그는 언제나 당당했다. “아니 유재석도 빵빵 터지는 이야기인데, 너네는 뭔데 안 웃니?” 아마도 구박받아도 꿋꿋이 버티는 잡초 캐릭터의 시작은 그때부터가 아닐까 싶다.

그 당시 김영철에게 프로그램 전체를 보라는 뜻으로 왜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냐고 핀잔을 주면 그는 바로 받아쳤다. “모두가 숲만 보고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구석에서 나무만 보는 사람도 있어야지”라고. 요즘 김영철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걸 보니 구석에서 큰 나무도 꽤 잘 자란 느낌이다.

박상혁 씨제이 이앤엠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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