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 ‘인터 스텔라’에서 주인공 우주 비행사 쿠퍼는 블랙홀 가장자리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쪽으로 빠져 들어가 시공간이 얽히고 설킨 5차원 영역 안에서 딸 머피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우주로 나오기 전 지구에서 쌍을 맞춰 나눠 가졌던 시계를 활용해 초침을 모스 부호처럼 움직이게 하여 정보를 알림으로써 딸이 인류를 구원할 중력 방정식을 완성하도록 돕죠.
그렇다면 모든 물질은 물론, 빛마저도 빨아들인다고 하는 블랙홀 주변으로 빠져 들어갔을 때 때 쿠퍼는 과연 어떤 소리를 들었을까요?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에 따르면 어떤 블랙홀들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진 음파를 밖으로 내보낸다고 합니다. 지구로부터 비교적 가까운 페르세우스 은하단(페르세우스자리와 물고기자리에 걸쳐 있는 대은하단의 일부)에 있는 엄청난 질량을 가진 블랙홀(아래 사진 참조)에선 ‘가온 다’(피아노 건반 가운데의 ‘도’)보다 57옥타브 낮은 음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죠.
오른쪽 사진이 페르세우스 은하단 블랙홀의 음파. 사진 미국 항공우주국 웹사이트
2003년 나사의 찬드라 엑스레이 천문대에서 천문학자들이 최초로 포착한 그 블랙홀의 소리는 인류가 우주에서 탐지한 그 어떤 소리보다 더 깊은 저음을 내고 있다고 합니다.
지구로부터 2억5천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페르세우스 은하단의 가운데에 위치한 이 블랙홀로부터 수십만 광년 떨어진 곳으로 퍼져나가는 가스 속의 파문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음파의 강력한 증거라는 것이죠. 이 음파를 잘 연구하면 우주에서 가장 큰 구조물인 은하의 성장과정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위 사진을 보면 가운데 블랙홀 위아래로 검은 구멍이 보입니다. 이 검은 구멍들은 분출되는 물질들이 은하단의 가스를 뒤로 밀어내면서 생겨난 것들인데, 이 검은 구멍들에서 퍼져나가는 위쪽의 음파들이 물질의 분출로 인한 은하단 가스의 가열현상, 즉 별 생성과정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 검은 구멍들이 만들어지는 데는 초신성 1억 개 분량의 에너지가 필요한 데, 이 에너지가 바로 이 블랙홀 음파에 의해 운반되기 때문이죠.
페르세우스 은하단 블랙홀의 음파를 악보상의 음표로 표기하면 Bb(‘시’의 반음 아래 음)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인간 가청영역 몇백만 배의 몇십억 배 낮은 주파수대의 소리라서 그냥 맨 귀로는 들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초신성 1억 개 가량의 에너지를 안고 있기 때문에 이 블랙홀의 음파 음, 즉 Bb 음은 25억 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유지된다고 합니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할 뿐, 페르세우스 은하단 블랙홀의 음파는 수많은 별들의 탄생 비밀을 간직한 채 ‘라’와 ‘시’ 음표 사이의 소리로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밤하늘 별들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 다른 천문학 연구팀은 나사의 ‘로시 엑스레이 시간 탐험 인공위성(Rossi X-ray Timing Explorer ; RXTE)’가 수집한 자료들을 통해 우주에서 가장 작은 블랙홀일 가능성이 큰 블랙홀 ‘IGR J17091’와 ‘GRS 1915’의 소리 신호(정확하게는 X레이 패턴)을 잡아냈다고 합니다. 그 소리 신호는 심전도 신호와 비슷하여 ‘심장 박동’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IGR J17091’ 블랙홀은 ‘전갈 별자리’ 방향으로 1만6000광년~6만5000광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질량은 블랙홀이 될 수 있는 이론적 최소치인 태양 질량의 3배 미만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태양보다 질량이 14배 큰 ‘GRS 1915’ 블랙홀은 ‘IGR J17091’ 블랙홀에 비해 5배나 커서인지 ‘심장박동’ 소리가 20배 더 또렷한 반면, 그 소리의 주기는 1/8배 정도 느린 40초 안팎이라고 합니다. 40초마다 한번씩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까운 가스를 분출시키며 ‘심장박동’ 소리를 퍼뜨리고 있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블랙홀도 그 질량 크기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 셈입니다. 비교적 높은 소리를 내며 크기가 작아 ‘가장 작은 블랙홀 1순위’에 올라있는 ‘IGR J17091’ 블랙홀, 그보다 큰 ‘GRS 1915’ 블랙홀, 그리고 위 2개의 블랙홀 보다 훨씬 낮은 저음을 내는 페르세우스 은하단의 블랙홀을 보니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마치 기적처럼 울려 퍼지는 테너, 베이스, 바리톤의 노래 소리를 듣는 듯한 낌이 듭니다.
그렇다면 딸과의 약속인 인류를 구원할 새 별을 반드시 찾아내 지구로 돌아오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알 수도 없는 공간 속으로 몸을 던진 아버지, 그 아버지의 우주보다 더 큰 사랑을 품은 영화 ‘인터 스텔라’의 블랙홀은 과연 어떠한 음악 소리를 내고 있을까요? 어쩌면 그 음악 소리는, 영화 속 아버지의 감동적인 사랑에 공명하는 우리들 가슴 속 소리와 아주 많이, 많이 닮아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2006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