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 이후로 계속되고 있는 영상물등급위원회 개혁에 대한 요구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영화 등급이라는 것은 내 기억이 있는 한 모든 시대에 걸쳐 언제나 문제였던 것 같다.
등급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자유분방하게’ 주어졌던 시절도 있었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액션 영화 <람보 2>는 폭력성 때문에 미국에서 청소년 관람 불가에 해당하는 아르(R) 등급을 받았지만 한국에서는 놀랍게도 ‘연소자 관람가’ 영화였다. 지금의 등급으로는 ‘전체 관람가’인 셈이다. 미국보다 등급이 훨씬 관대하던 시절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람보 2>로부터 2년 뒤 개봉한 <플래툰>은 중학생 관람가였다. 폭력성으로 따지자면 <람보 2>가 훨씬 더 강했다. 공산 베트남군을 무찌르는 <람보 2>는 전 연령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월남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는 <플래툰>의 경우는 ‘애들은 못 보게’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주관이 개입될 수 있었던 당시의 ‘심의’제도와는 달리 현재는 등급 부여가 매우 체계적으로 매뉴얼화 돼 있다. ‘영화 및 비디오물 등급 분류 기준’이라는 법령에 의거해 등급이 주어진다. 주제, 선정성, 폭력성, 대사, 공포, 약물, 모방위험, 사상이라는 8개 항목에 대해 각 항목당 2~3가지의 기준을 두고 그에 부합되는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세부 기준이라는 게 때로 애매하다는 점이다. 전체 관람가 등급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주제가 ‘긍정적인 사회적 가치를 알려주는 내용인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긍정적 사회적 가치가 뭐지? 강 바닥을 열심히 파는 게 ‘긍정적인 사회적 가치’인 것일까? 12세 관람가를 받기 위해서는 ‘건전한 인격 형성과 교육적 근간을 저해하지 않는 것’이라는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건전한 인격’이나 ‘교육적 근간’은 도대체 무엇인가를 정의하기 위해서 최소 수백권의 사회 과학 서적은 읽어야만 할 것 같다.
또한 이런 기준으로 등급을 분류하는 ‘인력’은 어떻게 선발되는가. 법조, 청소년 지도, 언론, 교육, 문화계에서 ‘추천을 받아’ 구성되는데, 대체적으로 높은 연령대가 위주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영화가 지니고 있는 사상을 읽어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저 ‘특정 신체 부위’가 나오면 감점, 피가 나오면 감점. 이정도의 ‘기계적 등급 부여’만 가능한 구조다. 그런 도상이 노출되는 드라마적 맥락도 파악하기 힘든데 하물며 상징의 단계까지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등급제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등급을 정하는 절차와 방식과 인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15세 이상 관람가를 목표로 하고 거기에 기준을 맞춰 촬영했으나 완성 직후 갑자기 기준이 달라져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흥행에서 손해를 본 나의 첫 영화 때문에 억한을 품고 이러는 건 절대로 아니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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