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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진보 가수가 보수 가수 노래를 불렀을 때

등록 2015-02-26 10:21수정 2015-02-26 10:23

밥 딜런 36번째 앨범에 프랭크 시나트라 10곡 편곡해
“나는 혼돈을 받아들이지만 혼돈이 나를 받아들일지…”
밥 딜런(왼쪽)과 프랭크 시나트라. 한겨레 자료사진
밥 딜런(왼쪽)과 프랭크 시나트라. 한겨레 자료사진

‘살아있는 포크록의 전설’ 밥 딜런이 자신의 36번째 앨범 ‘섀도우스 인 더 나이트‘를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미국 나이로 74살, 우리 나이로 따지면 75살임에도 불구하고 3년만에 다시 새 앨범을 낸 것을 보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이 정말로 실감납니다. ‘더 나이트 위 컬 잇 어 데이’ ‘스테이 위드 미’ 등 미국 대중음악계의 거목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노래 10곡을 5인조 밴드 형식으로 편곡하는 등 미니멀하게 재해석했다고 합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다단조 피아노 협주곡 2번 3악장 작품번호 18 알레그로 스케르잔도의 일부 멜로디를 차용해서 만든 ‘풀 문 앤드 엠프티 암즈’, 프랑스 시인 쟈크 프레베르의 시를 노래로 만든 ‘오텀 리브스’, 원래 뮤지컬 ‘사우스 퍼시픽’에서 불렸던 ‘썸 인챈티드 이브닝’ 등의 노래를 담고 있습니다.

‘풀 문 앤드 엠프티 암즈’는 미국 재즈 가수 사라 본도 리메이크 한 적이 있는 노래죠. ‘오텀 리브스’는 프랑스 샹송 가수 이브 몽탕과 에디뜨 피아프가 먼저 부른 노래이고, ‘썸 인챈티드 이브닝’은 얼마 전 내한 공연을 했던 미국 가수 아트 가펑클과 빙 크로스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도 부른 적이 있는 유명곡이라 서로 비교해서 들어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합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향으로, 밥 딜런의 36번째 앨범 수록곡 ‘풀 문 앤드 엠프티 암즈’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6S7nTLeMdAk), 프랭크 시나트라가 1945년 부른 ‘풀 문 앤드 엠프티 암즈’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dKsdCtsRczY), 미국 재즈 가수 사라 본이 부른 ‘풀 문 앤드 엠프티 암즈’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0MGIThHWx6c), 밥 딜런의 36번째 앨범 수록곡 ‘풀 문 앤드 엠프티 암즈’가 메인 선율을 차용해 온 라흐마니노프의 다단조 피아노 협주곡 2번 작품번호 18. 3악장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YmM8cKKWj8Q)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향으로, 밥 딜런의 36번째 앨범 수록곡 ‘풀 문 앤드 엠프티 암즈’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6S7nTLeMdAk), 프랭크 시나트라가 1945년 부른 ‘풀 문 앤드 엠프티 암즈’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dKsdCtsRczY), 미국 재즈 가수 사라 본이 부른 ‘풀 문 앤드 엠프티 암즈’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0MGIThHWx6c), 밥 딜런의 36번째 앨범 수록곡 ‘풀 문 앤드 엠프티 암즈’가 메인 선율을 차용해 온 라흐마니노프의 다단조 피아노 협주곡 2번 작품번호 18. 3악장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YmM8cKKWj8Q)

그런데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들을 리메이크 한 밥 딜런의 새 앨범 ‘섀도우스 인더 나이트’는 음악외적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들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살아온, 어쩌고 보면 상당히 상반된 인생의 행보 때문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밥 딜런은 자신의 첫번째 히트곡 ‘블로잉 인 더 윈드’를 통해 1960년대 반전운동 등 저항문화의 상징으로 떠올랐죠. 세 번째 앨범 ‘더 타임즈 데이 아 체인징’을 발표하면서 명실상부한 시민권리 운동과 히피세대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종교적 철학적 분야로 음악적 발걸음이 옮아가지만 그의 음악인생에 있어 중요한 시기의 노래들은 인종주의와 빈곤, 부정부패, 냉전 등 사회 정치적 주제를 주로 다뤘던 것이죠. 2008년 미국 대선 때에는 “정치의 본질을 땅에서부터 끌어올려 새롭게 정의했다”라고 말하며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밥 딜런이 미국인들이 최고의 명예로 여기는 ‘자유의 메달’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2년 5월29일 딜런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메달을 수여했다. 연합뉴스.
밥 딜런이 미국인들이 최고의 명예로 여기는 ‘자유의 메달’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2년 5월29일 딜런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메달을 수여했다. 연합뉴스.

