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제’는 여러모로 좋다. 꼼꼼히 준비할 수 있고 시청자들이 아쉬워할 때 박수 받으면서 떠날 수 있다. 제작진과 출연자들한테는 재충전의 시간이 주어진다. 매주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작품을 만드는 느낌이 든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한 번에 몰아보기 딱 좋다. 그래서 요즘 피디들은 정규보다는 시즌제 예능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시즌제는 옳은 것.’ 더 나아가서 ‘정규는 낡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즌제 예능만이 정답은 아니다. 프로그램의 완결성에 감탄하면서 다음 시즌을 기다리는 시청자도 있지만, 매주 같은 시간에 휴식이 되어주는 정규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시청자도 많다. 오랫동안 방송되어온 정규 프로그램은 편한 친구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학교 끝나고 보던 <무한도전>(문화방송)이 세월이 흘러 퇴근하고 보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해피선데이-1박2일>(한국방송2)의 신입 피디는 시간이 흘러 메인 피디가 되었고, 한때 5분 나가던 <라디오스타>(문화방송)가 대한민국 대표 토크쇼로 자리잡았다. 오랜 시간과 함께한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역사가 된다.
사실 방송국 입장에서 시즌제 프로그램은 별로 달갑지 않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 다음 프로그램을 준비하려면 여러 팀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많은 제작 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시즌제는 아무리 잘나가도 곧 끝나니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수준 높은 시즌제를 만들려면 역설적으로 안정적인 정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잘못된 시즌제는 위험하기도 하다.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올 때 기존과 똑같이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구성상의 변화와 출연진의 변화를 시도한다. 시청자의 기대치는 높아져 있는 상황에서 잘못하면 마지막 시즌이 되고 만다.
물론 쉼 없이 정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제작진의 엄청난 고통이 있어야 한다. 미리 찍어두고 편집만 하면 되는 시즌제 프로그램과 달리 정규 프로그램은 기획과 촬영 그리고 편집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편집실에서 밤을 새워 편집하다가 바로 촬영장으로 나가야 하고 돌아와서 바로 다음주 촬영을 준비해야 한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매주 조금씩 새로워져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콘텐츠가 많은 요즘, 조금이라도 유행에 뒤처지거나 식상한 패턴을 보이면 시청자는 금세 이탈한다. 고정 시청자를 잡으면서도 조금씩 변신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밀당’(밀고 당기기)이 필요하다.
같은 이유로 프로그램을 오래 해온 출연자들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예능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한두 번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사랑받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또 다른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정규 프로그램과 시즌제 프로그램은 어느 한쪽이 옳은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20년 전, 내가 신입사원 때 한 선배 피디가 이렇게 말했다. “피디가 뭐 대단한 예술 하는 사람 같지? 그러나 우리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주어진 시간을 창피하지 않게 채우는 일이야. 그게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 일인지 곧 알게 될 거다.”
개인적으로는 12회라도 채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 어느덧 30회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러면서 다음으로 준비하던 프로젝트와 함께 두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아무래도 프로그램을 쉬기보다는 칼럼을 쉬기로 했다. 그동안 넋두리 같았던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만약 칼럼에도 시즌2가 있다면 더 새롭게 돌아오겠다. <끝>
박상혁 올리브티브이 <섬총사>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