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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기억 소환해 한 판 벌인 뇌 불꽃놀이

등록 2015-01-08 15:02수정 2015-01-08 15:06

음악과학으로 본 ‘토토가’의 열광
첫 키스의 추억처럼 그때 그 시절 감정 고스란히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사진. 출처 MBC 홈페이지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사진. 출처 MBC 홈페이지

‘토토가’(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기획물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즐겁게들 보셨나요?

김현정, SES, 터보, 쿨, 엄정화, 소찬휘, 이정현, 지누션, 조성모, 김건모 등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가수들이 대거 출연, 무한도전 최근 7년간 최고 시청률 22%를 기록하며 20~40대 시청자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 뜨거운 반응에 대해, 1990년대 초중반 외환위기 이전 경제적으로 호황이던 시절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 당시 가요가 지금 가요의 뿌리이기 때문에 젊은이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젊은층이 아예 처음 접하는 새로운 음악으로 인식해서 즐긴 것이라고 하는 얘기도 있구요.

군사정권이 종식되어 밝아진 사회 분위기 탓에 나올 수 있었던 ‘빅히트 스테디 셀러’(크게 인기 끌고 오래 사랑받는) 음악을 다뤘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MP3가 퍼지기 이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음원수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다양한 음악들을 틀어줘서라는 또 다른 해석에 더해, 음악과학적인 분석도 하나 더 추가할 수 있을거 같습니다. 이른바 ‘음악의 기억 소환’ 이론이 바로 그것입니다.

‘음악의 기억 소환’ 이론에 따르자면 ‘토토가’의 흥행은 단지 문화적 현상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문화현상의 생물학적 기초를 이루는 인간 개개인의 뇌 신경체계에서 비롯된 부분도 크게 작용한다는 얘기죠.

‘토토가’에 출연했던 가수 김현정. 한겨레 자료사진
‘토토가’에 출연했던 가수 김현정. 한겨레 자료사진

이 이론에 의하면 ‘토토가’에 나온 가수들의 1990년대 노래를 자신도 모르게 따라부르며 몸을 흔들고 발을 구른 이유는, 그 음악들이 청소년 내지 청년기에 뇌 신경계가 급격하게 발달할 때 들었던 음악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영국 리즈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12살~22살 사이 자신이 누구인지 그 정체성을 찾아 확립해 나가는 시기에 각인된 이미지들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기억의 돌출부’로 작용하여 평생에 걸쳐 두드러지게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그 시절 들었던 음악들은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남아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처음 듣는 음악이 뇌의 청각피질을 자극하면, 그 음악의 리듬, 선율, 화성은 각각의 신호로 변환되어 긴밀하게 연결된 뇌 전체로 전달됩니다. 노래를 따라부르면 행동을 계획하고 조정하며 조직하는 전운동피질이 활성화 되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면 뇌의 뉴런들이 그 노래 비트에 동조화 됩니다. 가사와 악기 편성에 관심을 기울이면 서로 다른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두정엽피질 활동이 활발해지구요. 이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넘쳐나는 성장 호르몬 탓에 감정이 더 들뜨게 되어, 감명 깊게 들은 노래를 훨씬 더 강력한 신경망으로 연결하여 기억으로 저장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젊은이들의 뇌 신경망 활동은 ‘뇌 불꽃놀이’로 불리기까지 하는데요.

‘토토가’를 연출한 김태호 피디부터 1974년생으로 20대 한창 젊은 시기에 1990년대 대중가요를 접했기 때문에 그 음악들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프로그램 제작의 동기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토토가’에 출연했던 SES.(유진 대신 ‘소녀시대’ 서현이 출연)  한겨레 자료사진
‘토토가’에 출연했던 SES.(유진 대신 ‘소녀시대’ 서현이 출연) 한겨레 자료사진

또 개인적 기억과 관련된 음악을 들으면 자신의 삶에 연관된 정보들을 유지하는 전전두엽이 깨어나게 됩니다. 20~40대 시청자들의 경우 1990년대 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터보의 ‘러브 이즈’ 김현정의 ‘멍’ 엄정화의 ‘포이즌’ 쿨의 ‘애상’ 김건모의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와 같은 음악들과 함께 보냈기 때문에, ‘토토가’를 통해 그 음악들을 다시 듣게 되었을 때 리듬, 선율, 화음은 물론 기억 또한 동시에 소환되었던 것입니다. 노래가 불러다 준 기억 속의 감정, 좋았던 그 시절을 다시 경험하는 듯한 그 흥겨운 느낌에 저절로 노래를 따라부르고 어깨춤을 추게 되었던 것이죠.

여러 사연을 통해 개인적으로 좋아하게 된 음악들은 그 개인의 뇌 쾌락회로를 자극하여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과 그밖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여러 신경화학물질을 분비하게 만듭니다. 이때 함께 불려나온 기억들에는 감정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음악을 듣는 사람의 뇌를 찍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녹색은 귀에 익은 음악을 들을 때 반응하는 부분. 빨간색은 결정적 기억과 관련된 부분. 파란색은 음악이 즐겁게 인식될 때 활성화된 부분. 노란색은 이마 바로 뒤에 있는 위쪽 전전두엽의 안쪽 부분으로 귀에 익은 음악과 결정적 기억 모두에 반응하는 부분.  자료 출처: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홈페이지
 
음악을 듣는 사람의 뇌를 찍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녹색은 귀에 익은 음악을 들을 때 반응하는 부분. 빨간색은 결정적 기억과 관련된 부분. 파란색은 음악이 즐겁게 인식될 때 활성화된 부분. 노란색은 이마 바로 뒤에 있는 위쪽 전전두엽의 안쪽 부분으로 귀에 익은 음악과 결정적 기억 모두에 반응하는 부분. 자료 출처: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홈페이지  

 

호주 뉴캐슬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노래가 소환한 기억들은 특징적이게도 긍정적인 감정이 수놓여진 기억들이라고 합니다. 또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음악과 기억의 관계에 대한 뇌 이미지 데이터를 분석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 연구진에 따르면, 이마 바로 뒤에 있는 위쪽 전전두엽의 안쪽 부분이 바로 음악을 듣고 기억을 떠올릴 때 ‘빨간 불’ ‘노란 불’ ‘녹색 불’이 켜지는 곳이라고 합니다. 노래의 코드가 메이저(밝은 느낌의 화성)에서 마이너(어두운 느낌의 화성)로 바뀌거나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바뀌는 것을 따라가며 반응하는 곳도 바로 이 ‘불꽃들’이 겹쳐서 켜지는 뇌 부분과 그 주변이었다고 합니다. 노래가 개인적 기억과 많이 연관되는 것일수록 이쪽 뇌 부분의 음악코드를 따라가며 반응하는 활동 또한 덩달아서 더 활발해졌다고 합니다.

‘토토가’에 출연했던 지누션.  한겨레 자료사진
‘토토가’에 출연했던 지누션. 한겨레 자료사진

‘토토가’에서 울려퍼지는 이정현의 ‘와’ 지누션의 ‘에이 요’ 소찬휘의 ‘현명한 선택’ SES의 ‘너를 사랑해’를 신나게 따라부르며 흥겹게 어깨춤을 추는 동안 그 사람들의 뇌 속에선 마치 나이트 클럽 미러볼 조명이라도 켜진 양 번쩍번쩍 ‘불꽃놀이’가 신나게 펼쳐졌던 것입니다.

그렇게 ‘뇌 속 불꽃놀이’가 가슴 벅차도록 휘황찬란하게 펼쳐졌던 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 그 자체가 눈부시게 젊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김형찬 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206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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