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 영화감독
[문화‘랑’]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1999년 이집트에서는 영화 <매트릭스>가 개봉되자 평론가들의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이 영화가 ‘시온주의를 고취시킨다’며 상영 금지를 촉구한 것이다. 결국 2003년 만들어진 속편 <매트릭스: 리로디드>는 이집트에서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다. 율 브리너 주연의 영화 <왕과 나>는 시암 시대 타이 왕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영화다. 같은 원작으로 주윤발 주연의 <애나 앤드 킹>도 만들어졌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타이에서는 상영 금지가 됐다. 타이 왕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다. 타이에서는 이 영화의 디브이디(DVD)를 소지하면 벌금형에 처해지기도 한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2편인 <인디아나 존스: 죽음의 사원> 역시 인도 개봉 당시 수많은 인도인의 반대에 부딪혔다. 인도 사람들을 ‘원숭이 골 요리나 먹는 사람들’로 묘사했다는 점을 들어 상영을 반대한 것이다. <다빈치 코드>는 전세계의 가톨릭과 개신교 단체들로부터 탄압을 받았던 영화다.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시위를 벌이며 이 영화의 개봉을 저지하려 한 바 있다. 이렇게 어떤 영화에 대한 ‘개인의 판단’을 제한하려는 노력들은 참으로 미개해 보인다.
조금 더 심각한 경우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레마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개봉된 1930년의 독일에서는 해당 영화가 상영중인 극장에 연막탄을 던지고 쥐를 푸는 등의 행동을 하는 집단이 등장했다. 그들의 논리는 이 영화가 ‘유대인들의 독일 장악 음모’가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그 집단은 바로 나치였다. 나치는 이 영화의 상영을 반대하는 운동으로 세력을 확장해 결국 정권까지 잡았다. 이 사건이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와 가장 닮아 있는 부분이다.
‘보수 단체’들의 협박 때문에 멀티플렉스 체인으로부터 상영 중지 통보를 받은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영화가 종교적 이유로, 정치적 이유, 문화적 이유로 상영 자체를 저지당하는 것은 때로 미개하고 우스워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공포스런 일의 전조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런 ‘상영 반대 운동’은 때로 그 영화의 흥행에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예의 <다빈치 코드>는 비기독교도들에게 “종교인들이 저럴 정도면 뭔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 예상을 넘는 흥행 결과를 맞이하게 된 바 있다. <천안함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의 길을 가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들어 있길래 보수 단체들이 글자 그대로 ‘단체로’ 들고 일어섰는지 궁금해서 봐야겠다”는 의견들이 등장하고 있다. ‘맥스무비’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53.9%의 관객들이 <천안함 프로젝트>를 “볼 생각이 없었는데 보고 싶어졌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직접 보고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줬다는 점에서 보수 단체를 칭찬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조원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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