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연극을 영화화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리 낯선 현상이 아니다. <살인의 추억>이 있었고 <왕의 남자>가 있었으며 <웰컴 투 동막골>도 있었다. 외국 영화를 살펴보자면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클로저>를 뺄 수 없고 최근에는 로만 폴란스키의 <대학살의 신>이나 <비너스 인 퍼> 역시 연극을 영화로 옮긴 작품들이다. 연극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대부분 ‘연극 무대’라는 한계성을 돌파하기 위해 다량의 각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장소를 늘리고, 인물과 사건을 확장시키는 식이다. 하지만 원작 연극에 매우 충실한 경우도 있다. 폴란스키의 <대학살의 신> 같은 경우를 들 수 있다.
지난 3월27일 개봉해 극소수의 개봉관에서 상영중인 영화 <씨, 베토벤>은 한마디로 연극을 그대로 영화로 옮긴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씨, 베토벤>은 원래 대학로에서 무대에 올려졌던 연극이다. <늘근 도둑 이야기>, <비언소>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극단 차이무가 제작한 이 영화는 차이무의 대표 배우이며 연출자인 민복기가 공동 감독으로 참여했고, 연극 버전에서 공연했던 배우들이 그대로 출연했다.
촬영 역시 연극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의 한계 때문에 10분씩 나눠 찍기는 했지만 어쨌든 배우들의 연속된 연기가 담겨 있다. 당연히 촬영은 하루 만에 끝났으며 제작비는 후반 작업비를 합쳐 1700만원이라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저예산으로 완성됐다.
한 카페를 배경으로, 세 명의 30대 고교 동창생들이 서로의 사소한 개인사를 이야기하면서 점점 드라마가 드러나는 구조를 가진 이 영화는 연극의 장점을 영화라는 매체에 담는 실험을 한 작품이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말을 한다. 테이크로 분할되지 않고 장시간 집중하는 배우술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연극의 중요한 감상 포인트인데, 영화 <씨 베토벤>은 바로 그 지점에서 강점을 지닌다. 김소진, 공상아, 오유진의 세 주인공은 물론 카페 주인으로 등장하는 김중기며 등장 시간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연출가 이상우, 대배우 강신일, 그리고 오용, 송재룡 등 감초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최근 영화들 중 이렇게도 뛰어난 배우술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영화는 드물다.
물론 반복되는 카메라 위치의 단조로움은 아쉬운 점이지만, 세계 영화사를 읽어보면 나오는 연극영화과 입시의 필수 암기 항목 ‘필름 다르’처럼 연극을 통조림화하는 연극의 영화화로부터는 수만년 진화한 단계로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앞으로 새로운 저예산 영화의 전범이 될 것이다.
감독인 필자는 영화를 보자마자 ‘나도 이런 거 하나 꼭 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했으니까.
조원희 영화감독
조원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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