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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여성주의 학습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비밀은…’

등록 2016-07-04 13:56수정 2016-07-05 00:15

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비밀은 없다>의 한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비밀은 없다>의 한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제 극장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비밀은 없다>는 최근 몇 년간 극장에 상영된 한국 영화 중 가장 논쟁적인 영화다. 관객과 평론가들의 평가가 갈라지는 영화는 매우 많았지만 ‘비밀은 없다’의 경우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호와 오가 극렬하게 갈린다. 많은 숫자의 관객들과 평론가들은 개연성이 부족하다거나, 스토리 라인의 전환이 지나치게 과격하다거나 이해하기 힘든 대사와 사운드 처리가 등장한다거나 하는 이유로 ‘비밀은 없다’를 혹평하고 있다. 하지만 정반대의 시각도 존재한다. 일단 한국 영화에서 본 적이 없는 플롯이라는 점, 생경한 정서를 지닌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것, 혹은 지엽적인 인과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호방하게 풀어가는 미스터리를 칭찬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개연성’이라는 용어다. 개연성은 어느 하나의 기준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영화의 개연성이란 영화 속의 게임의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비밀은 없다’를 본 관객 중 다수가 영화 밖의 기준을 통해 이 영화의 개연성을 재단한다. 주로 현실, 아니, 각자 자신이 살고 있으며 때로는 오해하고 있는 그 세계의 척도로 판단한다. 그건 개연성이 아니라 이 영화가 얼마나 다수의 규범에 맞냐 아니냐의 문제다. ‘비밀은 없다’의 개연성은 가난하거나 혹은 너무 부자라거나 건방지다거나 하는 이유로 외톨이가 돼 버린 중학생들의 오판과 무모함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런 짓’을 하는 청소년들은 현실 속에서 ‘막장’으로 분류되고 어린 범죄자일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세계관 내부에서만큼은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비밀은 없다’가 지나친 혹평을 듣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좀 숨겨져 있다. 이 영화가 여성 중심의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한국 영화 중 ‘비밀은 없다’만큼 사건의 핵심을 이루는 모든 캐릭터들이 여성인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이 작품은 단순히 여성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의 기간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남성들의 탐욕으로부터 가장 중요한 동기를 획득하는 주제의식을 지닌다. 여성주의에 대한 별다른 탐구 없이 살아온 관객들이라면 이해하기 힘들거나 불편한 코드들이 담겨 있다. 이 영화에 대한 극렬한 논쟁은 일반적인 관객들 뿐만아니라 평론가들조차 얼마나 여성주의에 대해 학습되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와도 같다.

조원희 영화감독
조원희 영화감독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1960년 개봉 당시 지방 흥행업자들의 거센 반발 때문에 결국 권선징악을 설명하는 독백이라는 엔딩을 억지로 만들어냈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 편의 걸작으로 취급받고 있다. ‘하녀’의 급진적인 모럴이 당시의 관객들에게 통하지 않았었던 것처럼 ‘비밀은 없다’도 역시 당대에는 외면받았지만 훗날 재평가되는 영화의 운명을 가게 될 지도 모른다.

조원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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