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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이래서 할리우드가 부럽다

등록 2016-03-08 19:24수정 2016-03-08 20:45

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스포트라이트
올해 오스카 작품상과 각본상을 거머쥔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영화 작법이라는 부분, 그리고 현실과의 접촉이라는 명제에서 동시에 대단한 성취를 해 낸 작품이다. 아동성폭행이라는 매우 민감한 문제에 접근하면서 관객들을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조금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 사건 자체의 끔찍함을 직접 노출하지 않고도 관객들에게 해당 사건의 무게를 주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마도 최근 몇 년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은 영화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임에 틀림없다. 마이클 키튼, 스탠리 투치 등 노장 배우들과 마크 러팔로, 레이첼 맥아담스 등 현재형 스타들의 눈부신 연기들이 뛰어난 앙상블을 이뤄 촘촘하게 짜여져 있고, 우아한 유머마저 확보한 시나리오 역시 대단했다.

이런 영화를 칭찬할 때 ‘한국에서는 왜 이런 영화가 안 만들어지는가’ 하는 비판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해당 비판은 그 비판의 대상인 한국 영화만큼이나 안일하게 만들어진 비판이다. 시사회 때 <스포트라이트>를 관람하고 나오며 많은 영화인들이 했던 말이 있다. “이런 영화 꼭 만들고 싶은데 투자가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그 뛰어난 만듦새를 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또한 한국의 투자 환경이 천박하다는 뉘앙스로부터 출발한 말도 아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현재 25만 정도의 관객이 들었다. 최종 스코어는 30만 관객 선이 예상된다. ‘학습된 영화광’들을 위한 영화다. 만약 똑같은 형식과 퀄리티의 한국 영화가 탄생했다고 하면 배우들의 인지도, 실화의 힘 등에 힘입어 세배 이상의 관객이 들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정도로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저예산 영화의 형식을 빌려야 할텐데, 그렇게 되면 깨알같은 시대의 디테일을 살릴 수가 없다. <스포트라이트>의 매우 중요한 매력 중 하나는 곳곳에 놓여 있는 1990년대의 상징인 한국제 브라운관 모니터들, 동일한 모델의 1980년대식과 2000년대식 일본제 자동차가 나란히 서 있는 장면, 21세기가 막 시작되던 당시 보스턴 거리와 지금의 그 미묘한 차이, 당시 미국 인터넷을 거의 지배했던 거대한 에이오엘 광고 간판 등의 미술적 요소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돈 드는’ 부분이다.

조원희 영화감독
조원희 영화감독
<스포트라이트>의 제작비는 2000만달러. 블록버스터급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한국 시장에서 요구수익률을 확보할 수 없는 영화가 기획되기 어렵다는 산업적 계산을, 적어도 평론가라면 해야 한다. 이건 창작자들만의 문제도, 투자배급사만의 문제도, 관객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시장은 어느 한쪽의 구성원들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니까. 어쨌든 <스포트라이트> 같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할리우드가 부럽다. 부러워만 하고 있으면 안되겠지만.

조원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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