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 영화감독
[문화‘랑’]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떠도는 도시 전설 중 하나인 ‘초인종 괴담’을 소재로 한 <숨바꼭질>이 개봉 첫 주 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히트작 반열에 올라섰다. 실제로 초인종 옆에 낙서가 돼 있는 것이 발견돼 기사화된 적도 있었지만 택배 직원의 편의를 위한 표지임이 밝혀져 안도의 한숨을 뱉은 동시에 다소 시시해했던 기억도 있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소재는 아니더라도 ‘승합차까지 짐을 들어 달라는 할머니’ 이야기는 원빈 주연의 <아저씨>에서 한 장면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어쨌든 ‘떠도는 괴담’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자주 만들어진다. ‘신혼부부 장기 적출 괴담’을 떠오르게 했던 <공모자들>이나 곱등이의 기생충인 연가시 이야기를 확장시킨 <연가시> 등은 이렇게 구전으로 혹은 인터넷상에 ‘떠도는 괴담’을 영화화한 케이스다. 일본에서는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의 선택을 제안하는 귀신 이야기 <화장실의 하나코>나 성형수술에 실패한 여성이 불특정 다수에게 복수를 행한다는 ‘빨간 마스크’ 이야기인 <나고야 살인사건> 등의 영화가 나온 바 있다. 미국에서도 떠도는 괴담 이야기가 공포영화로 만들어진 경우들이 있는데, 거울을 보고 이름을 다섯 번 부르면 괴물이 나온다는 클라이브 바커 원작의 <캔디맨>이나 각종 도시 전설들을 다룬 <캠퍼스 레전드> 등이 있다.
이렇게 ‘떠도는 괴담 영화’는 나이 어린 관객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돼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91년작 <영구와 땡칠이 4-홍콩 할매 귀신>을 만나게 된다. 음지의 거장 남기남 감독의 작품인 이 영화는 당시 초등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줬던 ‘홍콩 할매 귀신’ 이야기를 차용한 것이다. 고양이와 인간이 합쳐졌다는 왠지 귀여울 것 같은 느낌의 설정에도 불구하고 밤길에 나와 손톱을 뽑아 간다거나 하는 잔인무도한 짓을 한다는 이 요괴에 대한 이야기는 1990년 당시 ‘초등학생들을 집에 일찍 귀가시키기 위한’ 일부 지역 부모들의 작전이었다는 추측이 있었던 희대의 아이템이었다. 어쨌든 이것을 민첩하게 차용한 심형래는 현재 방송코미디언 협회장인 개그맨 엄용수를 홍콩 할매 귀신으로 투입하는 등의 무시무시한 전법으로 방학을 맞이한 초등학생들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숨바꼭질>로부터 <연가시>를 거쳐 <영구와 땡칠이 4-홍콩 할매 귀신’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떠도는 괴담’ 히트작들의 계보에는 대부분 ‘학생층’이 관련돼 있다. 단순히 학생들이 그런 괴담에 민감하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학생들 사이에서 학생들의 입을 거쳐 퍼지는 괴담들은 그들에게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발화하며 체험했던 현실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이다. 사실상 현실과는 거리가 먼 ‘괴담’이 현실로 느껴지는 아이러니가 바로 그런 괴담 영화들의 승부처였다.
조원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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