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 영화감독
[문화‘랑’] 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미국의 타일러 페리는 2011년 <포브스>가 선정한 최고 수익 엔터테이너로 뽑히기도 한 영화인이다. 영화 연출자이며 제작자이고 또한 각본가인데다 연기까지 하는 이 사람은 ‘마데아 시리즈’로 유명한 여러 편의 영화를 내놓았고 대부분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내가 왜 결혼했을까?>를 비롯한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우리나라에는 거의 수입된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의 다양한 인종들 중 속칭 ‘흑인’으로 불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만을 위한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흑인 특유의 감성을 아주 섬세하게 담아내는 그의 영화들은 당연히 해당 인종에게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만 타 인종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자신의 스튜디오가 미국 영화 산업의 중심지 할리우드가 아닌 애틀랜타에 있을 정도로 그의 영화는 철저하게 ‘변방’에 있지만 미국 사회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흑인들은 그의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울고 웃으며 찬사를 보낸다. ‘흑인에게만 통하는 영화’로 영화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셈이다.
지난 13일 영화 <관능의 법칙>이 개봉됐다. 개봉 뒤 일주일 만에 40만명대의 흥행을 기록하고 있으니 그렇게 뜨거운 흥행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관능의 법칙>을 본 사람들 중 여성 관객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30대 후반에서 50대에 이르는 중년대 관객들은 대단한 찬사를 던지고 있다. ‘그들에게 통하는 영화’인 것이다. 언젠가부터 한국 영화는 10대 이상의 전 연령대, 그리고 남녀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아이템 위주로 기획되고 있다. 수익을 올리는 데 가장 이상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성별, 특정 연령대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아이템은 투자, 기획자들이 꺼리는 것이 사실이다. <관능의 법칙>은 기획 단계부터 그런 우려를 벗어던지고 용기 있게 시작했다. 40대 여성 세명이 주연을 맡았고 아이돌 스타 하나 등장하지 않았다. 게다가 포르노그래픽한 접근의 에로스가 아닌, 생활 속에서의 성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남성 관객은 관람하겠다는 생각을 쉽게 하지 않는 편이다. 관람 전의 극장 문턱이 높은 셈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영화들이 가지지 못하는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타 죽기 전에 불타오르겠다’고 선언하는 중년 여성들도 젊은이들과 똑같이 욕망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또 그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엄마로서의 의무가 먼저인가, 여자로서의 사랑이 먼저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마음이 성숙한 젊은 관객들의 동감을 얻어내기도 한다. 타일러 페리의 영화와는 이 부분에서 다르다. ‘일부 관객에게 통하는’ 기획이지만 잘만 만들면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영화다.
조원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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