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 영화감독
[문화‘랑’]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대한 논란은 이제 지겹다. 어떤 평론가는 작품성을 논했다가 ‘댓글 테러’를 당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이 영화의 성공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겠다’는 선언도 했다. 인터넷 영화평을 보면 ‘김수현의 신체를 판매하는 영화’라는 표현으로 순화할 수 있는 비속어와 유행어 섞인 평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 모든 쟁론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17일 현재 관객 수 5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 영화를 악평하는 의견의 요지는 이거다. ‘배우의 개인적 인기에 기댄 영화’라는 거다. 김수현의 신체가 노출되는 순간 여성팬들이 환호성을 지른다며 조소한다. 넥타이를 맨 말투로 말하면 ‘작품이 지닌 고유의 본질 그 자체가 아니라 말초적 요소’에 기댔다는 건데. 그렇지 않은 영화들이 어디 있는가. 최근 흥행작만 살펴봐도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은 온갖 ‘머슬 카’에 열광하는 자동차광들이 열광했다. <스타트렉 다크니스>도 유서 깊은 스타트렉의 세계관과 뛰어난 과학 소설적 구성 요소들에 찬사를 보내는 영화광들이 150만 이상의 관객을 만들어냈는 줄 아나? 영국 티브이 시리즈 <셜록>을 보고 베네딕트 컴버배치에 반한 팬들이 가장 많다. 나도 그랬다. 캐리 뮬리건의 광적인 팬인 나는 <위대한 개츠비>를 보면서 캐리 얼굴만 보고 있었는데 어느 새 영화가 끝났다. 각색이 어땠는지 노래가 좋았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서 칼럼도 못 쓴다. 또 다른 이들은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과도하게 흥행을 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그건 또 뭐가 나쁜가? 이 영화를 보고 ‘만듦새 좋지 않은 영화’에 길들여진 관객들이 계속 좋지 않은 작품성을 지닌 영화에 몰린다고? 이게 무슨 연쇄살인 영화 보면 연쇄살인자 되고 도색 영화 보면 성범죄자 되며 물고기 영화를 보면 수영을 잘하게 된다는 논리도 아니고. 심지어 이 영화에 만족하지 못한 관객들도 여론을 형성해 500만 관객 이후에는 주춤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시장엔 언제나 적정한 자정 용량이 정해져 있다. 관객들이 ‘구린 영화’를 못 알아보는 게 아니다.
어린이들이 <영구와 땡칠이>를 보기 위해 극장에 몰렸을 때 평론가와 영화광들은 그렇게 아우성을 쳤던가. 스토리의 개연성 없이 그저 애크러배틱 액션만 이어지는 성룡의 영화들도 얼마나 ‘재미있는’ 영화로 우리의 마음속에 간직돼 있나. 세상엔 플롯의 3막 구조가 완벽하고 신선하며 파격적인 촬영기 양식이 있으며 공인된 대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있고 거기에 대중들에게 매력적인 요소까지 겸비한 ‘완벽한 작품’이 과연 몇이나 되나. 그리고 꼭 그런 작품을 지향해야만 ‘많은 관객이 볼만한’ 영화인가. 물론 이번 ‘은밀하게 위대하게 사태’의 중요한 문제점인 ‘지나치게 많은 상영관이 한 영화만 트는 것’은 큰 골칫거리다. 그건 구조적인 모순이라 정책적으로 풀어가야만 할 ‘또 다른 이야기’다.
조원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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