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 영화감독
[문화‘랑’]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유하 감독의 영화 <비열한 거리>에도 나오듯 때로 영화감독들은 기자들처럼 취재를 위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며칠 전엔 ‘조직폭력배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만나자마자 내가 영화감독임을 소개하니 1초도 뜸들이지 않고 “신세계 좋더군요”라는 말을 건달 특유의 어법과 억양으로 던지고는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주로 실감나는 조폭 캐릭터 묘사에 대한 찬사였다. 정청(황정민)이 공항 출국장에서 나오면서 실내 슬리퍼를 신고 있는 것이나 이중구(박성웅)가 석 회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의사의 멱살을 잡는 장면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주위에 건달이 있지 않고서는 만들기 힘든 이야기”라고 말하고는 껄껄대더니 “부라더 부라더 ○○부라더”를 외치며 정청의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다. 이 상황 역시 어디서 많이 보던 건데 <넘버3>에서 조필(송강호)이 현지(이미연)의 시를 읽으며 “친척 중에 건달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말했던 장면의 데자뷔나 다름없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국인 캐릭터가 실감나게 등장하면 우리 국민들이 열광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주로 남자들만의 세계를 다룬 이 영화는 당연히 남자들 사이에서만 인기가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일부 색다른 취향을 가진 여성 관객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얻은 바 있다. 바로 ‘브로맨스’에 열광하는 여성 관객들이다. 두 남자 간의 애정에 가까운 우정을 이야기하는 ‘브로맨스’라는 용어는 이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셜록 홈스와 왓슨의 관계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그들 중에서도 한 꺼풀 더 깊은 사고를 하는 집단이 있다.
표면적으로 동성애 캐릭터가 아닐 수도 있는 두 남성 캐릭터를 상상 속에서 동성애 관계로 조합하는 것을 즐기는 취향의 여성들이다. 이들은 왠지 한자로 ‘썩을 부’자를 써서 ‘부녀자’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그들은 원래부터 우정과 의리로 뭉친 정청과 이자성(이정재)을 커플로 만드는 것은 물론 적대적 캐릭터인 이중구와 정청, 이중구와 이자성을 커플로 상상하기도 하면서 ‘동인지 만화’ 등의 2차 창작물을 ‘연성’하기도 한다. 영화 기자 생활부터 시작해 오랫동안 영화계를 지켜봐 왔지만 ‘깡패’와 ‘부녀자’가 같은 영화에 이토록 열광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셈이다.
‘그 동네’에선 이제 와서 왜 <신세계>가 화제일까. 이유는 ‘형님’들은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극장 개봉이 끝나고 아이피티브이(IPTV)로 나오고 나서야 ‘난리가 난’ 것이다. 극장 개봉하자마자 관람 완료했음에도 캐릭터의 다른 조합을 맞춰 보기 위해서 거듭 극장을 찾은 ‘부녀자’들과는 관람 패턴이 확연히 차이 난다. 뿐만 아니라 조폭들과 부녀자들이 열광하는 이 영화의 지점은 몇 광년 떨어져 있다. 내 주위에 존재하는 부녀자들과 조폭들을 만나게 해 이 영화에 대한 토론을 하는 이벤트를 하면 어떨까 하고 잠깐 생각해 봤지만 후폭풍이 두려워 금세 철회했다.
조원희 영화감독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