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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꽃할배들’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

등록 2014-01-02 20:05수정 2015-05-20 14:56

조원희 영화감독
조원희 영화감독
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지난 양력 설, 극장에 선택할 영화들이 많았지만 어쨌든 유소년들로부터 청장년을 넘어 노년층까지 한국 시민 사회를 샘플링한 것 같은 연령 구성의 일가친척 나들이인 관계로 꿈과 희망과 재미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애니메이션 <저스틴>을 골랐다. 연령대를 고려해 더빙판만 개봉한 모양인데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매우 익숙했다.

‘아기병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박형식, 그리고 ‘꽃보다 할배’의 원로 연기자 4인방인 이순재, 박근형, 신구, 백일섭이 더빙을 맡았다. 캐릭터의 이름도 순불루처, 구야울리오 등 그들 자신의 이름으로부터 따 왔다. 국산 애니메이션 아닌 관계로 어마어마한 현지화가 이뤄진 것이다.

원래 애니메이션이나 다큐멘터리에 성우가 아닌 개그맨이나 아이돌 스타 등 ‘비성우’들의 목소리를 더빙하는 행위를 혐오하는 편이다. 또한 내용의 맥락과 관계없이 유행어들이 튀어나오는 것 역시 상당히 겸연한 짓이라고 생각해 왔다. 더욱 중요한 부분으로 비성우들이 주요 배역을 맡는 것은 한국의 수많은 훌륭한 성우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점을 그동안 다른 매체를 통해 지적해 왔다.

하지만 <저스틴>은 특별했다. 박형식의 목소리 연기는 깔끔했고 ‘꽃할배’ 4인방의 더빙 솜씨는 그야말로 찬란했다. 때때로 유행어를 뱉어내며 관객들을 웃기는 가운데 극의 내용 전달까지도 선명했다. 함께한 친척 꼬마들로부터 어르신들까지 빠져들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뭔가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꽃할배’ 4인방은 연기자들이 성우를 겸하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시대의 영화는 모두 ‘후시녹음’이었다. 지금처럼 현장에서 목소리 연기를 담아내는 ‘동시녹음’의 장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연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더빙했던 그들이 애니메이션 더빙에서 장기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유였다.

백일섭의 경우 젊은 시절 출연했던 액션 영화의 녹음실에서 더빙을 하며 대본에 없는 추임새 “어이쿠, 사람 잡겄네” 등의 애드리브로 영화를 더욱 맛깔나게 만들었다는 전설을 경력 오래된 녹음 기사로부터 들었던 기억도 났다. 그 시절 목소리 연기의 능력이 없는 배우들은 아무리 신성한 스타였을지라도 다른 성우의 목소리를 빌려야만 했다. 반쪽짜리 배우들이 있었던 셈이다.

‘꽃보다 할배’는 오랜 시간을 관통한 이들이 보여주는 익살 때문에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았던 프로그램이었다. <저스틴>의 현지화가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바로 그런 후시녹음 시대의 관록이 현재화됐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것은 특별한 경우다. ‘개나 소나’ 따라하면 곤란한 기획이다.

조원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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