반면 프랭크 시나트라는 사랑에 관한 노래들을 주로 부른 대중가수였습니다. 인생의 절반은 민주당원으로 보냈지만 1970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재선을 위해 나선 이후 나머지 인생의 절반은 공화당원으로 살았죠. 1981년 공화당 전당대회 때에는 당내 대선후보 경쟁에 나선 레이건을 위해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사적인 부분을 살펴보면 시나트라는 술과 파티를 즐겼고 여성관계도 복잡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피아와 관련된 루머들이 끊이지 않고 그의 삶 주변을 떠돌았죠. 프랭크 시나트라는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이었는데, 그의 할아버지가 태어나 살던 시칠리는 마이어 랜스키, 더치 슐츠, 럭키 루치아노, 영화 ‘벅시’로도 잘 알려진 벅시 시겔 같은 마피아들의 고향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들을 모르고 지낼 수가 없었던 것이죠. 게다가 그가 어릴 때 살던 뉴저지 호보켄은 마피아들이 득실대던 곳이었고, 그의 아버지 마티 시나트라는 마피아들로부터 불법 주류를 사들여 영업을 했기 때문에 마피아들이 자주 들락거렸다고 합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외삼촌들인 도미니크와 로렌스는 범죄에 연루되기도 했구요.

결정적으로 시나트라는 쿠바의 아바나에서 열렸던 마피아들의 회합 때 루치아노와 같은 갱 두목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져 1950년 12월 미국 상원 위원회의 마피아 사건 조사 때 관련 진술을 요청받기도 했죠. 진술 청취는 그의 유명세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법조인 사무실에서 새벽에 이뤄졌는데 그때 시나트라는 줄담배를 피우며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마피아들과 우연히 만났을 뿐이며 가벼운 인사 정도만 나눴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진술의 진위는 더 이상 명확히 가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위와 같은 마피아 관련 에피소드들은 마리오 푸조의 소설과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 영화 ‘대부’에 반영되기도 했죠. 영화 ‘대부’에 나온 조니 폰테인이라는 이름의 가수가 프랭크 시나트라를 연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성대 이상으로 굴곡을 겪었던 조니 폰테인이 마피아들에게 영화 캐스팅을 부탁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성대 결절로 슬럼프를 겪다가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출연하게 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실제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진 왼쪽부터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썸 인챈티드 이브닝’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g3XJnC8IN8), 미국 재즈 가수 빙 크로스비가 부른 ‘썸 인챈티드 이브닝’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_nXRvpxoC0), 미국 팝 가수 아트 가펑클이 부른 ‘썸 인챈티드 이브닝’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SdP8XAPdAj4)
사진 왼쪽부터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썸 인챈티드 이브닝’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g3XJnC8IN8), 미국 재즈 가수 빙 크로스비가 부른 ‘썸 인챈티드 이브닝’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_nXRvpxoC0), 미국 팝 가수 아트 가펑클이 부른 ‘썸 인챈티드 이브닝’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SdP8XAPdAj4)

위의 사실들에서 보듯 어떻게 보면 상당히 시끌벅적하면서도 화려한 삶을 살았던 ‘보수주의자’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들을 ‘진보주의자’ 밥 딜런은 왜 리메이킹 하게 된 것일까요?

프랭크 시나트라는 휘황찬란한 대중적 인기 속에 즐길 수 있는 것들을 거의 다 즐기고 살았습니다. 결혼도 4번이나 했지요. 그러나 한때 아내였던 에바 가드너에 대한 사랑은 끝까지 변치 않았다고 하죠. 또 어머니의 영향으로 평생 가톨릭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종교는 개인의 지극히 깊숙한 곳에 있는 것으로 그 어떤 끼어듬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신과 만난다”라고 말한 데서 보듯, 교회의 조직적 틀보다는 개인적인 믿음과 자유로운 정신을 중시했습니다.

밥 딜런 또한 유대교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개신교로 개종한 뒤 가스펠 앨범을 내기도 했습니다. 또 아들에게 유대교 성인식인 ‘바 미츠버’를 치르게 하는 등 일반적인 관념과는 다른 신앙생활을 했죠.

밥 딜런이 1995년 프랭크 시나트라 80살 생일을 맞아 부른 헌정곡 ’레스틀리스 페어웰‘. https://www.youtube.com/watch?v=F44DBpIyAh0
밥 딜런이 1995년 프랭크 시나트라 80살 생일을 맞아 부른 헌정곡 ’레스틀리스 페어웰‘. https://www.youtube.com/watch?v=F44DBpIyAh0

밥 딜런은 프랭크 시나트라에 대해 “그의 목소리에서 죽음과 신, 우주, 그 모든 것을 들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그는 1995년 프랭크 시나트라의 8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헌정공연에서 1964년에 발표한 자신의 3번째 앨범 ‘더 타임스 데이 아 어 체인징’의 타이틀곡 ‘레스틀리스 페어웰’을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진보’ 밥 딜런이 ‘보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들을 재해석해서 부른 데에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미국인들의 진보와 보수에 대한 태도 등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서로 닮아있는 종교에 대한 자세와 세상의 혼돈 속에서 조화로운 예술적 질서를 뽑아내는 음악가들의 자유로운 정신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나는 혼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혼돈이 나를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 딜런의 말 속에서 알듯 모를 듯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2119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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