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친근한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요즘 둘 다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 김희선이다. 품위 있으면서 가식이 없다. 우아하면서 망가질 줄 안다. 연기는 당연히 잘하고 예능도 잘한다. 그래서 그는 지금 가장 ‘핫’하다.
<섬총사>(올리브티브이)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신선한 출연자 조합을 찾는 일이었다. 남동생들과 편하게 방송하던 강호동이 한번도 함께 해보지 않은 사람. 그러면서도 예능감이 넘쳐 강호동을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 우리의 선택은 김희선이었다. 그러나 <섬총사>는 4박5일 동안 섬마을 어르신들 집에서 함께 사는 프로그램이다. 먹고 씻고 자는 일,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다. 힐링 예능처럼 보이지만 마을 분들이 열심히 일하시는데 먹고 놀 수만은 없다. 당연히 꽤 힘든 노동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걸 과연 김희선이 할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아는 형님>(제이티비시) ‘김희선 편’이 화제를 모았고, 그래서 김희선한테 상대적으로 편한 스튜디오 예능 기획안들이 쏟아지고 있었을 때다.
그런데 연락이 왔다. 더 자세하게 설명을 듣고 싶다고 했다. 정말 김희선이 섬에 간다고? 그는 내가 신입사원이던 1998년에 이미 드라마 <미스터큐(Q)>(에스비에스)로 연기대상을 받았던 사람이다. 당시 생방송 때, 얼굴에 큐빅을 붙인 물방울 메이크업을 하고 내 옆을 지나가던 21살 김희선의 아름다운 모습을 잊을 수 없다. 20년이 지났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나갔다. 여전히 예뻤고 꽤 엉뚱했다. 조금 정신이 없었고 많이 유쾌했다. 나는 섬 생활이 마냥 즐거울 거라고 했다. 절대 힘든 일은 없을 거라고. 남태평양보다 아름다운 섬에 갈 거라고 했다. ‘방송국 놈’들은 역시 믿을 게 못 되는 게 또 한번 증명되는 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뭐 딱히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프로그램 얘기는 잠깐 하고 그가 요즘 빠져 있다는 트로트 얘기를 2시간 동안 했다. 꼭 갖고 싶은 메들리 시디(CD)가 2장 있다고 해서 꼭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최고봉 메들리’는 구했으나 아직 ‘박종인 트로트 디스코 메들리’는 찾지 못했다. 갖고 계신 분은 꼭 제보 바란다.) 김희선은 아직은 걱정이 많이 되니 일단 한번만 가보고 싶다고 했다.
드디어 여행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섬, 그리고 믿음직한 강호동과 재치 넘치는 정용화가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섬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첫날부터 단수가 되고 벌레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고기잡이와 물고기 손질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김희선은 무엇이든 최선을 다했다. 요리는 잘 못해도 힘쓰는 일은 다 잘했다.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톱질을 잘하고 무엇보다 웃음이 많았다.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첫날밤부터 서울로 돌아가야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김희선은 또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있고 12회로 끝나기로 했던 프로그램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 김희선의 드라마는 ‘초대박’이 났다.
사실 예능을 하는 배우나 가수들은 고민이 많다. 예능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지만 본업인 음악이나 연기를 할 때 카리스마가 무너질까 고민한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요즘 시청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다양한 콘텐츠를 오랫동안 즐겨온 요즘 시청자들은 예능과 연기, 생활인으로서의 모습과 무대 위의 모습을 절대 혼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청자들은 무엇이든 연예인이 ‘정말 진정성 있게 하고 있느냐’를 간파해낸다. 이미지만 신경 쓰거나 홍보를 위해 억지로 출연한 사람들, 즉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사람들을 기막히게 잘 골라낸다. 그래서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느냐’는 ‘예능이냐 본업이냐’라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잘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클래스의 문제’다. 이렇게 다 잘하면 된다. 김희선처럼 말이다. 그래서 몇번째인지도 모르겠는 ‘그의 전성기’는 지금 또다시 시작이다.
박상혁 <섬총사>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