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 영화감독
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홍상수 감독의 16번째 장편 영화 <자유의 언덕>이 개봉 일주일도 안 돼서 관객 2만명을 돌파했다. 1700만명을 돌파한 영화가 있는데 그 정도 숫자는 초라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예산이 적게 들고 배급도 직접 하기 때문에 적은 수의 관객들만으로도 흑자는 물론 다음 영화를 가능하게 한다. <자유의 언덕>은 그동안의 홍상수 감독이 구축했던 ‘홍상수 세계’의 세계관을 총정리한 영화나 다름없다. 그의 영화 속에서 낯익은 배우들이 낯선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다른 캐릭터로부터 얻은 경험과 대사를 또 다른 캐릭터에게 옮기는 인물이 제시된다. 낯선 환경 속에서 잘 마시지 않는다는 술을 마셔가며 열연한 일본인 연기자 가세 료와 언제나 자기 몫을 다하는, 아니 그 이상을 해내는 문소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지만 홍상수의 세계 속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인물은 김의성이었다.
김의성은 오늘의 홍상수를 존재하게 하는 중요한 사람 중 하나다. 데뷔작이었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주인공이었다. 당시 김의성은 소위 ‘잘나가기’ 시작하는, 주목도 높은 배우였다. 신인이며 기존 한국 영화의 작법과는 사뭇 차이가 있던 홍상수의 데뷔작에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며 홍상수를 주목받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의성은 개인적인 결심으로 오랫동안 스크린을 떠나 있었다. 그런 김의성을 다시 영화계로 돌아오게 한 인물이 바로 홍상수였다. 2011년 작 <북촌방향>은 김의성의 12년 만의 재기작이었다. 이후로 김의성은 홍상수 세계 속에서도 스크린 타임을 오래 차지하는 역할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포인트로 등장했다. 특히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마치 신기루처럼 등장했다 사라지는 부분에서 많은 이들은 그의 분석 불가한 연기와 그런 인물을 창조해 낸 홍상수의 능력에 감탄했다. <북촌방향> 이후의 홍상수 세계는 이전과 사뭇 차이를 보이는데, 그 중심에 김의성이 존재한다는 추론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 가장 가볍고 귀여운 영화인 <자유의 언덕>에서 김의성은 홍상수 세계의 전형적인 인물들이 보여주는 얄팍한 실수들, 의미심장한 충고,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던져주는 코미디의 기능을 모두 충실하게 수행한다. 특히 날카로운 성격을 지닌 게스트하우스 투숙객 역의 정은채와 벌이는 언쟁 장면에서 호기심을 동반한 친절이 마치 싸움의 신 아레스라도 개입한 듯 폭언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야단법석한 가운데 섬세하게 그려냈다. 김의성의 연기는 홍상수 세계, 아니 홍상수 영화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관상>이나 <건축학 개론> 그리고 <용의자> 등 은근히 흥행작에도 많이 등장한 김의성은 현재 여러 편의 영화에 캐스팅돼 촬영이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홍상수의 다작이 반가웠던 것처럼 김의성의 다작 역시 환영하고 싶은 일이다.
조원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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