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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물범·코끼리도 사람 목소리 흉내

등록 2014-06-19 11:53수정 2014-06-19 11:54

사육사 목소리의 액센트 음정 주파수와 비슷
고속도로 지나다니는 트럭 소리 따라하기도
유진박. 동영상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HhLV8KdUdv0
유진박. 동영상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HhLV8KdUdv0

러시아 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등 빠른 손놀림을 요구하는 음악의 현란한 연주로 유명한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은 처음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배울 때 문장들을 음악 구절처럼 인식해서 배웠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라고 말할 때처럼 문장들에는 그 특유의 음 높이가 있기 때문에 유진박은 그 음 높이를 음악악보처럼 외워서 한국말을 배운 셈이죠.

월드컵 거리응원.
월드컵 거리응원.

브라질 월드컵에서 선전하고 있는 한국 축구대표팀을 응원하는 붉은 악마들의 힘찬 응원 함성 ‘대~한민국’에도 일치되는 음높이와 리듬이 들어 있습니다.

시에도 두운, 요운, 각운 등의 운율이 있어서 영시나 한국의 시조를 읊다보면 저절로 노래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랩음악은 가사의 운율, 즉 언어의 라임을 십분 활용하는 전형적인 형태의 음악 장르이구요.

이렇게 음악과 언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요. 이 언어와 음악과의 관계 중에서도 몽롱하고도 비밀스러운 관계가 여러 동물들의 발성에서 발견됩니다.

발성은 노래하기와 말하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능력인데요, 앵무새나 구관조 등의 조류뿐만 아니라 흰돌고래(Beluga), 물범(harbor seal), 코끼리 등의 포유류도 사람의 말을 그대로 따라서 발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후버 사진 출처 http://homepage.univie.ac.at/tecumseh.fitch/2010/08/10/hoover-a-talking-seal/
후버 사진 출처 http://homepage.univie.ac.at/tecumseh.fitch/2010/08/10/hoover-a-talking-seal/

후버라는 이름의 물범의 사례가 바로 그것입니다. 고아였던 후버는 1971년 미국 메인주 컨디항에서 어부의 손에 의해 길러지다가 몸집이 너무 커져 키우기 힘들게 되자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아쿠라리움으로 기증됐는데, 그곳에서 성숙하게 되자 말하는 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후버는 1985년 아쉽게도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아래 후버 사진 출처인 웹페이지 하단부에서는 물범 후버가 “하우 아 유 (how are you)?” “컴 오버 히어 (come over here)”라고 걸걸한 40~50대 뱃사람 아저씨 목소리로 발성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후버의 뒤를 이어 그의 손자 ‘챠코다’가 말하기를 배우고 있다고도 하네요.

다른 연구에서는 흰돌고래(Beluga)인 ‘로고시’가 자기 이름을 발성하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코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나라 한 테마파크의 코끼리도 사람의 말을 흉내 냅니다. 20살이 넘는, 몸무게 5톤 가량의 아시아 코끼리인 코식이는 “좋아” “누워” “앉아” “안돼” “아직” “발” “예”라는 7개 단어를 발성합니다. 이 발성은 다른 아시아 코끼리들이 내는 194개의 소리와 매우 다른 주파수를 사용하는데, 이 주파수는 코식이를 돌보는 사육사의 목소리 주파수와 거의 같다고 합니다. 아래 그래픽에서 까만 점들은 코식이, 회색 점들은 코식이를 보살피는 사육사 발성의 주파수입니다.

자료 출처:  Current Biology 22, 2144?2148, November 20, 2012
자료 출처: Current Biology 22, 2144?2148, November 20, 2012

코식이의 놀라운 사례는 독일의 생물 물리학자 대니얼 미첸 박사와 오스트리아 안젤라 슈토거 박사 등에 의해 2년여동안 연구되어 2012년 세계적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그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테마파크의 동물원장과 담당 수의사가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동물의 흉내 발성 중에서도 코끼리의 발성은 조금 더 특이한 사례가 있습니다. 우즈홀 해양학연구소 피터 타이액 연구팀은 번잡한 고속도로에서 3km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10살짜리 아프리카 코끼리들인 믈라이카와 챠보, 케냐를 관찰했는데, 믈라이카가 고속도로를 지나다니는 트럭 소리를 흉내 내는 걸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그 소리는 보통의 다른 아프리카 코끼리들이 내는 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였기 때문이죠.

코식이 동영상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jih5c-F7TBo
코식이 동영상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jih5c-F7TBo

코끼리 코식이의 경우 사육사가 “앉아” “누워” 등의 행동 지시어를 발성할 때 그 문장 특유의 액센트와 음 높이, 주파수 등을 반복해서 듣고 기억함으로써 흉내 내어 발성하기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물범 후버의 경우도 고아로 사람 손에서 길러지면서 자기를 키워준 사람의 억양과 음성적 특성들을 외워 “하우 아 유”나 “컴 오버 히어” 같은 말들을 따라서 발성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정적인 추측이긴 하지만 코식이나 후버의 경우 자기들이 흉내 내는 발성들이 가진 의미의 단위나 구조를 정확히 알고서 그 말들을 따라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사람의 말들이 가진 특유의 음정과 억양 등의, 음악과 어떤 지점에서든 교집합을 이루는 주파수를 파악하여 말소리를 흉내 내고 있다고 해야 조금 더 설득력 있는 과학적 해석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 차소리를 흉내 내는 코끼리 믈라이카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 과학을 향해 가는 가설적 추측의 방증이 될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는 코끼리 믈라이카에게 짧은 악기소리를 반복해서 들려주고 그 음악소리를 흉내 내어 발성할 수 있는지 과학적 실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디까지 궁금하신가요?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180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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