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1996년 9월을 기억한다. 당시 부산 지역선 유일한 연극영화학과 학생이었던 나는 부산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린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한국의 극장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짐 자무시의 영화 <데드맨> 상영 소식을 듣고서야 실감했다. 가장 행복한 순간 비관적인 생각부터 하는 나는 그 순간부터 걱정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 행복한 순간을 내년에도 맞이할 수 있을까? 그 이후로도 계속?’ 그 걱정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성장해 지난해까지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해 왔으니까.
나는 부산 해운대구에서 살면서 부산에서 학교를 나왔다. 어머니는 현재 부산시 수영구에 살고 계신다. 부산은 내 고향인 동시에 언제든 기회만 닿는다면 돌아가 살고 싶은 곳이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직업을 가진 입장에서 부산국제영화제는 정말이지 가장 자랑스럽고도 동경하게 되는 행사다. 해외 영화제를 나가서 외국 영화인들을 만났을 때, 내 고향이 부산임을 말하면 더 이상의 소개가 필요 없어진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질문과 대답이 이어진다. 이 아름다운 영화제가 상처입었다. 임기가 정해져 있는 부산시청의 선출직 공무원 서병수 시장 때문이다.
서 시장은 틈만 나면 ‘서울의 영화인들이 부산의 영화제를 좌지우지’한다는 논리를 보도자료로 뿌리며 어떻게든 부산 시민과 영화인들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나같이 부산 시민인 동시에 영화인인 사람이 증거한다. 부산시청은 현재 부산시민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을 위한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들을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사람들’로 교체하려다 극심한 저항을 받게 되자 집행위원회가 영화제 준비를 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은 것이다. 부산시는 아예 올해 영화제를 포기하고 ‘원아시아 페스티벌’이라는 한류 스타들 행사로 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울 계략을 짜고 있는 듯하다.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는 세계 영화제들이 이미 올해 개최 일정은 물론 티저 포스터를 발표하고 있는데, 부산국제영화제는 시기를 놓쳤다. 부산의 상징이 되어버린 영화제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 정말 부산시민이 바라는 일인가? 부산시장 임기가 끝나면 그가 청와대에 충성하고자 애쓰는 바람에 감행한 이 무리수를 부산시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수습해야 한단 말인가?
이것은 또한 대한민국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다이빙벨>이라는 특정 영화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영화제의 수장이 ‘잘리는’ 사태를 바라보며 보통 간이 작은 나같은 인물들은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그렇다. 이 글도 사실은 ‘자기 검열’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글이다. 혹시나 나중에 서병수 시장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자고 목소리를 냈던 감독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무슨 해코지라도 할까봐 적당히 한 것이다. 마음 같았으면 무슨 심한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조원희 영화감독
조원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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