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 영화감독
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예전엔 한국에서 한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를 ‘방화’라고 불렀는데, 이 단어는 ‘자기 나라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을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신 ‘국산 영화’라는 단어로 순화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한때 ‘방화’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영화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어 ‘한국 영화’는 ‘방화’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의견들이 있었으나 이 단어는 그냥 한자 조어일 뿐이다. ‘방화’에 사용되는 한자 ‘나라 방’ 자는 원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유교의 경전 <시경>에서 나라 ‘방(邦)’ 자는 단순한 국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소속감을 표현하는 중요한 공동체로 사용된다. 말하자면 ‘방화’라는 단어에는 ‘한 국가에 소속된 개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유효한 정서가 담겨 있는 영화’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던 것이지만 이제는 아무 소용 없는 이야기다.
이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단순히 ‘국산 영화’라는 사전적 의미로만 사용되지 않았다. 이 ‘방화’라는 것은 수준 높고 볼만한 ‘외화’라는 것에 비해 그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뉘앙스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푸대접받던 이 용어는 ‘일제 잔재’라는 누명과 함께 매체에서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산 영화’의 완성도와 시장 친화도도 그 시절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1960년대 한국 영화의 전성기로부터 1980~90년대 한국 영화 암흑기를 거쳐 이제는 한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지난주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 통합전산망 박스 오피스 순위를 살펴 보면 1위 <공범>을 비롯해 10위권 안에 무려 7편의 한국 영화가 들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영어권 공통 시장인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고 비교적 ‘영화 강대국’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어느 곳도 그 나라의 ‘방화’가 5편 이상 박스 오피스 10위 안에 들어 있지 않다. 이것은 ‘한국 영화’의 약진인 것일까. 아니다. 품질 높은 한국 영화의 편수가 늘어나고 그 출연자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것뿐이다.
우리는 때로 ‘한국 영화’라는 것을 한 묶음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요즘 한국 영화 수준이 높아졌다’거나 ‘한국 영화의 수준은 아직도 낮다’는 식으로 말하곤 하는데, 이것은 옳은 표현이 아니다. 수준 높은 한국 영화 작품이 등장할 수 있고, 또 완성도가 떨어지는 한국 영화 작품들이 등장할 수도 있는 것일 뿐이다. 한국 영화계는 천차만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종사하며 서로 협조하고 공조하기보다는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는 공간이다. 높지 않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이 몰리는 특정 한국 영화를 보며 한국 영화계의 미래가 위축될 것을 걱정하는 분들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 곧 오지랖이 넓은 셈이다.
조원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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