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서병수 부산시장이 부산시의 이름을 빌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다이빙벨> 상영을 중지하라는 압력을 행사했으나 영화제 쪽에서 상영을 강행한 뒤 생긴 일이다. 부산시는 앞서 감사를 통해 압박을 가했고 영화제의 개혁을 추진하라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서병수 시장과 이용관 위원장은 논란이 확산되자 27일 만나 일단 파국은 막았다. 서 시장은 “부산국제영화제가 공공자산이므로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 위원장은 “(시장의) 영화제 쇄신, 비전 제시 요구에 충실히 응하려 한다”고 밝혔다 한다. 이에 따라 부산시가 당장 이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진 않을 듯 보이지만, 향후 쇄신안 내용을 빌미로 언제든 영화제를 압박할 여지는 남겨둔 셈이다.
얼핏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을 겸하게 돼 있으니 시장의 이런 태도는 부당하지 않은 요구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최근 한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갑질 파동’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항공사 부사장이 항공기의 이륙을 지연시켰다거나 재벌 2세가 야구방망이로 노동자를 구타했다거나 하는 유치할 정도로 치사한 사건들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선출직 공무원이 전문직 종사자의 인사에 개입’한다는 점이다. 전임자와 다른 정당 소속 인물이 지방자치단체의 선출직 단체장에 오른 뒤 수십년간 전문적인 업무를 해온 공무원이나 재단법인 직원을 마음대로 교체하는 일들은 다만 영화제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이런 행위는 해당 전문 분야에 대한 일종의 ‘문명 파괴’적인 행위다. 그런 일 때문에 자리를 잡아나가던 영화제들이 몇이나 주저앉았는지, 잘나가던 공기업이 얼마나 망해나갔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모든 영화인이 즉각적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나도 속해 있는 한국영화감독조합을 비롯한 12개 영화단체는 ‘사퇴 종용을 즉각 철회’할 것을 서면으로 촉구했고 수많은 영화인들은 개인적으로 부산시에 대한 경고를 했다. 영화 <화이>의 제작자인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부산시가 이용관 위원장을 기어이 몰아낸다면 나우필름과 파인하우스필름이 제작하는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볼 일이 없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연기자 김의성은 “이용관 위원장을 쫓아낸다면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쇄신 논의를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정치적 이유로 영화제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영화제는 가지 않을 것이다. 내 고향이며 학창 시절 모두를 보냈고 처음으로 영화를 시작했던, 내가 사랑하는 그 도시에서 열리는 영화제일지라도 참가하지 않겠다. 나야 대단한 인물은 아니지만 19년 전, 내 고장에서 처음 열렸던 그 아름다운 영화제의 추억을 훼손하려는 자들을 철저하게 외면할 준비만큼은 돼 있다.
조원희 영화감독
조원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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