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 영화감독.
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로빈 윌리엄스를 떠나보내며
로빈 윌리엄스를 떠나보내며
어떤 배우들은 그렇게 먼 곳에 있으며 내 인생과는 아무 관련 없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형처럼, 친구처럼, 때로는 어린 시절 나를 가르쳤던 선생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로빈 윌리엄스가 딱 그랬다.
내 인생 가장 어두운 나날이었던 재수생 시절, 학원을 빼먹고 무작정 향한 극장에서 로빈 윌리엄스를 만났다. 하필이면 영화는 바로 <죽은 시인의 사회>였다. 이전에도 <가프의 세계>나 <굿모닝 베트남> 등의 영화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배우였지만 이 영화에서는 정말 특별하게 느껴졌다. 온갖 참고서에 짓눌려 있던 나에게는 책을 찢는 장면부터 통쾌함으로 다가왔다.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교사의 강의를 받아 적는 수업이 아닌 인생에 대한 가르침은 염세로 가득 차 학원가를 기웃거리던 재수생을 변화하게 했다. 이 영화를 본 모든 사람이 기억하는 단 한마디 ‘카르페 디엠’,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말은 너무나 많이 인용돼 이제 유효기간이 지나간 말 같지만 뒤돌아보면 영화 대사 하나가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경우는 드물다.
로빈 윌리엄스는 그 이후로도 수많은 위로와 회복, 그리고 웃음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굿 윌 헌팅>에서는 상처입은 천재를 일으켜 세우는 상담사로 등장해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치유의 정서를 제공했다. <사랑의 기적>에서는 아예 전신마비 환자를 깨우는 의사로 등장해 극한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이끌었다. 미국 영화예술 아카데미에서 로빈을 추모하는 의미로 인용한 <알라딘>의 지니 역은 말할 것도 없이 꿈을 잃은 이들에게 희망을 던져주는 캐릭터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패치 아담스>는 어떻게 보면 로빈 윌리엄스의 인생과 가장 닮아 있는 캐릭터였을지도 모른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살을 기도하고 정신병원에 수감된 뒤, 그곳의 환자들과 지내며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것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된 한 사람. 아직 의사가 되지 않았지만 아픈 이들을 웃게 만들며 그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인물. 하지만 세상은 그를 이해하지 않았고 또 한번의 좌절을 겪게 만든다. 우리는 간혹 우리를 위무했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로빈 윌리엄스가 오랫동안 우울증과 약물중독에 시달려 왔다는 것은 참으로 가련한 일인 동시에 그에게 미안해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최근에도 <페이스 오브 러브> 등의 영화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지만 예전의 인기와 명성과는 거리가 있었던 로빈 윌리엄스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몇 차례 우리와 극장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비밀의 무덤>에서는 다시 한 번 루즈벨트 역으로 찾아올 것이고 <브루클린에서 가장 화난 남자>와 <블러바드> 등의 주연작들이 국내에서 개봉될 수도 있다. 그가 떠난 뒤 스크린으로 만나는 그의 모습에서 치유와 회복이 아닌 그림자를 느끼게 될 것을 생각하면 더욱 슬퍼진다.
조원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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