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애들이 100명이나 나오는 프로 따위는 절대 보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는데, 지난 4월 <프로듀스101 시즌2>(엠넷)가 막상 시작되니 꽤 열심히 찾아봤다. 최종 4위 했던 개인연습생 김재환 때문이다.
내가 재환을 처음 만났던 게 벌써 1년 반 전이다. 그 당시 나는 프로가수와 아마추어의 대결이라는 무모한 음악예능을 기획 중이었고 파일럿 방송의 기회를 잡았다. 지난해 방영한 <에스비에스>(SBS)의 <신의 목소리>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들에게 아마추어가 도전하는 형식이여서 가수들이 긴장할 만큼의 실력자를 찾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2012년 <코리아 갓탈런트 시즌2>(티브이엔)를 했던 작가가 자신이 담당했던 재환을 수소문해왔다. 그리고 하필이면 작가가 재환에게 전화를 건 날이 오랜 기간 연습하던 기획사에서 방출된 날이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고등학생과 단, 한번 주어지는 기회를 무조건 잡아야 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사실 음악경연 프로그램에서 고음이 좋은, 잘생긴 남자 보컬은 야구로 치면, 좌완 파이어볼러(왼손 강속구 투수) 같은 거다. 다시 말해, 지옥을 가서라도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 오랫동안 밴드를 준비해오면서 기본기가 탄탄한 재환은 첫 도전곡으로 부활의 ‘아름다운 사실’을 불렀다. 현장 반응이 무척 좋았다. 밴드음악을 하고 싶다는 사연이 공개되었고 그의 엉성한 댄스 실력은 큰 웃음을 줬다. 1라운드를 가볍게 통과하고 록의 전설 윤도현에게 도전했다. 김재환의 노래는 훌륭했고 윤도현은 극찬했다. 덕분에 파일럿 방송의 유일한 우승자가 되었다.
제작진이 재환에게 가장 놀랐던 순간은 정규프로그램이 된 첫 회였다. 이제는 2승 도전자였던 재환은 떨어지더라도 박정현의 ‘미안해’라는 곡을 부르고 싶어 했다. 사무실에서 들어보는데 솔직히 별로였다. 기타를 치며 조용히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번에는 광속탈락이구나!” 그러나 반전은 합주할 때 일어났다. 음악예능은 편곡이 중요하다. 화려한 노래 실력을 보여주고 더 큰 객석의 반응을 끌어내려면 노래를 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기타 반주로만 잔잔하게 가다가 악기들이 더해서 클라이맥스를 만들고 다시 연주를 다 빼고 목소리만 남겨서 여운을 남긴다. 중간에는 전조(코드 진행을 올리는 것)를 해서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한두 단계 더 높은 고음을 지른다. 그러면 객석에서 소위 ‘소름 돋는’ 반응이 나온다. ‘미안해’는 노래 자체가 어려울 뿐 아니라 편곡을 하면 더 극적으로 보이는 노래였다. 재환이 준비한 큰 그림을 제작진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이었다. 재환의 무대는 너무 훌륭했지만 그에 맞선 박정현의 무대도 훌륭했다. 모두가 아쉬워하는 패배였고 재환은 한참을 울었다.
그러나 방송 후에도 재환은 여전히 소속사를 구하지 못했고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프로듀스101>에 참가하게 되었다. 3번째 경연프로그램 출연이었다. 춤을 못 춰서 아이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재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노래 실력이야 워낙 좋은 친구였지만 방송이 계속되면서 춤이 느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리고 결국 메인보컬로 최종 4위에 오르며 데뷔의 꿈을 이룬 모습에 지금은 각자 다른 곳에서 일하는 <신의 목소리> 제작진은 한마음으로 기뻐했다.
방송사가 직접 아이돌을 선발하는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고 유사 프로그램들이 쏟아지니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들이 없었다면 기획사도 없이 혼자 노래하던 학생이 이름을 알리고 데뷔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 프로그램이든 스타든 선택은 언제나 시청자의 몫이다. 앞으로 재환이 열심히 활동하고 오랫동안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길 바란다. 물론 언젠가 프로그램에서 다시 만난다면 그것도 꽤 유쾌할 것 같다.
박상혁 올리브티브이 <섬총사>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